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권력 무상’의 현장 기록한 사진기자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9.1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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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대통령 여덟 명의 사진전 <대한민국 대통령의 빛과 그림자> 연 사진작가 최재영씨

전시 작품들. ⓒ 최재영 제공
1976년부터 2011년까지 일간지에서 보도사진을 찍은 사진작가 최재영씨(61)는 전·현직 대통령 여덟 명의 사진전 <대한민국 대통령의 빛과 그림자>전(~9월28일, 서울 안국동 아트링크)을 열면서 펴낸 도록 첫머리에 ‘한국 정치사의 메멘토 모리 전시회’라고 적었다. “영광의 시간은 짧고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다”라는 말은 김영삼 대통령의 퇴임사였지만, 한국의 최고 권력자 자리에 머무른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메멘토 모리는 너도 죽는다, 잘나갈 때 까불지 말라는 말이다. 권력 무상이다. 우리나라는 권력 무상이 대물림되고 있다. 측근은 돈을 받고 인척은 비리에 휘말리고,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5년 동안 평생 자기가 일군 것을 다 잃어버린다. 그 사람들이 떳떳한 것은 나만도 못하다. 나는 중3 때부터 사진을 시작해서 한평생 사진을 찍었다. 내 아들도 유학 가서 사진을 공부하고 있다. 평생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 사람들은 대통령을 한 번 하고 5년 만에 평생 일군 것이 망가진다. 이것이 반복된다. 슬픈 일이다.”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제대로 대통령 사진 찍을 수 있었다”

사진기자로서 최씨는 ‘아스팔트 기자’를 자임했다. 그만큼 ‘현장’을 중시했다는 말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사진도 모두 유세 현장이나 현지 방문 등 현장에서 찍은 것이다.

‘대통령 박정희’를 현직 기자로서 경험한 그는 “그때는 기자가 대통령 사진을 찍지 못했다. 공보처 직원이 대통령 사진을 찍어서 아침마다 언론사에 배포했다. 1979년 4월에 육사 졸업식에서 박정희와 박근혜를 찍은 사진도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대형 망원 렌즈로 당겨서 찍은 사진이다. 전두환 정권 초기에도 공보처 직원들이 ‘각하 찍겠습니다’ 하고 인사하고 찍었다. 그러다 출입기자라는 것이 생겼다. 하지만 출입기자도 순번이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 찍을까 말까였다. 노태우 정권 때에야 실질적으로 대통령을 찍을 수 있었다. 그때 대통령 사진전도 처음 열리고 춘추관도 생겼다”라고 설명했다.

대통령 사진전에서 그는 4회가 열리는 동안 금상 두 번, 은상 한 번을 탔다. 그가 상을 탄 이유는 남들과 다른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때 대한뉴스, TV 카메라, 청와대 전속 사진가, 신문사 기자가 같이 들어가서 찍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찍을 수 있는 것은 1분이 안 되었다. 그 전후를 캐치하면 좋은 사진이 많이 나온다.”

노태우 정권 때의 3당 합당 직후 1991년 독일의 바이츠제커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공식 행사 개막 직전 환영 만찬장에서 기다리던 3김과 박태준, 김윤환이 등장하는 사진의 절묘한 분위기는 그렇게 건져올린 것이다. “3당 합당을 하면서 나머지는 다 한패거리가 되고 DJ만 혼자가 되었다.”

그는 노태우 정권 시절에 처음으로 ‘대통령 홍보’라는 개념이 생긴 것으로 기억했다. TV PD 출신이 청와대에 들어와 ‘콘티’를 짜고 공보처 직원이 아닌 청와대 전속 사진사가 생기고, 장소 헌팅, 포지션, 의상 코디네이터 등 지금은 당연시되는 개념이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그들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숨기고 싶어 하는 면이 있다. 화장하는 것, 그런 무대 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재미있는 것은 무대 뒤이지만…. 이번 전시에는 감방 가는 모습이나 대통령의 가족 스캔들은 뺐다. 모두 대통령 본인에 관한 사진만 넣었다. 사진이 잘 받는 정치인은 노태우이다. 분위기가 밝았다. YS는 사진을 잘 받는 얼굴은 아니다. 전두환은 얼굴 찍는 방향을 정해줬다. 이순자도 옆에서 찍는 것은 금기였다. 턱선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도 사진 찍기는 어려운 얼굴이다.”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한 최재영 사진작가.

“기록 중시하지 않는 분위기가 아쉬워…”

그는 현장 사진을 좋아한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무현-이명박 사진과 권양숙-김윤옥 사진은 떠나는 자와 들어오는 자의 미묘한 대비가 눈에 띄는 사진이다. “그 사진은 100m 밖에서 망원 렌즈로 당겨 찍었다. 가까이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사진이다”라고 설명했다. 취임식장의 단상 코앞에 마련된 사진기자석 대신 멀리 떨어져서 찍음으로써 현장의 분위기까지 담은 사진을 건진 것이다.

그는 수집벽도 있다. 셀 수 없는 단행본과 35년간 찍은 필름, 시위 현장의 유인물, 카메라 8백대가 집안에 가득하다. 경기도 의왕의 3층짜리 단독주택에 사는 그는 소장품이 3층을 다 채우고 넘쳐나서 옆집의 한 층을 창고로 빌리기까지 했다.

“이번 전시가 끝나면 필름을 정리하겠다고 마누라한테 ‘일단’ 약속했다. 하지만 남들은 그런다. 그것 죽을 때까지 정리 못 할 것이라고.” 그는 그의 사진이 대통령 기념관이나 공공 기관에서 활용되기를 바라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묵힐수록 더 맛있어진다. 그런데 우리 근현대사 기록은 영국이나 미국, 독일에서 오고 있다. 기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아쉬운 일이다. 앞으로 50년 뒤에도 이런 일이 또 반복될 것 같다. 신문사에서도 예전 필름 기록을 정리하고 분류하지 않고 다 버리고 있다. 나라도 내 것을 정리해야 하는데….”

 이번 전시는 그의 ‘마나님’이 거액을 ‘쾌척’해서 가능했다고 한다. 최씨의 부인 김미희씨는 올해 초 초등학교 교사직에서 정년 퇴직을 했다. 은퇴 기념 선물을 받아야 할 김씨가 도리어 오는 10월 그의 환갑을 빌미 삼아 남편의 전시회를 열어준 것이다. “전시 한 번 할 때마다 중형차 한 대 값이 날아간다. 이번 전시도 도록도 내지 않고 단촐하게 한다고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마누라가 싫은 소리 하면서도 지원해줬으니 내가 평생 사진만 찍을 수 있었지….(하하)”  

인터뷰 말미에 전화가 왔다. “네 엄마한테 아침에 박살나게 깨졌어. 술 먹고 자는 사람이 어딨냐고, 끌고 오는데 혼났다고, 엄청 화내서…. 주말에 천천히 보러 와.” 전시회 개막식 뒷풀이를 하느라 술이 과했나 보다. “누구예요?” “응, 사위.” 그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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