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절벽’에 선 미국의 탈출구는?
  • 한면택│워싱턴 특파원 ()
  • 승인 2012.08.1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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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정부 지출 대폭 삭감하거나 세금 인상하면 경기 침체 불 보듯…전 세계에 악영향 미칠 우려

1965년 7월30일 미국 미주리 주 트루먼 도서관에서 린든 존슨 당시 대통령(왼쪽)이 ‘메디케어’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 AP 연합
미국이 ‘재정 절벽(fiscal cliff)’에서 추락할지 모른다는 적색경보가 잇따라 울리고 있다. 재정 절벽은 급격한 정부 지출 삭감이나 세금 인상으로 경제에 직격탄을 맞는 상황을 의미한다. 미국은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재정 절벽에서 떨어질 경우 불경기를 맞이하고 전 세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경고장을 받고 있다. 결국 워싱턴 정치권이 11월6일 대통령 선거 이후 탈출구를 찾을 가능성이 크지만, 출구 찾기가 늦어지는 것만으로도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은 올해 말 여러 곳에서 재정 절벽에 직면하게 된다. 첫째로 올해 말에 감세 조치가 만료될 예정이어서 연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내년 1월2일부터 세금이 대폭 올라가게 된다. 워싱턴 정치권이 합의점을 찾지 못해 감세 조치가 올해 말에 만료될 경우 모두 예전의 소득세율로 환원된다. 현재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연소득이 개인 20만 달러, 부부 25만 달러 이상인 부유층의 세금을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반면 공화당은 전체 납세 계층의 감세 연장으로 맞서고 있다.

상원·하원, 상반된 결정 내리며 해법 못 찾아

미국 연방의회는 여름 휴회에 들어가기 직전인 8월 한 달 동안 상반된 결정을 내림으로써 해법을 찾지 못했다. 민주당이 다수당인 연방 상원에서는 부자 증세안이 가결된 반면,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연방 하원에서는 일괄 감세 연장이 승인되었다. 오바마 대통령과 대다수 민주당 의원은 전체의 98%에 대해서는 감세 조치를 1년 연장하되 연소득 개인 20만 달러, 부부 25만 달러 이상 계층에 대해서는 세금을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방안이 실행되면 25만 달러 이상인 고소득층의 개인 소득세율이 현행 33%는 35%로, 35%는 39.6%로 환원된다. 그럴 경우 부유층의 세금이 올라가 연방 정부는 10년간 8천억 달러를 더 거둬들이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대해 공화당은 즉각 “경기 회복세가 다시 둔화된 시기에는 어떠한 세금 인상도 불가능하다”라고 일축하고 나섰다. 미트 롬니 공화당 대통령 후보와 공화당 의원 전원은 부유층을 포함해 모든 계층의 감세 조치를 최소한 1년 더 연장하는 방안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올해 말까지 워싱턴 정치권이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내년 1월2일부터 첫해 국방비 5백50억 달러 등 2천1백50억 달러를 삭감하는 것을 시작으로, 정부 지출을 10년 동안 1조2천억 달러나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워싱턴 정치권은 적자 감축 투쟁에서 앞으로 10년간 1조2천억 달러의 연방 정부 예산을 자동 삭감하되 국방비에서 절반인 4천9백20억 달러, 교육 등 다른 일반 예산에서 4천9백20억 달러씩 축소하기로 합의한 상태이다. 문제는 연방 정부 지출을 갑자기 대폭 삭감하게 되면 관련 분야에서 일자리 수백만 개가 없어지면서 경기 회복이 물 건너가게 된다는 점이다.

스티븐 풀러 미국 조지메이슨 대학 경제학 교수가 작성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워싱턴 정치권의 합의에 의해 향후 10년간 국방 예산에서 4천9백20억 달러와 일반 국내 예산에서 4천9백20억 달러를 삭감해야 한다. 그럴 경우 국방과 군수업체에서 1백9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교육 등 일반 부서에서 1백5만개의 고용이 상실될 것으로 이 보고서는 추산했다.

