‘스타리그’, 마지막 불꽃 태우다
  • 김회권 기자·장혁진 인턴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2.07.23 23:4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타크래프트 개인 리그, 13년 만에 막 내려… 고별전 4강전에 올드팬·외국인까지 몰려 대성황

프로게이머 이영호와 정명훈이 지난 7월17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e-스포츠 스타디움에서 ‘2012 tving 스타크래프트 리그’ 준결승전을 벌이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모두 뒤로 물러나세요. 한꺼번에 들어오면 위험합니다!”

장맛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지난 7월17일 화요일 오후 4시,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7층에 위치한 e-스포츠 스타디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게임 전문 채널 온게임넷이 주관하는 ‘2012 tving 스타크래프트 리그’ 4강전 두 번째 경기인 이영호(KT)-정명훈(SKT) 대결을 보러 온 관객들이었다. 오전부터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은 1천5백여 명에 달했다. e-스포츠 스타디움의 정원인 2백명을 훨씬 초과한 숫자였다. 예상보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들자 온게임넷측은 크게 당황했다. 현장 스태프는 재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이 경기가 e-스포츠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마지막 경기라는 ‘특별함’이 있기 때문에 13년 동안 지속되어온 스타리그 역사상 최초로 ‘스탠딩’ 녹화를 결정했다. 녹화 현장에 놓아둔 모든 의자를 철거했고 더 많은 관객을 경기장으로 입장시키기 위해 공간을 마련했다.

스타리그 진행자인 전용준 캐스터가 직접 질서 정리에 나섰다. 관람객들에게는 5시30분부터 번호표를 배부했고 선착순으로 입장시켰다. 팬들 중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 일부가 항의하는 일도 벌어졌다. 스타디움에 입장한 사람은 최종적으로 약 4백명 정도였다. 1천여 명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시대를 담아낸 거울’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위상은 한때 하늘을 찔렀다. 2010년 대한한공 스타리그 시즌2는 중국 상하이에서 결승전을 치를 정도였는데 그때가 절정이었다. ‘승부 조작’이라는 대형 악재가 터졌고, 한국e스포츠협회와 블리자드가 라이선스를 놓고 분쟁을 벌이면서 스타리그는 존폐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팬들의 기억 속에서 스타리그는 조금씩 멀어져갔다.

그동안의 암울한 분위기와 달리 이날은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왔을까. 지난 6월5일 온게임넷은 “이번 ‘2012 tving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끝으로 더 이상 스타크래프트 개인 리그를 진행하지 않겠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지난 1999년 프로게이머 코리아오픈(PKO) 이후 13년 만에 스타리그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복잡한 심정이 많은 사람을 이날 현장으로 이끌었다. 한 게임 전문지 기자는 이날 광경을 이렇게 평가했다. “오래전 임요환과 홍진호가 대결할 때 좁은 코엑스 메가웹스테이션이 미어터져서 천장에 매달려 본 사람도 있었는데, 그 이후로 이런 대폭발은 처음 보는 것 같다.”

평소 이곳에 오는 팬들은 프로게이머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려는 10대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날의 관람객들 구성은 이례적이었다. 30대 올드팬들이 적지 않았다. 직장 선후배 사이인 이성호씨(33)와 강남정씨(34)는 하루 휴가를 내고 오후 3시에 현장을 찾았다. 이성호씨는 “직접 경기를 보러 온 것은 처음이다. 10년 넘게 지켜본 스타리그가 끝난다니 오래된 친구와 헤어지는 느낌이다. 마지막 의리를 지키기 위해 오늘 여기에 왔다”라고 말했다.

