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20년 만에 일어난 대이변 ‘미래 권력’이 ‘현재 권력’ 눌렀다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2.08.12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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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대권 주자 박근혜 전 위원장과 안철수 원장이 1, 2위 차지…이명박 대통령은 3위로 내려앉아


큰 이변이 다시 일어났다. 정확히 20년 만이다. 지난 1992년, <시사저널>이 각계 전문가 1천명을 대상으로 해마다 실시하는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설문조사에서 처음 이변이 일어났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조사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3위로 추락한 것이다. 대신 노대통령의 위에는 당시 여야 유력 대선 후보였던 김영삼 민자당 대표와 김대중 민주당 대표가 1, 2위에 자리 잡았다. ‘2012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는 반복되는 역사의 교훈을 우리 사회에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 48.4% 대 안철수 46.0%로 대선 지지도와 엇비슷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현직 대통령이 갖는 권한은 막강하다.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조사에서 현직 대통령이 항상 맨 윗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하다. 특히 일반인의 단순한 인기도 조사가 아닌, 우리 사회 오피니언 리더인 전문가들의 냉정하고 예리한 시선을 반영하는 영향력 조사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시사저널>이 1989년 창간 이후 해마다 실시하고 있는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조사에서 현직 대통령이 맨 윗자리에서 밀려난 적은 1992년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역대 정권마다 급격한 레임덕에 시달리며 ‘미래 권력’의 눈치를 보아야 했던 집권 5년차에서도 꿋꿋이 맨 윗자리를 지켰다. 1997년의 김영삼 대통령이 그랬고, 2002년의 김대중 대통령이 그랬으며, 2007년의 노무현 대통령 또한 그랬다.

그러나 20년 만에 다시 한번 ‘현재 권력’은 ‘미래 권력’에 정국의 헤게모니를 내주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조사에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3위를 차지했다. 1위는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다. 2위는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지목률이다. 박 전 위원장은 48.4%, 안원장은 46.0%로 거의 어깨를 나란히 했다. 반면 이대통령은 26.1%에 그치고 있다. 이쯤 되면 ‘빅3’에도 못 낀다. 본지 조사에 응한 각계 전문가 1천명 가운데 7백39명은 이대통령이 현재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인사 3인 중의 한 명에도 끼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한국정치학회장을 지낸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학 교수는 “2007년 대선에서 역대 대선 최다 표차를 기록할 만큼 압도적 지지를 이대통령에게 보냈는데, 그런 기대감과는 달리 결과가 너무 못 미친 데 대한 실망감이 반영된 것이다. 즉, 현재 권력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접고, 벌써부터 미래 권력에 대해 새로운 기대감을 갖는 정서와 욕구가 표출된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는 역대 대통령들이 겪었던 집권 마지막 해의 단순한 레임덕 현상과는 다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도 당시 (집권 5년차에) 비판은 있었지만, 나름으로 국정 운영 최고지도자로서의 지위와 역할은 해왔는데, 지금 이대통령은 그 수준에도 못 미치는 대통령의모습으로 비치고 있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박근혜 전 위원장은 본지의 2004년 조사 때 3위로 처음 등장했다. 당시 그는 ‘차떼기’ 사건과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 대표를 맡아 “80석도 건지기 어렵다”라던 17대 총선에서 1백21석을 확보하는 성과를 나타냈다. 이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의 유력 대선 주자로 부상하며 2006년까지 줄곧 3위를 유지했고, 2007년에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 패했음에도 5위를 차지했다. 현 정권에서도 이대통령이 1위를 유지하는 가운데, ‘경제 권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함께 계속 2위와 3위를 오가며 ‘미래 권력’으로 불려왔고, 결국 올해 맨 윗자리에 올라섰다.