더불어 실업률도 현재 8.2%에서 내년에는 9.7%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런데 현행법상 기업들의 해고 통지는 최소한 60일 내지 90일 앞서 해당 근로자들에게 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11월6일 선거일을 목전에 두고 무더기 해고 통지가 발송되어 백악관행 레이스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군수업체들이 몰려 있는 버지니아 등 일부 경합 지역들에서 심할 것으로 전망된다.

IMF는 ‘미국 경제 연례 보고서’에서 “재정 절벽이 현실화한다면 미국 경제는 올 하반기 정체 국면을 보인 뒤 2013년 초에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설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재정 절벽의 이전 효과(스필오버)는 무역 부문을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될 것”이라면서 캐나다와 멕시코 등 이웃 국가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유럽과 일본 등에도 무시할 수 없는 여파를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경제 분석가 4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비슷한 경고가 나왔다. 경제 분석가들은 미국 경제가 올해 말까지 타개책을 찾지 못해 재정 절벽에서 추락하면 내년 GDP 성장에서 2.2%포인트가 빠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그럴 경우 내년 미국 경제 성장률은 제로 성장으로 제자리걸음하거나 마이너스 성장으로 경기 침체를 겪을 것이 우려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미트 롬니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러닝메이트로 폴 라이언 연방 하원 예산위원장을 지명했기 때문에 예산과 세금 논쟁이 더욱 격화되어 11월6일 선거 이전에는 아무런 해법도 찾지 못할 것이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오바마 저격수’로 나선 폴 라이언 하원의원이 향후 10년간 5조3천억 달러를 삭감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예산 삭감안을 앞장서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8월3일 미국 워싱턴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부자 증세안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EPA 연합

대선 이후 감세 연장 등 타협안 채택될 듯

라이언의 예산안에서는 2022년부터 1956년 이후 출생자들에 대해서는 노년층 의료보험인 메디케어를 아예 폐지하고 민간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보조금 제도로 전환하겠다고 제안해 논란을 빚고 있다. 그는 예산안에서 메디케어 폐지를 통해 2천50억 달러의 정부 예산 지출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는 중·장년 세대들이 메디케어 택스(노년층 의료보험료)를 낸 후에도 65세부터 정부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복잡한 민간 보험을 스스로 구입해야 한다는 내용이어서 노년층의 반발과 지지층의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라이언의 방안에서는 이와 함께 저소득층 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 지원 예산도 10년간 7천7백70억 달러나 대폭 삭감할 것을 제시했다. 이어 연방대법원으로부터 합헌 판결을 받아 2014년부터 ‘전국민 의료보험 의무화’ 전면 시행에 들어가는 ‘오바마 케어’ 법을 폐지해 10년간 1조6천억 달러를 절감하겠다고 강조했다.

폴 라이언 부통령 후보를 비롯한 공화당 진영 내 보수파들은 부자들의 세금을 대폭 내려주는 방안을 들고 나왔다. 이는 소득세율을 현재 5개 납세 계층에서 10%와 25%, 단 두 개 계층으로 단순화시킨다는 것으로, 현재 소득의 28%와 33%, 35%를 세금으로 납부하고 있는 부유층의 소득세를 25%로 대폭 낮춰주겠다는 제안이어서 극우적인 세법 개정안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대해 오바마 진영은 ‘롬니-라이언 팀이 부자들의 세금만 깎아주고 노년층·저소득층 의료 혜택, 대학생들의 학자금 융자 등을 축소시키려는 시도’라며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롬니 후보는 적자 감축과 작은 정부라는 정통 보수주의 정책으로 보수 진영을 결집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은퇴하기 시작한 베이비부머 세대 7천7백만명이 메디케어 폐지에 분개하며 롬니-라이언 지지표에서 대거 이탈할 위험이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게다가 롬니 후보로서는 논쟁의 초점이 경제난이 아니라 메디케어 폐지, 예산 삭감으로 옮겨져 자신의 승부수가 오히려 퇴색되는 손해를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11월6일 선거까지는 민주·공화 양당이 벼랑 끝 대치를 지속하다가 선거가 끝난 직후에는 서로의 치명타와 미국 경제의 타격을 피하기 위해 국방비 등의 대규모 삭감을 재조정하는 대신 전체 계층의 감세를 1년 더 연장하는 타협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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