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 ‘검은 공천’ 커넥션 또 있다
  • 김지영·안성모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2.08.08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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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공천 헌금’ 파문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비례대표 현영희 의원이 현기환 전 의원에게 3억원을 건넸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현의원이나 현 전 의원은 모두 친박근혜계 인사들이다. 따라서 공천 헌금 파문이 유력 대선 후보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에도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박 전 위원장은 “검찰이 확실하게 의혹 없이 밝혀야 한다”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상당히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그런데 문제는 친박계의 ‘수상한 돈’ 의혹이 이번 사건에서 그치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시사저널>의 취재에서 일부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공천 헌금이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여러 증언과 정황들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그 내막을 공개한다.

ⓒ 시사저널 전영기·유장훈

터질 것이 터졌다. 파문의 진앙지는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 비례대표 현영희 의원이 현기환 전 의원에게 3억원의 공천 헌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이들은 ‘친(親)박근혜계’(친박계) 인사들이다. 현영희 의원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외곽 조직인 ‘포럼부산비전’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현기환 전 의원은 당시 박후보의 특보였으며, 지금도 핵심 측근으로 분류된다. ‘박근혜 캠프’에는 비상이 걸렸다. 박 전 위원장은 “검찰이 확실하게 의혹 없이 밝혀야 한다”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았지만,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지난 3월 중순에 정보 입수하고 취재 시작

2010년 ‘포럼부산비전’ 창립 4주년 행사에 참석한 박근혜 전 위원장. 맨 오른쪽이 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현영희 의원. ⓒ 연합뉴스
<시사저널>이 이와 관련한 정보를 입수하고 취재에 착수한 것은 총선 전인 지난 3월 중순이었다. 여권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사석에서 기자에게 “‘새누리당 실세’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성 정치인’으로부터 공천을 해주는 대가로 수십억 원을 외화로 받았다”라고 말했다. 당시 언급된 ‘새누리당 실세’는 공직후보자추천회 위원을 맡고 있던 현기환 전 의원이었고, ‘여성 정치인’은 현영희 의원이었다. 이미 그때부터 여권 물밑에서 ‘현영희-현기환’ 커넥션이 소문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 이미 실명으로 거론되었고, 내용도 제법 구체적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현영희 의원은 중앙 정치 무대에서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사였다.

기자는 3월 말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부산으로 갔다. 공천 헌금 의혹이 처음 불거진 곳이 부산이었기 때문이다. 부산 지역 정치인들이 공천 결과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던 중 “현의원이 돈을 주고 공천을 받았다”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이다. 우선 이런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 지역 인사를 만나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하고 메모를 남겼다. 그는 새누리당 지역구 공천을 신청했다가 낙천한 인사였다. 그가 공천 헌금과 관련한 내용을 잘 알고 있고, 중간에 누가 돈을 전달했는지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사전에 전해 들은 정보였다. 하지만 그에게서의 연락은 끝내 오지 않았다. 

또 다른 새누리당 지역 인사와 연락이 닿았지만 “공천 헌금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라고 했다. 그는 “부산 지역 공천과 관련해 말이 많은 정도가 아니다. 새누리당 욕을 많이 한다”라고 지역 민심을 전했다. 하지만 공천 헌금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부산 지역 선거에 관여하고 있던 또 다른 인사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현영희 의원이 지역구 공천을 신청했던 중·동구에서 오래전부터 활동해온 민주당의 한 인사는 “현후보가 공천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나오려고 했다. 이를 무마시키고 비례대표를 준 것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당초 공천 헌금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알려진 새누리당 인사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취재는 장기전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던 중 지난 6월 초 현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여권 인사로부터 선관위에서 부산 지역 새누리당 공천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이에 앞서 언급한 부산 지역 인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해줄 말이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시사저널>이 두 달가량 물밑 추적 취재를 하고 있던 중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7월30일, 4·11 총선 공천 과정에서 현기환 전 의원에게 3억원의 공천 헌금을 제공한 혐의로 현영희 의원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등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8월2일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 ‘현영희 의원이 19대 총선에서 지역구(부산 중·동구)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후 공천을 받지 못하자 비례대표 공천을 받기 위해 3월 중순 공천심사위원인 현기환 전 의원에게 3억원의 공천 헌금을 전달했다’라고 밝혔다. 선관위가 한 사건을 검찰에 ‘이첩’하거나 ‘수사 의뢰’하지 않고 ‘고발’ 조치했다는 것은 그만큼 혐의 내용을 확신한다는 의미이다.