문재인 5위로 상승…김두관·손학규는 14위와 17위

안철수 원장의 상승세는 무척 가파르다. 지난해 공동 10위(3.5%)로 처음 ‘베스트 10’에 진입한 데 이어 올해에는 2위로 뛰어올랐다. 46.0%의 지목률로 박 전 위원장과의 차이도 2.4%포인트 차에 불과했다. 주목되는 것은 10개 분야의 전문가군(群)에서 박 전 위원장과 안원장에 대한 지목 성향이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박 전 위원장의 경우, 정치인(69.0%)과 언론인(59.0%) 군에서 특히 지목률이 높았고, 행정 관료(50.0%), 교수(48.0%), 법조인(42.0%) 군에서도 수위를 차지했다. 반면 안원장은 사회단체인(67.0%)과 금융인(53.0%) 군에서 높은 지목률을 나타냈고, 기업인(46.0%), 문화예술인(48.0%), 종교인(33.0%) 등에서 박 전 위원장을 제치고 수위를 차지했다. 즉 정치·사회 분야에서는 박 전 위원장이, 경제·문화 분야에서는 안원장이 각각 높은 경쟁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또 한 명의 유력 대권 주자인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은 13.8%로 5위에 올랐다. 문고문은 지난해 15위(1.6%)에서 10계단 상승하며 처음 ‘10위권’ 내에 진입했다. 문고문은 사회단체인(23.0%)과 정치인(18.0%)들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지목률을 얻었다. 문고문과 함께 민주당 대권 주자 ‘빅3’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1.6%)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1.3%)는 각각 14위와 17위에 이름을 올렸다. 김 전 지사는 올해 대권 주자로 부각되면서 20위권 내에 처음 이름을 올렸지만, 손 전 대표는 지난해 민주당 대표 시절 4위(13.6%)까지 올랐던 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6.1%의 지목률로 3위로 내려갔는데, 특히 행정 관료들로부터도 39.0%로 박 전 위원장(50.0%)에 뒤처지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공무원들조차 대통령보다 여당 대선 후보의 영향력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이대통령이지만 종교인들로부터 지목률 14.0%를 기록해 평균치보다 훨씬 밑돈 것도 눈에 띈다.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들, 세월 흘러도 강세 여전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월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93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올해 조사에서도 전직 대통령들의 강세는 여전했다. 박정희·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미 고인이 되었음에도 나란히 6~8위에 이름을 올리며 여전히 우리 사회 저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난 1999년 조사에서 고인으로는 처음 8위(4.0%)로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린 이후, 지지난해(3.6%)와 지난해(5.1%) 연이어 9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올해는 11.5%로 지목률이 상승하며 6위에까지 올라섰다. 박 전 위원장의 영향력 증대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8년 퇴임 후에도 꾸준하게 6~8위를 유지하며 여전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6.6%로 6위였던 것이 올해 순위는 7위로 한 계단 내려갔지만 오히려 지목률은 10.5%로 퇴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력 역시 놀랍다. 2003년 퇴임 후, 2004년만 제외하고는 매년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고, 특히 2007년과 2009년에는 4위에까지 올랐다. 지난해 7위(5.4%)에서 올해 8위로 한 계단 내려갔지만, 역시 지목률은 6.2%로 상승했다.

이처럼 고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들은 정치 분야 말고 경제·사회·문화 각 분야에도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10위권 밖에서도, 김구 전 임시정부 주석(2.4%)이 11위,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2.1%)이 13위, 김수환 전 추기경(1.4%)이 공동 15위, 이승만 전 대통령(1.2%)이 18위,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0.7%)이 공동 21위, 비디오작가 백남준씨(0.3%)가 공동 32위를 각각 차지했다.

