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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선도자’로 변신할 수 있을까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ㅣ 승인 2012.09.03(Mon) 19: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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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4일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나온 평결은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는 스마트폰 업종 종사자에게 서둘러 기술 특허를 확보하거나 혁신에 나서라는 메시지이다. 삼성전자는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제 ‘퍼스트 무버’로서 애플과 맞서야 한다. 그 첫 전투지는 9월 말 출시되는 아이폰5와 벌이는 시장이 될 것이다.

   
2012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갤럭시S3 출시 행사 현장. ⓒ 삼성전자 제공

지금까지 스마트폰 사업은 애플이 주도하는 게임이었다. 애플은 스마트폰의 디자인 콘셉트,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플랫폼 비즈니스까지 창안했다. 스마트폰 제조업체마다 애플이 창안한 모서리가 둥근 4각형 디자인과 네모난 애플리케이션 아이콘, 직관적 유저 인터페이스(UI)를 베꼈다. 삼성전자나 HTC는 발 빠르게 ‘아이폰 안드로이드 버전’을 출시하면서 애플을 뒤쫓았다.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은 유효했다. 서둘러 뒤쫓은 업체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8월24일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나온 평결은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심 배심원들은 ‘삼성전자가 애플의 디자인 특허 세 건과 터치스크린 기술 특허 세 건을 침해했고,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애플에게 손해배상액 10억5천만 달러를 지급하라’라고 평결했다. 애플은 삼성전자 스마트폰 8종에 대해 판매 금지 가처분신청까지 냈다. 모건 리드 미국 경쟁기술협회 집행임원은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 금요일(8월24일)의 평결은 해당 산업 종사자에게 서둘러 기술 특허를 확보하거나 혁신에 나서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아이폰 베끼기’ 전략을 구사해 가장 큰 성과를 거둔 업체이다. 애플이 2007년 1월 아이폰을 처음 출시하자 휴대전화 시장이 피처폰에서 스마트폰 위주로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노키아, 모토로라, LG전자, 소니에릭슨은 시장 변화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면서 미적거렸다. 이와 달리 삼성전자는 휴대전화 연구개발팀 소속 연구원 전원이 연구실에서 먹고 자다시피 하면서 갤럭시S를 서둘러 개발해냈다. 갤럭시S는 디자인, 소프트웨어, 유저 인터페이스에서 아이폰을 베끼다시피 해 독창성이 거의 없었다. 애플은 당시 갤럭시S를 아이폰 카피캣(모방꾼)으로 치부하고 하찮게 평가했다.

그런데 지난해 4월 갤럭시S2가 나오자 시장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갤럭시 시리즈는 전 세계 시장에서 아이폰의 시장 지위를 위협하는 유일한 스마트폰 브랜드로 떠올랐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2에 이어 갤럭시노트까지 출시했다. 잇달아 나오는 갤럭시 시리즈는 아이폰의 시장 점유율을 잠식해 들어갔다. 지난 5월에는 갤럭시S3를 출시했다. 갤럭시S3는 출시 50일 만에 1천만대가 팔렸다. 삼성전자는 멈추지 않았다. 갤럭시노트 10.1을 출시해 아이패드가 독점하다시피 한 태블릿PC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삼성전자가 애플이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시장에서 구축한 철옹성을 무너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아이폰의 진화는 아이폰4S에서 멈추었다. 아이폰4가 지난 2010년 6월 나온 이래 2년이 넘도록 아이폰5는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몇 가지 기능을 개선한 개량형 모델 4S가 나왔을 뿐이다. 그렇다 보니 시장 역전이 일어났다. 삼성전자는 세계 시장 1위 자리에서 애플을 끌어내리고 스마트폰업계의 패자로 등극했다. 스마트폰 누적 판매에서도 삼성전자는 애플에 바짝 다가섰다. 애플은 지금까지 아이폰 시리즈 2억5천3백만대를, 삼성전자는 2억4천6백만대를 팔았다. 7백만대 차이에 불과하다. 지난 8월29일 독일 베를린 IFA2012에서 공개된 갤럭시 노트2가 조만간 출시되는 데다가 지금까지의 갤럭시S3 판매 추이를 보면 양사의 누적 판매 대수는 2~3개월 안에 뒤집힐 수 있다.

