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자 두 번 울리는 두말하는 기업들
  • 김지은 인턴기자 ()
  • 승인 2012.07.23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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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 속에 허위로 고용 조건 게재한 모집 광고 판쳐 피해자 “기업은 갑이고 구직자는 을이니 당할 수밖에…”

취업 준비생들로 북적이는 취업 박람회 행사장. ⓒ 시사저널 유장훈
사회생활 2년차로 부산에 사는 신지애씨(여·29·가명)는 지난 4월 말 구직 사이트를 뒤지다가 자신이 다니던 회사보다 연봉과 복지 등 근무 조건이 더 나은 기업에서 직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발견했다. 신씨가 다니던 회사는 연봉이 1천7백만원 정도이며 주 5일 근무하는 회사였다. 하지만 광고를 한 회사는 연봉이 1천8백만원 수준인 데다 매출도 1백50억원이 넘었다. 면접을 본 신씨는 이후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막상 입사를 하자 사장은 말을 바꿨다. “경력도 부족한데 연봉을 그렇게 높게 책정하기 어렵다”라며 애초 광고했던 초봉 수준보다 현저히 낮은 액수의 연봉을 제시했다.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느냐”라고 따지자 “사람이 급해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직원들의 연봉도 모두 그 정도 수준이다”라고 얼버무렸다. 사장은 2년 이상 근무하면 처음 제시했던 연봉대로 책정해주겠다며 수습하려고 했다. 그러나 신씨는 속은 기분이 들어 3일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허위 구인 광고 피해 사례 해마다 급증

신씨의 눈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구직 사이트에 제시된 허위 광고들과의 숨바꼭질이 시작된 것이다. 5월 중순에 면접을 본 한 회사에서는 신씨를 비롯한 면접자들에게 기본 질문 몇 개를 던지고는 입사 후 수습 기간이 3개월이라며 그 기간에는 무조건 100만원만 주겠다고 일방적으로 통고했다. 연봉 1천8백만원이라고만 기재되어 있던 광고에는 전혀 없던 규정이었다. 심지어 주 5일 근무로 표시되어 있었으나 수습 기간 동안에는 토요일에도 근무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신씨는 “5월 말에 본 의료 관련 재단의 입사 면접은 더 기가 찼다”라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는 주 5일 근무라고 기재되어 있었으나, 면접관은 입사하면 토요일에도 나와서 정상 근무를 해야 하고, 심지어는 명절이나 국경일에도 다 나와야 하며 추가 수당도 없다고 말했다. 당황해하는 신씨에게 오히려 “의료재단에서 근무하려면 봉사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라며 나무라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만약에 시집을 가게 되면 오히려 여기 와서 일함으로써 명절 때 집안일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다”라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기까지 했다. “우리 이사장이 다혈질이라 직원들에게 욕을 잘 하는데 참을 수 있겠느냐”라고 묻기도 했다.

연이은 통신회사와 홈쇼핑 관련 기업의 면접에서도 애초 광고했던 연봉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연봉을 제시하는 것을 보고 신씨는 취업 광고에 불신이 생겼다. 회계 업무 경력이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는 덕에 면접을 볼 기회는 많았지만, 그만큼 구직자도 많았다. 신씨는 “연봉이 다소 적더라도 솔직하게 알린다면 업무와 가능성을 보고 지원할 수도 있는데, 면접에서부터 신뢰감이 떨어지니 일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요즘에는 취업난이 심해서 대다수 중소기업은 우리 연차의 경우 연봉이 1천4백만원에서 1천6백만원 사이이고, 그래서 구직 사이트에 이보다 조금 더 높은 연봉의 광고가 올라오면 금세 사람이 몰리게 된다. 일부 기업이 이런 점을 악용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최근 취업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신씨와 비슷한 ‘취업 사기 피해자’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고용노동부 고용서비스정책과에 접수된 허위 구인 광고 신고 사례는 2009년 1백60건이던 것이 2010년에 3백10건, 지난해에는 4백9건으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다단계나 성매매 등의 범죄 관련 건들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처벌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서울에 사는 김현영씨(여·27·가명)가 지난 3월에 겪은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구직 사이트의 정보를 보고 찾아갔으나, 광고했던 것과 출근 시간도 다르고 근무일도 달랐다. 법정 근무 시간을 훨씬 넘기는 조건이었다. 모집 광고와 다르다고 항의하니 “잘못 올렸다”라고 발뺌했다. 김씨는 “기업은 갑(甲)이고 구직자는 을(乙)이니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누군가는 거짓 광고를 보고 거기라도 가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할 텐데, 조치가 제대로 안 되어 있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해당 회사의 자세한 상황 살펴야

취업 포털 사이트 커리어가 지난 5월 말 구직자 5백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취업 사기 피해 현황 설문조사에 따르면, 취업 사기 피해를 당한 사람들 중 73.3%에 달하는 구직자들이 ‘고용 조건의 허위 및 과장’의 피해를 겪었다고 응답했다. 김씨는 “주변을 보면, 이처럼 허위 고용 조건을 내세운 광고들이 판치는 상황에 구직자들마저 이미 익숙해져, 대다수 회사가 부풀리기를 한다는 것을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라고 전했다. 취업이 힘든 상황에서 기업의 이러한 거짓 취업 광고들은 아직 사회에 발도 디뎌보지 못한 청년들로 하여금 막연한 불신감만을 키우게 만드는 부작용을 심각하게 불러온다. 실제 커리어의 설문조사에서는 취업 사기로 인한 후유증을 묻는 질문(복수 응답 가능)에서, ‘사회에 대한 불신(55%)’ ‘취업 의욕 상실(50%)’ ‘자기 비하(26%)’ 등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문제는 이처럼 만연하는 기업들의 허위 모집 광고에 대해 뚜렷한 대처 방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한 유명 포털 사이트의 구직 관련 카페의 공고를 보고 면접을 보러 갔다가 피해를 본 박정민씨(27·가명)는 “인터넷이라서 제재 조치가 어려운 점을 이용해 다단계회사들도 ‘재택 알바, 고수익 보장’이라는 내용으로 버젓이 허위 모집 광고를 올리고 있다. 사전 정보가 없는 사람들은 의심 없이 지원하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구직 사이트 ‘잡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사업자등록증을 통해 기업 인증 절차를 밟기는 하지만, 사실상 사이트에 광고를 낸 것만으로 허위 사실인지를 구분하기는 어렵다”라며 개인적으로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해당 회사의 상황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고 지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고용노동부 고용서비스정책과의 박신원 사무관은 “인터넷에 구직 관련 통로가 이렇게 활성화되리라고 예측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까지 걸러내기 어렵고, 규제를 늘리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니다. 미미한 건도 신고 접수는 되지만 면접에서 구직자와 기업이 협의해 조정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보기 때문에 규제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막상 피해를 당하게 되더라도 큰 금전적 피해가 아닌 데다가, 혹시라도 신고 기록이 남으면 이후 구직에 문제가 생길까 봐 신고하는 것이 꺼려진다”라는 한 피해자의 우려를 전하자 박사무관은 “공익 신고자 보호 제도가 있어 사적인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피해를 입었을 경우 반드시 신고해달라”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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