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본명 박재상)는 ‘겉보기와 달리’ 스펙만 놓고 보면 대중이 생각하고 있는 ‘강남 스타일’의 전형이다. 아버지는 상장 회사 오너이고 자신은 미국 유학 경력에, 병역 특례로 군 복무를 마쳤다. 이른바 ‘강남 오렌지’의 전형이다. 하지만 싸이는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를 자신과 분리했다. 2002년 한 인터뷰에서 싸이는 “나는 딴따라여서 사업을 잘할 수 없다. 음악은 잘할 수 있다. 아버지 뜻도 받아들이고 싶지만 무책임하게 받고 싶은 마음이 없다. 사업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주어진 배경과는 무관한 ‘순도 높은 딴따라’라는 점을 강조했다. 

음주 가무에 푹 빠진 부잣집 아들

싸이의 아버지는 ㈜디아이의 박원호 회장이다. 박회장은 디아이의 창업주 박기억 회장의 장남이고, 차남은 박원덕 부회장이다. 디아이의 지분을 보면 박원덕 부회장의 지분이 박원호 회장 지분보다 많다. 지난 2001년 11월 지병으로 박기억 회장이 세상을 떠날 때 싸이는 대마초 흡연 문제로 감옥에 있어서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싸이 자신도 이를 두고두고 후회한다고 한다. 싸이는 디아이의 지분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반도체 장비 회사인 디아이는 북한에서 월남한 박기억 회장이 1955년 충무로에서 창업한 동일상사가 모체이다. 초기에는 일본에서 광학제품을 들여와 파는 수입업체였다. 그러다 1980년대 말부터 반도체 장비를 직접 생산하면서 중견 기업 반열에 올라섰다. 삼성전자 등이 주요 거래처로 지난해에는 적자를 기록했다. 계열사인 한산컨설팅은 서울 삼성동에 대형 고급 빌라인 헤렌하우스를 시공해 분양하기도 했다. 헤렌하우스는 유명 여배우의 입주설로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떠들썩한 소문과는 달리 한산컨설팅 역시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다. 

싸이의 어머니 김영희씨는 청담동과 신사동 일대에서 트렌디한 밥집을 운영하고 있다. 싸이의 누나인 박재은씨는 공부를 잘해 뉴욕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고 나중에 프랑스의 유명 요리 학교를 졸업해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유명해진 인물로, 몇 년 전까지 대중 매체에 기고를 하기도 했다. 박씨는 잡지 사진기자와 결혼해 자신은 글을 쓰고 남편은 사진을 찍는 협업을 펼치기도 했다.  

문제는 싸이이다. 공부에 별 뜻이 없었다고 한다. 미국으로 유학을 간 이유도 집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사업을 하기에 대한민국은 너무 좁다. 유학을 보내주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라는 ‘감언이설’로 아버지를 설득한 것이다. 싸이가 한 달 동안 열심히 공부해 아버지가 제시한 토플 점수를 따자 그의 부친은 ‘이랬던 놈이…’라며 감동해 유학을 허락했다고 한다. 집에서는 보스턴 대학 국제경영학과에 입학한 줄 알았지만 미국행 비행기를 타자마자 싸이는 ‘마이웨이’를 선언했다. “아버지와 정말 다른 삶을 살고 싶다”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받은 학비를 모두 음주 가무 비용으로 탕진했다.

음주 가무에 빠져든 싸이는 가수가 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마침 힙합 붐이 일었다. ‘말(랩)만 해도 가수가 되네?’라는 생각에 가수의 길을 모색한 것이다. 악기를 사고 버클리 칼리지에 들어간 싸이는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학교를 휴학하고 음주 가무 행각을 한 것이 들통 나는 바람에 집으로부터 지원금도 끊겼다. 그때도 싸이는 머리를 굴렸다. 불법 CD를 구워 납품하면서 돈을 마련했다. 그 한편으로는 자신이 만든 노래를 여러 기획사에 보내며 픽업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그때 만든 노래 50여 곡 중에 데뷔곡 <새>가 들어 있었다.

