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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야구 ‘대어’들, 왜 먼 길 못 떠나나

초특급 유망주들 대다수 국내 프로팀 선택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ㅣ 승인 2012.09.03(Mon) 17: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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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배 선수. ⓒ 연합뉴스
“서너 명을 제외하고는 대어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8월20일 있었던 ‘2013 신인 지명 회의’에 참석한 아홉 개 구단 스카우터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하지만 스카우터들은 한결같이 “그나마 국외 진출이 예상되던 선수들이 신인지명회의에 참가해 다행이다”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탐내던 천안북일고 투수 윤형배는 국외 진출 대신 국내 프로야구 진출을 선택했다. 한 스카우터는 “윤형배의 국내 잔류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라고 평했다.

 

메이저리그의 영입 제의 뿌리친 윤형배 선수


지난 5월, 고교야구 황금사자기대회가 열린 서울 목동구장에 미국 메이저리그 스카우터가 찾아왔다. 그는 윤형배의 투구를 보며 연방 엄지를 치켜세웠다. “시속 1백50km 강속구가 돋보인다. 제구도 수준급이다. 볼을 던져도 죄다 낮게 형성된다. 지금 정도의 수준이라면 3~4년 안에 빅리그 승격이 유력하다.”

그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윤형배는 올 시즌 시속 1백52km의 강속구를 던져 국내 프로 스카우터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프로 수준의 체인지업과 슬라이더, 커브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즉시 전력감’으로 통했다. 특히나 또래 투수들이 상체 위주의 투구를 하는 데 반해 윤형배는 하체 위주의 부드러운 폼으로 투구해 부상 위험이 낮다는 평을 들었다.

그런 윤형배이기에 국내 프로 스카우터들은 혹시라도 오랜만에 출현한 초고교급 투수가 국외로 진출하지나 않을까 조바심을 냈다. 신인 우선 지명권을 쥔 NC 다이노스는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조짐이 없지는 않았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윤형배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며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려고 움직였다. 그즈음 국내 프로 스카우터들 사이에서는 “LA 다저스가 윤형배에게 100만 달러 이상을 제시했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해마다 거듭된 고교 유망주의 국외 유출이 올 시즌에도 재현될 처지였다. 하지만 윤형배는 메이저리그의 구애를 뿌리치고, 일찌감치 국내 프로야구 진출을 선언했다. 운형배의 국내 잔류 때문일까. 2006년 이후 6년 동안 지속되었던 고교 유망주의 국외 진출이 올해에는 뚝 끊겼다.

올해 고교 유망주의 국외 진출이 유독 잠잠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먼저 현저히 낮은 성공 가능성이다. 이헌탁 TBN 대표는 아마추어 유망주의 국외 진출을 돕는 에이전트이다. 이대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교 유망주들이 ‘박찬호’ ‘추신수’를 롤 모델 삼아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적극 시도했다. 학부모들도 아들의 미국행을 적극 권장했다”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대표는 “요즘은 선수들과 학부모들이 동시에 메이저리그 진출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1994년 박찬호가 LA 다저스에 진출하고서 2001년 류제국까지 총 26명의 국내 아마추어 유망주가 미국 구단과 계약했다. 이 가운데 박찬호, 김병현, 최희섭, 서재응, 김선우, 조진호, 추신수, 백차승, 류제국 등을 제외하면 대다수 국외파 선수는 빅리그 무대를 밟지 못하고 마이너리그를 전전했다. 특히나 2002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한 정성기 이후에는 단 한 명도 빅리그로 승격하지 못했다. 되레 쓸쓸히 귀국하고서 조용히 은퇴하는 선수도 있었다. 국외 무대에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교훈이 고교 유망주의 국외 진출에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3년간 윤형배를 지도한 천안북일고 이정훈 감독 역시 같은 이유로 제자의 미국행을 반대했다.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코치 연수를 했던 이감독은 누구보다 미국 야구를 잘 알고 있었다. 이감독은 “미국 스카우터들이 투수 윤형배, 야수 강승호와 김인태에게 미국행을 설득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반대했다. 미국에서 성공할 확률이 극히 낮고, FA(자유 계약 선수) 제도가 생긴 이래 한국 프로야구의 보상 수준이 높아진 것이 이유였다. (윤)형배에게도 ‘몇 년간 고생해 박찬호가 되느니 한국에서 뛰며 ‘제2의 선동열’이 되고, 그 여세를 몰아 국외에 진출하는 편이 낫다’고 설득했다. 강승호·김인태 같은 야수에게는 ‘미국에서 야수로 성공하는 것이 투수보다 훨씬 힘들다’라며 ‘프로에서 실력을 쌓고서 9년 후 FA 자격을 취득해 국외로 진출해도 늦지 않다’라고 조언했다”라고 밝혔다.

   
지난 8월20일 2013 프로야구 신인 선수 지명회의에서 9개 구단 1라운드에 지명된 선수들. ⓒ 연합뉴스
 

성공 어렵고 실제 받는 돈도 많지 않다는 인식 확산


이감독의 조언이 작용한 것일까. 세 선수는 공히 미국행을 뿌리치고, 2013 신인지명회의에 참석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과거와 달리 낮은 몸값을 제시하는 것도 고교 유망주들이 국내에 잔류하는 이유이다. 윤형배의 몸값이 ‘100만 달러 이상’이라는 소문이 퍼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 구단의 한국 담당 스카우터는 “보스턴 레드삭스가 윤형배에 80만 달러를 제시한 것이 최고액이라고 알고 있다. LA는 확정적이고도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한 적이 없다”라고 귀띔했다.

이 스카우터는 “80만 달러면 각종 세금을 제외하고, 초기 미국 정착금을 고려할 때 정작 선수가 손에 쥐는 돈은 4억원 안팎이다. 말이 80만 달러이지, 한국 구단이 제시하는 계약액보다 되레 실제 수령액이 낮다. 그 정도 몸값으로는 윤형배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100만 달러 이상을 부르지 않는 이유가 있다”라고 말했다.

답은 간단하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터 눈에는 윤형배가 초고교급 투수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TBN의 이대표는 “2001년 덕수정보고 졸업 예정자였던 류제국이 계약액으로 1백60만 달러를 받은 뒤, 어느 선수도 100만 달러를 돌파한 적이 없다. 미국 스카우터들은 ‘한국 유망주들이 2001년보다 훨씬 실력이 떨어진다’고 믿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선수들의 실력이 떨어지니 미국 구단들이 고액 배팅을 하지 않고, 그 정도 돈을 받을 것이면 차라리 국내에 남는 것이 낫다는 선수의 생각이 묘하게 맞물리면서 유망주의 국외 진출이 멈췄다는 뜻이다.

   
지난해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최우수 선수에 선정된 상원고 김성민 선수. ⓒ 뉴스뱅크
야구계는 고교 유망주들이 국외 진출을 자제하게 된 배경에 ‘김성민 제명 효과’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본다. 대구 상원고 좌완 투수 김성민은 지난 1월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계약에 합의했지만, 신분 조회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어 대한야구협회로부터 ‘무기한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볼티모어가 ‘메디컬 테스트에서 이상을 발견했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며 김성민은 무적 선수가 되었다. 이 상태라면 김성민은 국외 진출은 고사하고, 특기생 자격으로 대학에도 입학할 수 없다. 무기한 자격 정지 상태여서 협회 주최의 어떤 경기에도 뛰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구단 스카우터는 “자칫 ‘제2의 김성민’이 될까 봐 국외 진출을 도모하던 학부모들이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앞으로도 고교 유망주들이 국외 진출을 자제하는 분위기는 계속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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