선관위는 또 지난 3월 말, 현의원으로부터 2천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가 있는 홍준표 전 당 대표와 현의원으로부터 현 전 의원과 홍 전 대표에게 공천 헌금과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한 혐의가 있는 홍 전 대표의 특보 출신인 조 아무개씨에 대해서도 수사를 의뢰했다. 

내부 고발자의 제보가 결정적 계기 

8월3일 공천 헌금과 관련해 의혹을 받고 있는 현기환 전 의원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현영희-현기환’ 공천 헌금 수수 의혹이 불거진 결정적인 계기는 내부 고발자의 제보였다. 현의원이 부산의 지역구 예비후보로 활동할 당시 사무장과 운전기사, 수행비서 등의 역할을 했던 정 아무개씨가 선관위에 제보했던 것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정씨는 30대 중반으로 호남 출신인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현의원과 최측근이었던 정씨는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앙숙지간으로 돌변한 것일까. 새누리당의 핵심 당직자는 “현의원이 지역구 예비후보로 뛸 당시 현의원은 정씨에게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4급 보좌관 자리를 약속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지역구 의원이 아닌 비례대표 의원이 되면서 정씨에게 6급 비서 자리를 주기로 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진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의원은 8월2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씨는 예비후보자 시절 수행 업무를 도왔던 사람으로 선거 이후 4급 보좌관직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씨의 요청을 거절했고, 이후 나와 우리 가족에게 협박했다. 한 개인(정씨)의 불순한 목적을 가진 음해에서 비롯되었다”라고 해명했다. 현의원과 정씨의 주장이 다소 엇갈리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정씨가 내부 고발자에게 지급되는 포상금을 받기 위해서 제보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제보 내용이 검찰 수사를 통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정씨에게는 최고 5억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고 선관위는 밝혔다. 

부산 사하구 갑 지역구에서 18대에 이어 19대에서도 공천이 유력시되었던 현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 ‘친박계’로는 처음으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 위원 10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임되었다. 현 전 의원이 위원으로 선정된 배경과 관련해 새누리당 안팎에서는 “현위원은 최경환 의원의 강력한 천거로 위원회에 들어갔다”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경환 의원은 현재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 캠프에서 총괄본부장을 맡고 있는 핵심 실세이다. 최본부장과 현 전 의원은 ‘친박계’ 내에서도 특히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공천 헌금을 제공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현영희 의원은 교육자 출신이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교육대학교를 졸업한 후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84년 유치원을 설립했고 이후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부산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4월 총선 때 부산 중·동구 지역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지역구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 대신 비례대표 후보 23번을 배정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현의원은 상당한 재력가이기도 하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현의원의 재산은 남편의 것까지 포함해 모두 1백81억여 원이다. 재산 순위는 국회의원 3백명 가운데 6위였다. 현의원의 남편은 부산 지역에서 철강업 등을 하는 사업가로 전해졌다. 현의원과 현 전 의원 등은 혐의 내용을 “전혀 사실무근이다”라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친박계의 ‘수상한 돈’ 의혹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시사저널> 취재 과정에서, 일부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공천 헌금이나 불법 정치자금 등을 수수했다는 여러 증언과 정황들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우선 친박계 핵심으로 꼽히는 중진 의원 ㄱ씨의 실명이 공천 헌금과 관련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ㄱ의원은 3억원을 수수한 의심을 받고 있는 현 전 의원과도 절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당에서도 중책을 맡고 있다. 친박계의 한 인사는 “총선 당시 ㄱ의원에게는 더 많은 공천 헌금이 전달되었다는 소문이 은밀하게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라며 친박계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또한 박근혜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ㄴ의원은 기업체 등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친박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사들의 ‘활동비’ 등을 지원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ㄴ의원이 활동비를 챙겨주는 방식으로 친박 인사들을 관리하면서 친박계의 핵심으로 떠올랐다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ㄴ의원의 측근 인사들이 박근혜 후보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있다. 마치 대선에서 승리한 듯이 벌써부터 친박 내에서 전횡을 일삼고 있다”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ㄱ의원과 ㄴ의원은 같은 친박계에 속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는 것이 주변 인사들의 전언이다.

