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첩보물들이 애국을 명분으로 똘똘 뭉쳐 ‘임파서블한 미션’을 멋지게 처리하던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해진다. ‘본 시리즈’는 끊임없이 동요하며 정체성과 윤리에 혼란을 겪는 개인의 자의식과, 이를 제거하려는 국가의 폭력성을 여실히 폭로한다. 즉 주인공이나, CIA 산하의 ‘트레드스톤’이나, 미국 정부나, 그들은 하나의 몸체로 일사불란하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가 무수히 분열되어 있으며, 집단은 언제든 조직의 안녕을 위해 조직원을 가차 없이 죽일 수 있다는 것. ‘본 시리즈’는 개인 대 조직 간에 벌이는, 목숨을 건 숨바꼭질이며 냉전이나 대테러전처럼 외부를 향한 전쟁이 아니라 비밀 조직 안에서 벌이는 내전을 형상화한 영화이다.
<본 레거시>는 맷 데이먼이 아닌 제레미 레너가 주인공이며, <본 얼티메이텀> (2007년)과 동시간대 사건을 다룬다. 국방부 산하의 ‘아웃컴’에서는 유전자 조절 약물을 개발하는 기밀 프로그램을 수행 중이었지만, 제이슨 본으로 인해 CIA 산하의 ‘트레드스톤’이 공개되면서 정부의 다른 비밀 조직까지 탄로 날 위기에 처하자, 상부는 ‘아웃컴’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조직원을 모두 죽여 증거를 없애려 한다. 지적장애가 있었으나 약물로 뛰어난 능력을 갖게 된 애론(제레미 러너)은 약물 개발에 참여했던 과학자(레이첼 와이즈)와 함께 상부의 공격을 피해 달아난다. 제레미 러너의 고공 낙하 액션과 오토바이 추격 장면이 박진감 넘치며, 글로벌 로케이션으로 찍은 영화 속에서 서울 강남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 역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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