아들의 손을 잡고 온 엄마도 있었다. 일산에서 온 정윤희(46)·신동훈(18) 모자는 ‘스타리그 광팬’이다. 정윤희씨는 “스타리그에 대한 추억이 참 많다. 아들과 응원하는 선수가 서로 달라 다툰 적도 있었다. 이렇게 스타리그가 끝나버린다니 너무 아쉽다”라고 말했다. 호주인인 매트 씨(23)는 이 경기를 보기 위해 10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왔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유튜브 등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스타리그를 보아왔다. 스타리그의 마지막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망설임 없이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스타크래프트의 의미는 단순한 PC게임 이상이었다. 1998년 4월 출시된 이 게임은 PC방 창업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초고속인터넷망을 확산시켰다. ‘스타크노믹스’라는 말과 함께 게임은 산업으로 진화했다. ‘프로게이머’가 등장했고 여기에 기업이 뛰어들면서 ‘e-스포츠’(당시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이 명칭을 붙였다)라는 블루오션이 탄생했다. 게임으로 병역을 대체하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8월4일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마지막 결승전

스타크래프트는 젊은이를 이해하는 새로운 코드였다. 프로토스 종족에서 유닛을 나르는 ‘셔틀’에서 파생된 ‘빵셔틀’이라는 신조어는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의 처지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학술 검색 사이트인 ‘구글 Scholar’에 ‘스타크래프트’를 검색하면 국내 논문 인용 횟수가 3천8백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지난 세월 동안 이 게임은 대한민국의 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왔다. 이 게임이 지니는 가치이다.

우리 사회는 스타크래프트를 재빨리 흡수했고 소비했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은 “고스톱과 스타크래프트의 공통점은 빠른 시간 내에 경기가 끝나고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기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 고유의 스키마와 인지 지도(Cognitive map)가 이 게임이 우리 사회 속으로 쉽게 스며들도록 만들었다”라고 해석했다. 그는 “스타크래프트 열풍은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며 청소년 문화가 어떻게 변화할지를 보여준 실증적 사례가 되었다. 당구장과 만화방으로 대표되던 이전의 주류 문화가 쇠퇴하고, 게임이 청년 사회를 이해하는 하나의 중요한 틀이 되었다”라고 지적했다.

경제적으로도 지대한 공을 떨쳤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게임시장이 7조원대로 성장하기까지 스타크래프트의 공이 가장 컸다고 설명했다. 위교수는 “스타크래프트는 콘텐츠만의 힘으로 PC방, 게임 전문 채널 등 산업의 인프라를 건설했다. 특히 시장의 잠재적 수요자였던 수백만의 게이머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의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날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에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에는 이제 곧 떠나 보내야 하는 ‘스타리그’에 대한 아쉬움과 아련함이 묻어 있었다. 마지막 스타리그 결승전은 오는 8월4일,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열린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스타리그는 종언을 고한다. 물론 스타리그는 사라지지만 스타크래프트 게임은 존재한다.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2’로 게이머들을 유인하려 노력 중이다. 위교수는 “스타크래프트 이후 등장한 많은 게임이 그저 한시적인 인기를 끄는 것에 그쳤다. 전작을 버리고 후속작을 즐길 만한 유인력이 현재는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스타크래프트2도 비슷한 길을 걸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 시사저널 전영기
그는 ‘영웅’으로 불렸다. ‘1세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였던 박정석 감독(30·나진e엠파이어)에게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지난 2001년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통해 이름을 알린 그는 이듬해 스타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화려한 역사의 주인공이었던 만큼 저무는 시대에 대한 아쉬움은 누구보다 크다. 박감독은 “스타리그는 내게 고향 같은 존재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18세에 프로게이머가 되려고 결심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당시 담임선생님은 그의 꿈을 이해하고 PC방 아르바이트 자리를 주선해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보는 순간 딱 저것이다 싶었다”라고 말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우승 1회, 준우승 3회라는 성적을 거두며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팬들과 생일파티를 했는데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와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수백 마리의 학을 접어오신 분, ‘망사팬티’를 선물한 남성 팬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지난 6월 특별 이벤트로 열린 ‘스타리그 레전드 매치’에서 옛 경쟁 상대였던 박성준 선수와 오랜만에 경기를 펼쳤다. 경기를 마치고 인터넷에 올라온 팬들의 반응을 보다가 누군가 올린 ‘끝이 있기에 아름답다’라는 글귀를 보고 울컥했다고 한다. 그는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더라. 지난 시절 나는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좋은 추억들을 많이 쌓아올렸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나는 정말 행운아라는 생각이 든다. 스타크래프트에는 그 어떤 게임도 흉내 낼 수 없는 아기자기함과 짜릿한 재미가 있다.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게임이지만 많은 사람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온게임넷 김진환 PD는 마지막 스타리그인 ‘2012 tving 스타리그’의 연출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2000년 ‘하나로통신배 스타리그’를 비롯해 수많은 스타리그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그에게 이번 스타리그는 이제 ‘졸업 작품’이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스타리그가 성공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지금이야 경기장에 에어컨도 설치되어 있고 쾌적한 상태에서 선수들이 게임을 하지만, 초창기에는 선수들이 땀을 너무 많이 흘려 경기 진행이 불가능했던 적도 있다. 급하게 선풍기를 설치하고 스튜디오에 얼음을 넣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아픈 경험 하나하나가 지금의 스타리그를 만들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스타리그의 성공을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e-스포츠 관계자들의 도전 정신 덕분이다”라며 공을 모두에게 돌렸다. “오프닝 영상의 화려함, 모든 선수가 참여하는 조 추첨식의 긴장감들은 그 어떤 스포츠 영역에서도 시도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또 선수들은 한 경기, 한 경기에서 손에 땀을 쥐는 명장면들을 만들어주었다. 이런 복합적인 것들이 작용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타리그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졸업 작품을 준비하는 그의 심정은 남다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지 않나”라고 운을 뗐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가족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곤 한다. 스타리그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떠난다고 하니까 이제야 실감이 난다.”


