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치 낮추면 재미 쏠쏠한 동화
  • 이지선│영화평론가 ()
  • 승인 2012.09.1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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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 공주의 좌충우돌 성장담 <메리다와 마법의 숲>

영화
픽사와 디즈니의 열세 번째 합작 영화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천방지축인 공주가 대형 사고를 친 뒤 스스로 수습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동화이다.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불타는 빨간 머리의 공주는 정략결혼이 싫어 마녀에게 소원을 빌고, 마침내 엄마를 곰으로 만든다.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사건건 우아하고 기품 있는 공주가 되라며 잔소리를 해대는 엄마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공주의 열망이 낳은 결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수습도 공주의 몫. 메리다는 두 번째 일출을 맞기 전에, 그리고 왕인 아빠가 사냥에 성공하기 전에, 엄마를 다시 사람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곰이 된 왕비의 슬랩스틱, 귀여운 세 쌍둥이 캐릭터의 좌충우돌은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하고, 시원한 숲 속 질주는 박진감이 넘친다. 곰과 곰, 인간과 곰의 대결 또한 빠른 리듬감으로 표현되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인공이 다소 민폐형 캐릭터이기는 해도, 성장과 이해라는 주제 의식을 드러내기에는 부족함이 없고, 날리는 머리카락과 날아가 꽂히는 화살을 통해 바람의 속도감과 질감까지 잡아낸 표현력 그리고 전반적 이야기와 캐릭터의 완성도 또한 나쁘지 않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분명 픽사의 오리지널 시나리오 작품이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을 매순간 선사하는 것이 문제이다. 마법에 의지해 무언가를 얻으려는 공주라는 설정은 <인어공주>를, 이기적이었던 소녀가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장하는 이야기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도 비슷해 보인다.

너무 많이 본 관객이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픽사가 제작했지만 엄연한 디즈니와의 협력 작품이므로 동화적 성격이 부각되는 것이 당연한 듯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토이 스토리>와 <월-E> 등을 보아온 이상, 아니 본편에 앞서 <달>과 같은 놀라운 단편을 보여준 이상, 관객의 기대치가 하늘에 가 닿았다 한들 그 역시 이상한 일은 아닐 터이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유쾌하고 무난한 가족 영화이다. 그러나 픽사의 팬에게는 무난해서 아쉬울 가족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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