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태만 국회, 세비만 팍팍 올렸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2.09.1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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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인상률, 근로자 임금의 4배 이상…입법활동비는 2년 새 74% 인상

ⓒ 시사저널 이종현
‘하는 일도 없이 만날 여야끼리 싸우고 나라 경제 말아먹는 사람들에게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줘야 하는지 분통이 터집니다’ ‘억대 받고 있으면 된 것이지 왜 거기서 더 인상하려고 합니까. 진짜 정신 나간 것 아닙니까’ ‘우리 국민들이 당신들 월급 주는 것인데, 저는 세비 올리는 데 동의한 적 없습니다. 당장 뱉어내십시오’….

지난 9월5일 국회 홈페이지 국민 여론 코너 토론방에 올라온 글들이다. 19대 국회의원 세비가 18대 국회의원 평균에 비해 30% 가까이 인상된 것으로 나타나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지난해와 비교해도 14% 이상이나 인상되었다.

금액으로 따지면 올해 국회의원이 받게 될 세비는 총 1억3천7백96만원에 이른다. 18대 평균보다 3천77만원이 올랐고, 지난해보다 1천7백3만원이 인상되었다. 특히 2010년까지 월 1백80만원이던 입법활동비가 지난해 월 2백만원으로 오른 데 이어 올해는 월 3백14만원으로 급등했다. 불과 2년 사이에 74%가 오른 셈이다.

이러한 국회의원 세비는 회의에 참석하면 받게 되는 특별활동비는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특별활동비도 2010년까지 연간 5백40만원에서 지난해 5백99만원으로 오른 데 이어 올해는 9백41만원으로 대폭 인상되었다. 지난해부터는 세비에, 의원들이 신청하면 받게 되는 가계지원비도 빠져 있다. 이를 모두 지급받는다면 실제 금액은 2억원이 넘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세비 둘러싼 국회의 눈치 보기 역사 ‘유구’

일반 근로자의 임금 수준과는 차이가 크다.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용 근로자의 임금 총액은 평균 3천6백24만원이었다. 2010년 3천6백60만원보다 0.9% 하락했다. 그만큼 상황이 더 어려워진 셈이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도 지난 10년 동안 2~4%대에 머무르고 있다. 올해 공무원 평균 임금 인상률이 3.5%인 점을 감안해도 상승 폭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국회 내에서 세비 인상은 ‘고양이 목에 방울 걸기’라는 이야기가 적지 않았다. 내심 금액을 올리고는 싶은데 욕을 먹을까 봐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회에서 ‘세비 인상’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국민은 따가운 눈총을 보냈다. 세비를 올리려고 했다가도 부정적인 여론에 밀려 철회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렇다 보니 대놓고 올리지는 못하고 눈에 띄지 않는 세부 항목을 은근슬쩍 인상하는 ‘꼼수’를 쓴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비를 둘러싼 국회의 ‘눈치 보기’ 역사는 유구하다.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시절이던 1997년 말 국회에서 입법활동비를 월 1백80만원에서 2백35만원으로 기습 인상하려다가 여야 정치권이 된서리를 맞았다. 그때도 “입법 활동을 얼마나 했다고 입법활동비를 스스로 올리려고 하느냐”라며 뻔뻔스럽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석연 변호사가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여론의 도마에 오르자 각 정당은 인상을 철회하는 한편 세비를 오히려 삭감한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국민들도 잘 알지 못하게 은근슬쩍 올려

2년 뒤인 1999년 말에도 세비를 14.3%인 연 1천만원가량 인상하는 것을 두고 ‘집단 이기주의’ ‘밥그릇 챙기기’ 등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IMF 외환위기 이후 공무원의 봉급이 2년간 15% 이상 삭감되면서, 의원들도 1998년 15%, 1999년 4% 줄었기 때문에 인상을 하더라도 외환위기 이전보다 오히려 낮다는 항변이 있었지만 국민 여론은 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기초의회인 인천시 동구의회가 ‘국회의원 세비 인상 규탄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은 해마다 반복되다시피 하다가, 2000년대 초·중반 경제가 안정되면서 잦아드는 듯했다. 그러다가 2008년 18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또 한 번 세비 논란이 일었다. 2007년 2.5% 인상률의 세 배인 7.5%를 올리려고 한다는 비난에 직면한 것이다. 결국 이듬해인 2009년과 2010년에는 세비를 동결하기에 이르렀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는 상황과 맞물려 한동안 ‘세비 인상’은 국회에서 금지어가 되는 처지에 놓였다. 2010년 9월6일 꺼져 있던 불씨를 되살린 것은 박희태 당시 국회의장이었다. 주요 20개국(G20) 국회의장 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이던 박의장은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의원들이 고통 분담 차원에서 세비를 깎은 뒤 그동안 한 번도 세비 인상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후 누구도 이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라면서 “세비를 원상 회복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국회 수장으로서 ‘총대’를 메는 듯이 보였지만, 국민 정서와는 한참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박의장의 주장과 달리 세비가 한 번도 인상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2008년까지 꾸준히 오르는 추세였고, 동결된 것은 두 해에 불과했다. 박의장이 거론한 것은 전체 의원 세비가 아니라 세부 항목 중 하나인 입법활동비로 여겨진다. 그동안 인상을 여러 차례 추진했다가 무산된 비용이다. 하지만 여론의 시선은 여전히 따가웠다. 세비 인상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그해 말, 다음 해인 2011년의 세비가 5.1% 오를 것으로 알려져 논란은 계속되었다.

올해 세비가 급등한 것도 2010년 11월에 내린 결정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 이미 활동비 현실화를 명분으로 내세워 입법활동비와 특별활동비를 인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다만 당시 예산이 부족해 2011년 1~11월까지는 인상 폭을 5%로 제한하고, 2011년 12월부터 대폭 인상할 것을 사실상 예정해둔 것이다. 국회가 ‘마이웨이’를 강행한 셈이다.

최근 비난 여론이 들끓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사실을 국민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상혁 경실련 정치입법팀 간사는 “국회의원이 활동을 제대로 하면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제 역할은 다 하지도 않은 채 쥐도 새도 모르게 세비를 인상한 것이다. 국민으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일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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