 
 

ⓒ CJ E&M
지난 7월17일 ‘2012 tving 스타리그’ 4강전 중계를 마친 엄재경 해설위원은 마주치는 스태프들을 격려하며 “수고했다”라고 부지런히 인사를 건넸다. 이날 결승에 진출한 정명훈 선수에게도 “마지막으로 멋진 결승전을 꼭 만들라”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세 시간 가까이 중계를 하느라 피곤했을 법도 한데 그는 현장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워주고 있었다. 그는 스타리그를 ‘유기체’라고 말한다. “사실 스타리그 그 자체는 추상 덩어리이다. 그러나 10년 이상을 함께 쭉 지내오면서 호흡하고 살아 있고 행동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는 중계를 시작하던 지난 2000년에 득남했다. 그리고 아들의 성장과 스타리그의 성장을 함께 보아왔다. 스타리그는 그에게 둘째아들 같은 존재이다. 엄위원은 “아들을 떠나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떻겠나. 요즘도 리그 중계를 하다 보면 몇 번씩 울컥울컥 한다”라고 말했다.

스타리그는 종료되지만 그는 팬들의 곁에 계속 남는다. 하반기에 새롭게 찾아오는 스타2 리그에서도 그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그는 “어차피 해야 할 이별이었다면 조금 일찍 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블리자드와 한국e스포츠협회 사이의 지적재산권 분쟁 그리고 기타 외부적 요인에 의해 스타2 리그 전환이 예정보다 늦어졌다”라고 설명했다.

그런 그에게 물었다. 마지막 중계 때 울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그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신 없다."

 

<시사저널 주요 기사>

▶ 아이젠하워와 루스벨트, 그리고 안철수의 길

▶ 북한의 ‘젊은 김일성’, 새로운 길 찾나

▶ “북한 사람들, 미국 침공 걱정 안 해”

▶ ‘스타리그’, 마지막 불꽃 태우다

▶ 외교·경제 갈등 범람하는 메콩 강

▶ ‘안철수 현상’의 진실을 아직 모르는가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