안철수 원장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

ㄴ의원이 연루된 또 다른 ‘검은돈’ 관련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친박계에 속하는 ㄷ의원이 자신이 원하는 국회 상임위원회로 배정받을 수 있도록 힘을 써달라며 ㄴ의원에게 거액을 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ㄷ의원은 자신이 가고자 했던 상임위가 아닌 다른 상임위에 배정받게 되었고, 이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해당 상임위에 출석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전언이다. ㄷ의원의 보좌관은 전화 통화에서 “우리 의원과 ㄴ의원이 한때는 끈끈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상임위 배정 문제로 현재는 소원한 관계이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후보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한 중견 정치인의 부인이 공천 헌금을 받았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는 판이다.

이같은 의혹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새롭게 드러날 경우, 대선 정국에서 새누리당은 크게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특히 ‘쇄신과 개혁’을 강조하면서 총선을 진두지휘했던 박근혜 후보도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이 의혹들에 대해서는 향후 검찰 수사를 좀 더 지켜보아야겠지만, 이번에 불거진 ‘현영희-현기환’ 의혹 사건만으로 새누리당은 이미 큰 타격을 입었다. 새누리당 대선 전략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반면 기존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입장에서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이번 사태가 안원장의 출마 의지를 더 견고하게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 2003년 대검 중수부의 불법 대선 자금 수사로 정치권은 큰 수렁에 빠져든 적이 있다. 특히 ‘차떼기 정당’이라는 비난을 받은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천막 당사까지 차리는 묘책으로 그나마 위기를 모면했다.  그런데 이번 공천 헌금 사건이 향후 대선 정국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속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검찰의 수사가 ‘현영희-현기환’ 수사로 그칠지, 아니면 또 다른 ‘돈 의혹’ 사건들로 확대될지가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싸늘해지는 부산 민심…발 등에 불 떨어진 새누리당 

부산 민심이 들썩이고 있다. 지역의 새누리당 전·현직 의원이 공천 헌금에 연루된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여당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는 분위기이다. 더구나 의혹의 당사자인 현기환 전 의원과 현영희 의원은 친박계 내에서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핵심 인사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공천 헌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대세론을 이어가고 있는 박 전 위원장의 대권 행보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대선에서 맞붙게 될 민주당은 그동안 새누리당의 텃밭으로 여겨지던 부산 지역에 ‘야풍’의 근거지를 마련하겠다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왔다. 지난 4·11 총선에서 민주당은 두 명의 당선자를 내는 데 그쳤지만 야권 연대를 통해 40%의 높은 득표율을 올려 그 가능성을 엿보았다. 새누리당 간판만 달면 당선된다는 말은 이미 철 지난 옛 노래가 된 셈이다.

대선 주자 간 대결에서 아직까지는 이 지역에서 박 전 위원장이 야권 주자들에게 앞서 있지만 그 격차는 차츰 줄어드는 추세이다. 민주당의 유력 주자인 문재인 상임고문과 대선 출마 선언을 앞두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모두 부산 출신이라는 점도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천 헌금 의혹이라는 대형 악재가 터져 나와 갈 길 바쁜 박 전 위원장의 발목을 잡는 모습이다.

민주당 부산시당 관계자는 “부산 시민들이 새누리당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16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이 부산에서 얻은 표가 1백30만표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80만표 정도로 내려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부산 시민의 야성은 시간이 갈수록 복원되고 있다. 야권의 유력 후보들이 PK(부산·경남) 출신이라는 점도 시민들이 야권을 더 유심히 바라보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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