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서 얻는 리더십
  • 김재태 편집부국장 (purundal@yahoo.co.kr)
  • 승인 2012.08.1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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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많은 집에서 살다 보면 형제간 서열에 따라 서로의 캐릭터나 행동 방식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종종 느끼게 됩니다. 특히 맏형의 경우가 더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책임감이나 신중함이 대단합니다. 마치 ‘큰형’ DNA라는 것이 따로 있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동생과 나이 차이라도 많이 나게 되면, 맏형은 형 이상의 이미지와 권위까지 갖게 됩니다.

지난 런던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은 참 잘 싸웠습니다. 모든 승리가 다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값진 것이겠지만, 무엇보다 뜻깊고 큰 열광을 모은 승리는 아마 축구의 동메달 획득이 아닐까 싶습니다. 축구 종목에서 나온 사상 첫 메달이라는 의미도 그렇거니와, 우리 선수들이 보여준 경기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었다는 점이 흐뭇합니다. 이처럼 눈부신 축구의 도약을 이끈 주역은 물론 경기에 참가한 선수 개개인들이겠지만, 그들을 조련하고 지휘한 홍명보 감독의 공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홍명보 감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단순히 성적 때문만은 아닙니다. 대표팀을 이끌면서 그가 보여준 리더십도 놓칠 수 없는 덕목입니다. 언론들도 앞다투어 ‘홍명보 리더십’을 주목했습니다. 홍명보 리더십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맏형 리더십’입니다. 그는 선수들을 윽박지르거나 강압적으로 내몰지 않고 형님처럼 부드럽게 다독이면서, 선수들이 자율 의지에 따라 능력을 끌어올리는 이른바 ‘팀 정신’ 고양에 주력했습니다. 선수 시절 주장으로도 활약했던 그는 “행정가의 꿈을 잠시 접고 지도자의 길을 걷기로 하면서 카리스마를 버리기로 다짐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시사저널> 제1190호 ‘런던에서 꽃피운 카리스마 없는 카리스마’ 참조). 그의 말대로라면 카리스마를 버림으로써 또 다른 카리스마를 얻은 셈입니다.

홍명보 리더십의 또 다른 요체는 ‘존중’입니다. 존중은 선수들과의 관계를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로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는 선수들에게 존댓말을 쓰면서 진심 어린 존중을 표현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선수들의 자존감도 한층 높아졌습니다. 선수들로서는 절로 흥이 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홍명보 리더십이 필요한 곳은 축구장만이 아닙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정치권의 현실을 돌아보면, 아직도 구시대적인 리더십에 연연해 있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대선 주자 중에도 잘못 배워서이든, 아직 배우지 못해서든 측근 정치에 기대어 있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측근이라는 칸막이에 갇혀서는 소통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말들이 왜곡되고 뜻이 왜곡되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키를 맞추고, 국민의 눈높이에 마음을 맞추는 수평적 리더십을 갖지 못하면 흐름에서 낙오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단상에서 내려서고, 밀실에서 걸어나와야 비로소 국민의 마음과 나란히 하는 정치도, 철학도, 비전도 나올 수 있습니다. 홍명보 감독이 그러했듯이, ‘팀 정신’ 즉 시대정신에 초점을 맞춘 사람만이 대선 승리도 거머쥘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버려서 얻어지는 리더십이 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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