싸이의 데뷔 앞에는 조PD가 있었다. 현실 비판과 욕설을 버무린 조PD의 힙합 곡 <브레이크 프리>가 PC통신에 올려지자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 1999년이다. 이듬해 1월 조PD는 1집을 발표했다. 싸이도 조PD의 토스를 통해 PC통신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정식으로 제도권에 진입한 것은 1999년 9월에 발표한 조PD의 2집에 참여하면서부터다. 2001년 싸이라는 이름으로 첫 앨범이 나왔다. 싸이는 조PD의 노래보다 덜 공격적인 노랫말과 더 대중적인 멜로디로 자신을 차별화시켰다. 이 앨범의 <새>와 <끝>은 공중파 3사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기록하며 싸이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문제는 방송 프로에 나간 두 곡을 뺀 나머지 곡들이었다. 노래 제목부터 <쇼킹 양가집 규수> <아이 러브 섹스>였고, 앨범 재킷 속지에 남성의 성기, 콘돔, 유두, 여자 속옷 사진을 넣었으며 가사에는 ‘Bullshit’ ‘놀지도 못하는 X밥이래’ ‘X구리 뜨자 오빠야’ 등의 표현이 들어가 있었다. 덕분에 싸이의 1집 앨범은 일부 종교 단체의 공격 대상이 되었고, 결국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발매 5개월 만에 ‘연소자 이용 불가’ 판정을 받았다.  

상업적 성공을 맛본 싸이는 그해 11월18일 2집을 발매하려 했지만 11월10일 대마초를 흡연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 탓에 앨범은 2002년 1월 발매되었다. 방송 활동을 할 수 없었기에 이 앨범에서는 대중적인 히트곡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여전히 노래 제목은 <처녀 논쟁> <신고식> <나쁜 년>처럼 ‘동네 노는 형’의 허튼 농담 기조를 유지했다. 2집에서 기록할 만한 것은 박지윤의 <성인식>을 가사만 바꿔 수록한 <신고식>이다. 요즘도 콘서트에서 여자 아이돌 그룹이나 비욘세의 코스프레를 통해 관객에게 웃음을 안기는 싸이 특유의 복장 도착 쇼의 출발점이다.

월드컵과 <챔피언>이 내밀어준 구원의 손길

대마초 흡연 혐의로 대중 앞에서 강제로 퇴장당한 것은 싸이에게 견디기 힘든 일이었던 듯하다. ‘남을 웃기는 일이 즐겁다’라는 것을 깨달은 25세의 그에게 ‘8만명이 넘었던 팬클럽이 8백명으로 줄어든’ 것은 또 다른 시련이었다. 그런 그에게 동아줄이 내려왔다. 2002년 6월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끓자 타고난 광대를 자임하던 싸이는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갔다. 월드컵에 열광한 대중은 자발적으로 나와 응원전에 몰입한 싸이에게 너그러웠고 방송사 중계 카메라도 그를 잡았다. 그렇게 방송 금지가 풀리고 싸이는 2002년 9월 3집 <3마이>를 들고 등장했다. 그를 구원한 트랙은 <챔피언>이었다. 조롱과 비난, 자기 비하 노랫말 대신 ‘당신이 챔피언’이라는 긍정적인 가사를 담았고, 앨범 전체에서도 욕설이 한마디만 빼고는 들어 있지 않았다. 월드컵과 <챔피언>은 싸이를 구원했다.    

이후 싸이는 2003년부터 2005년 11월까지 병역 이행을 위해 병역 특례 업체에서 35개월 동안 복무를 마쳤다. 하지만 병무청으로부터 부실하게 근무했다는 이유로 편입 취소 통보를 받고 2007년 12월17일 나이 서른에 현역으로 재입대를 했다. 대한민국 성인 남자의 대표 악담인 ‘군대 두 번 입대’가 실화로 완성된 순간이었다. 쌍둥이 딸과 아내를 앞에 두고 주저하는 싸이에게 아내는 편법으로 피하는 것은 싸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너무 후지다’라며 두 번째 입대를 권했다.

이것은 군 입대를 앞두고 미국으로 가버린 유승준과는 정반대의 행보였고, 이후 싸이는 부잣집 아들과 병역 기피자라는 굴레를 벗고 ‘상스런 농담도 찰지게 하는 재미있는 옆집 오빠’가 되었다. 2009년 7월 ‘완전 제대’한 싸이는 2010년 8월 기존 자신의 회사 문을 닫고 YG엔터테인먼트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5집 앨범을 냈고 여기서 <RIGHT NOW>가 히트하면서 그의 콘서트 고정 레퍼토리를 한 곡 더 늘리며 건재를 과시했다. 이후 싸이는 콘서트 활동에 더 열중하며 최고의 티켓 파워를 갖는 콘서트 가수로 떠올랐다. 지난 7월 발표한 <6갑>에서 <강남스타일>이 터지지 않았더라도 그는 국내에서 대적할 만한 가수가 없는 ‘난리 블루스 생쇼’의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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