이건희 회장 4위…20년간 한 번도 10위권에서 밀린 적 없어

5년마다 부침이 반복되는 정치권력과는 달리 임기 없는 권력으로 평가받는 ‘경제 권력’의 대표적 인물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영향력은 올해 역시 멈출 줄을 모른다. 18.4%의 지목률로 4위를 차지했다. 이회장은 1992년 7위로 처음 10위권 내에 진입한 이후 올해까지 21년 동안 단 한 번도 10위권 밖으로 벗어나본 적이 없다. 특히 2001년 4위에 오른 이후부터는 올해까지 12년 동안 4위권 밑으로도 내려가지 않은 채 늘 상위권을 점하고 있다. 그 위에는 현직 대통령과 여야의 유력 차기 대권 주자들만이 있었을 뿐, 다른 어떤 인물도 그 앞에 서본 적이 없다. 특히 2004년서부터 2008년까지 5년 연속 그리고 지지난해와 지난해는 현직 대통령 바로 밑의 2위를 차지하며, 현직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재벌 그룹 회장의 ‘경제 권력’은 1980~90년대에 맹위를 떨쳤다. 이회장 외에도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 등이 10위권에 자주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경쟁 체제를 형성했으나, 2000년대 이후부터는 완전히 이회장 독주 체제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지난 2008년 8위를 끝으로 10위권 밖으로 사라진 이후 더욱 두드러진다. 정회장은 올해 조사에서도 0.7%로 공동 21위에 그쳤다. 이회장의 21년 경제 권력이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관심거리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NGO 지도자 부문의 단골 1위였다. 이런 영향력을 바탕으로 해마다 영향력 인물 순위에서 11~20위권 순위를 유지했는데, 올해는 서울시장에 오르면서 공동 9위로 10위권 내에 진입했다. 역시 공동 9위에 오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006년 이후 7년 연속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반면 지난해 5위(8.3%)에까지 오르며 주목받았던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는 올해 공동 15위(1.4%)로 내려섰고, 올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퀸즈파크 레인저스로 소속을 옮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거 박지성 선수가 12위(2.3%)로 스포츠인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1.0%)가 19위, 안철수 원장의 멘토로 알려진 법륜 스님(0.8%)이 20위, 이해찬 민주당 대표(0.7%)가 공동 21위에 각각 이름을 올린 것도 눈에 띈다.



 
ⓒ 시사저널 박은숙
2002년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 혹은 세력’ 조사에서 1위는 한나라당이 차지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야당이었지만 집권 여당인 민주당을 제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 혹은 세력’으로 지목받았다. 전신은 신한국당이었고, 그 전신은 민자당이었다.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 시절 집권 여당으로서 권력을 누려왔던 한나라당은 야당 시절에도 의회 다수 의석을 확보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2004년 탄핵 역풍으로 원내 제1당의 위치에서 밀려났고, 그 여파로 당시 제1당이자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1위 자리를 내주었지만, 2006년 다시 1위를 재탈환했다. 그리고 지난해까지 6년 연속 부동의 1위를 고수했다.

한나라당은 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으로 다시 변신했다. 구태에 빠진 당의 전면적 쇄신을 꾀하기 위한 자구책이었고, 4월 총선에서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며 다시 원내 제1당을 유지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 혹은 세력’ 조사에서 1위 수성에 실패했다. 16.7%로 2위. 지난해(17.6%)에 비해 0.9%포인트 하락했다.

1위는 언론계가 차지했다. 17.8%의 지목률을 나타냈다. 지난해에는 12.0%의 지목률로 한나라당, 삼성그룹에 이어 3위였다. 이윤기 미디어리서치 차장은 “전문가들이 특히 언론계를 주목한 이유는 올해 4월 총선과 최근의 여러 언론 매체 파업 그리고 SNS 등 뉴미디어의 출현으로 언론계가 이슈가 된 부분이 반영된 듯하다”라고 분석했다.

새누리당이 2위로 밀려났지만, 정치계의 영향력은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는 모습이다. 국회(15.2%)가 3위, 정치권(14.2%)이 4위, 정당(11.0%)이 8위를 각각 차지했다. 민주통합당은 7.7%의 지목률로 12위에 그쳤다. 지난해에 비해 순위(8위)와 지목률(8.5%) 모두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또 하나의 집단 및 세력은 역시 경제 분야에 있다. 그 선봉이었던 삼성그룹은 지난해 2위까지 치고 올라갔으나, 선거의 해인 올해는 13.7%의 지목률로 5위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대기업(9.3%)이 9위, 경제계와 재벌(이상 9.2%)이 공동 10위에 각각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04년 조사에서 한때 1위로 맹위를 떨친 바 있던 시민단체는 12.1%로 6위에 올랐고, 검찰(11.3%)이 그 뒤를 이어 7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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