스마트폰 기술에서도 삼성전자는 이미 애플을 넘어섰다. 미국 투자관리업체 샌포드 번스타인 소속 마크 뉴먼 연구원은 “삼성은 하드웨어 관점에서, 특히 아몰레드 기술 덕분에 화면 크기나 두께, 무게 면에서 가장 좋은 휴대전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무선통신 기술에서 애플은 삼성전자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4세대 무선통신기술 LTE(롱텀에볼루션) 부문에서 삼성전자는 애플을 압도한다. 애플은 LTE 기술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애플이 삼성전자의 LTE 기술 특허를 침해하지 않고 아이폰5를 출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왼쪽 지난 5월4일 영국 런던 얼스코트에서 열린 삼성 모바일 언팩 행사에서 신종균 사장이 갤럭시S3를 발표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오른쪽 팀 쿡 애플 CEO는 오는 9월 말에 아이폰5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AP 연합


애플과의 소송, 장기적으로는 ‘득’ 될 듯

삼성전자가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지금까지 거둔 성과는 상당했다. 하지만 패스트 팔로어 전략은 강제 폐기되었다. 삼성전자에게는 이제 새 성장 전략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남겨졌다. 삼성증권 홍콩법인 소속 황민성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패스트 팔로어의 대표 사례이다. 원가 중심 부품에서 휴대전화로 빠르게 경쟁 업체를 따라잡았으나 이번 사례(캘리포니아 새너제이 평결)는 삼성전자가 디자인이나 특허 같은 소프트한 부문에서는 아직 미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취약점을 극복해야 삼성전자는 다시 한번 도약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산업의 흐름이 바뀌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챘다. 베끼기 전략으로는 애플을 제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삼성전자는 ‘퍼스트 무버(선도자)’ 전략을 채택한다고 선언했다. 지난해부터 창조적 조직 문화를 구축하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지적재산권을 확보하고자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종합기술원 산하 IP(지적재산권)센터를 대표이사 직속 조직으로 편입하고 특허 인력을 4백50명까지 늘렸다. 코닥, 램버스, IBM, 마이크로소프트와 특허를 공유하는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지난해 특허 10만여 건을 확보했다. 해마다 6천건이 넘는 특허를 한국과 미국에서 신규 등록했다. 삼성전자는 연구·개발(R&D)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지난해 연구·개발비로 10조3천억원을 쏟아부었다. 수원사업장에는 2013년까지 연구 인력 2만3천명을 수용하는 새 연구센터를 건설한다. 2015년 5월에는 연면적 33만m², 지상 10층·지하 5층 건물 6개동으로 구성된 우면R&D센터까지 완공한다.

삼성전자는 또 디자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디자인에서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애플과 경쟁하기 위해서 디자인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필수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소프트웨어와 디자인 분야 인력을 채용할 때 필기 없이 면접 전형만 실시한다. 실력과 끼를 갖춘 창의적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뜻이다. 또한 디자인, 의장, 사용자 경험(UX) 같은 디자인 특허를 크게 늘렸다. 지난해 미국에서만 디자인 특허 3백32건을 취득했다. 천문학적인 투자 덕인지 벌써부터 성과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산업디자이너협회(IDSA)나 iF디자인어워드2012 같은 국제 디자인 공모전에서 잇달아 수상하고 있다.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역량이 보강되자 삼성전자는 애플 베끼기를 자제하고 있다. 애플이 전 세계에서 벌이는 소송전을 피하겠다는 속내도 보이지만, 자체 기술과 디자인 역량으로 아이폰과 경쟁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되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 블로그인 ‘아심코’의 운영자 호레이스 데듀는 “삼성은 이미 베끼기 행태를 의식적으로 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라고 말했다.

애플이 거둔 ‘새너제이 대첩’은 단기적으로는 애플에게 유리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애플에게 상당한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다. 호레이스 데듀는 “애플이 만들어낸 게임의 틀 안에서 애플과 맞서는 경쟁자보다 게임의 틀을 아예 바꾸겠다고 나서는 경쟁자가 더 위협적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제 ‘퍼스트 무버’로서 애플과 맞선다. 그 첫 전투지는 미국 항소심 법정이 아니라 9월 말에 출시되는 아이폰5와 경쟁을 벌이는 시장이 될 것이다. 애플은 9월12일 아이폰5를 공개하고 2주 후인 9월 말에 정식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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