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나라
  • 김재태 편집부국장 (purundal@yahoo.co.kr)
  • 승인 2012.09.1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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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편지

마침내 어머니들이 일어섰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서울역 광장에 모인 어머니들은 빗물보다 굵은 눈물을 흘리며 “내 아이를 지켜달라”고 목놓아 외쳤습니다. 계속되는 성범죄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달라는 것이 어머니들의 주장입니다. 한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숨죽여 흐느끼던 엄마들이 움직이고 있어요. 오랫동안 쌓인 슬픔과 분노들이 서서히 분출되고 있습니다. 이제 시작이에요.”

요즘에는 정말 성범죄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집니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만삭의 임신부까지 가리지 않고 범행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안전하리라고 믿었던 안방에까지 들어와 아이를 이불째 들어 옮겨 성폭행한 최근의 ‘고종석 사건’은 범람하는 성범죄의 수위가 막장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 사회가 대체 어디로 가려고 이러는지 참담함을 금치 못할 지경입니다. 김길태 사건이 터졌을 때도, 조두순 사건이 터졌을 때도 온 나라가 들썩일 만큼 성범죄에 대해 강력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정치권 인사들도 한마디씩 거들며 성범죄 안전망을 제대로 갖추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성범죄의 피해자는 대부분 약자들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계층이 어린이들입니다. 그들에게는 반항할 힘조차 없습니다. 어른들이 지켜주지 않으면 스스로를 보호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로 살아가기’는 그야말로 불안과 고통의 연속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에 내몰려 이 학원, 저 학원 다니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입니다. 어렵게 짬을 내어 놀고 싶어도 마음껏 걱정 없이 뛰어놀 만한 공간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집 밖에 나가면 온갖 위험 요소들이 그들을 가로막습니다. 어린이 보호 구역이라는 팻말조차 무색학게 만들어버리는 난폭 운전은 물론이거니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성범죄의 위험이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우리나라 어린이·청소년들의 행복지수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내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한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성범죄는, 특히 나이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피해자의 미래의 삶까지 송두리째 파괴하고 유린한다는 점에서 매우 극악한 범죄입니다. 일종의 ‘인격 살인’인 셈입니다. 피해자들이 입는 정신적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참혹합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흉포한 범죄자에 의해 일순간 인생의 나락으로 내몰린 그들의 절망과 고통은 이 사회를 사는 모두에게 짐 지워진 또 다른 채무입니다. 그 빚을 갚으려면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위험한 사회에 대한 뼈아픈 각성과 방비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든 어른이 어린이의 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힘든 아이들에게 더는 스트레스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껏 뛰어놀기도 어려운 마당에 신변의 위험까지 걱정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 이번에는 제대로 된 예방책과 처벌 방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즉흥적으로 말만 앞세우면 예전과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빈틈없는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아야 어른들도 웃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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