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대중화’ 앞장선 색소폰 연주자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10.1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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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색소폰콰르텟, ‘色소폰과 바람난 콘서트’ 열어

서울색소폰콰르텟 멤버들. 왼쪽부터 원무연·김기선·김향임·김진수 씨. ⓒ 시사저널 엄준선
우리나라에서 요즘 가장 많이 팔리는 악기는 무엇일까. 색소폰이다. 지난 10년간 100만대가 팔렸다고 한다. 그동안 클래식 악기 중에서는 플롯이 1등이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색소폰 바람이 불면서 순위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색소폰이라는 악기가 일반인에게 친숙하고, 어떤 로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울색소폰콰르텟(SSQ)은 국내에 흔치않은 관악 콰르텟 팀이다. 2001년 팀을 결성한 이들은 꾸준히 클래식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무대부터 산골 오지의 장터까지 전국을 찾아다니면서 해마다 20회 이상 연주회를 갖는다. 이들은 사실상 국내 음대에서 키워낸 색소폰 클래식 1세대이다. 바리톤 색소폰의 원무연, 테너 색소폰의 김진수, 소프라노 색소폰의 김향임, 알토 색소폰의 김기선으로 이뤄진 SSQ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를 나온 김진수씨만 빼고는 모두 서울대 음대 출신이다.

김기선씨는 “그때 처음으로 음대에서 색소폰 전공자를 뽑았다. 우리가 각 학교 색소폰 전공자 1, 2, 3회 졸업생인 셈이다. 우리가 처음으로 전공하다 보니 클래식에 색소폰 연주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함께 공부도 하고 유학도 같이 가서 콰르텟 팀으로 딴 졸업장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프랑스 U.F.A.M. 국제 콩쿠르 실내악 부문 1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들이 이번에 ‘재미있는 클래식 연주회’를 기획했다. 오는 11월8일 예술의 전당 챔버홀에서 열리는 ‘색소폰과 바람난 콘서트’가 그것이다. 1부는 <카르멘>(비제)이나 <시바의 여왕>(헨델), <크리스탈 구슬>(하멜) 같은 클래식 레퍼토리로 꾸몄고, 2부에는 이지리스닝 계열의 스탠더드 팝과 심지어 소녀시대의 <GEE> 같은 노래가 들어가는 K팝 메들리도 있다. 김기선씨는 “싸이 콘서트처럼 가슴을 뛰게 해주며 발산하는 재미도 있지만, 우리의 색소폰 연주는 그런 재미는 아니다. 대신 다른 재미가 있다. 그런 지점을 찾아내고 알리기 위해 우리는 늘 고민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SSQ의 시도는 시간은 걸렸지만 효과가 있었다. 사실 클래식 시장이 열악한 국내에서, 더군다나 색소폰 콰르텟은 가장 주목도가 낮은 비주류일 것이다. 기업의 후원도 거의 없다. 벤타코리아의 김대현 사장이 이들의 연주를 세 번이나 들은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전혀 모르는 남이던 김사장은 이들의 연주를 그러고도 두세 번을 더 들었다. 그런 뒤 김사장은 이들에게 음악회를 한번 열자고 제안했다. 다만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문턱이 낮은 레퍼토리를 택하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이날의 프로그램이다.

김진수씨는 “우리는 유명하지도 않고, 강한 음악도 아니고, 잔잔한 음악을 하는 팀이다. 그런데 우리 음악을 듣고 공연을 해보자는 제안을 해오니까 가슴이 뛰었다. 우리 길을 계속 가더라도 사람들이 들으러 와주고,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자부심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제자리에서 조용히 음악을 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귀국한 뒤 어떤 해에는 지방 공연만 50회를 다닌 적도 있고, 악기를 싣고 함께 움직이던 승합차가 3년 만에 16만㎞를 달려서 차를 판 적도 있다.

그러면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김향임씨는 목포의 정신지체장애우 시설을 찾았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연주를 마치고 나오는데 자폐 증세가 있는 분이 갑자기 뺨을 때리더라. 당시 임신 중이라 너무 놀랐는데 알고 보니 그분은 너무 좋으면 그렇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런 ‘돌발 사고’만 빼면 정신지체장애우를 상대로 하는 음악회가 가장 흥겹다. 이분들은 음악을 들으면 자제를 시켜야 할 정도로 행복해한다. 음악에 대한 흡수력이 강하다.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일반인보다 더 예민한 음악적 감수성이 있어서 더 큰 행복을 느끼는 듯하다. 세상은 그런 면에서 공평하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생계를 해결하면서 대중을 상대로 한 연주회도 놓치지 않고 있는 이들은 끝까지 색소폰으로 승부를 낼 작정이다.     

이들 중 가장 연장자인 원무연씨는 “색소폰이 100만대가 팔렸다는 얘기는 전국에 색소폰 연주자가 100만명이 있다는 얘기이다. 요즘 은퇴하는 분들은 퇴직금을 받으면 색소폰을 한 대 마련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그분들에게 교육자로서 색소폰이 이렇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다.” (일동 웃음)


ⓒ 빈체로 제공
10월에 열리는 음악회 중 빅카드로는 모스크바방송교향악단(지휘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의 내한 공연(10월23일, 예술의 전당)을 꼽을 수 있다. 러시아 악단인 만큼 이날 프로그램은 모두 러시안 작곡가의 작품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0번.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관악의 활용이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으로 국내에서 5번이 인기가 많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10번을 으뜸으로 치는 평가가 많다. 쇼스타코비치만의 강렬한 개성이 잘 녹아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휘자 페도세예프는 10번이 ‘센 선곡’이라는 점에서 협연자에게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주문했다. 그가 선택한 협연자는 클라라 주미 강(강주미·사진). 강씨는 화장품 모델로 발탁될 정도의 미모이다. 하지만 외모와는 달리 남성적이고 강렬한 연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상태에 따라서 연주 톤이 다양하지만 내가 남성적인 것을 좋아하고, 어렸을 때 좋아했던 바이올린 연주자도 대개는 남성 연주자였다.” 지난여름 대관령음악제에서 그는 에른스트의 <여름의 마지막 장미>를 제목만큼이나 강렬하게 연주해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발매한 그의 독집 앨범 <모던 솔로>에 수록된 곡이기도 한 이 곡에 대해 “유독 짧은 새끼손가락 때문에 연주에 애를 먹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치명적일수도 있는 이런 신체적인 약점을 극복하고 그는 이 레퍼토리로 큰 박수를 받았다. “그날 연주는 연주할 때 ‘그분’이 오셨다”라며 만족감을 표했다. ‘그분’이란 영감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음악 공부를 위해 독일로 떠난 음악도 부부의 딸로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세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해 다섯 살 때 교향악단과 데뷔 연주를 했고, 일곱 살 때 줄리어드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해 도로시 딜레이에게 배웠다. 11세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미국과 독일에서 음악 공부를 하던 강주미는 2004년 한예종에 거꾸로 유학 와 만개했다. 2010년 세계 3대 바이올린 콩쿠르로 꼽히는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우승해 미국 쪽에서 확실한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평범한 이에게는 ‘망언’일 수 있겠지만 그는 자신이 외모로 평가받는 것에 대해 마땅치 않은 반응이다. “외모만큼 연주가 안받쳐준다면? 연주자는 연주로 인정받아야 한다. 정경화 선생이 내 롤 모델이다. 정선생이 그 연세에도 무대에 서서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생기고 힘이 생긴다.” 그는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직후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지만 자신이 ‘콩쿠르 우승자’만으로 기억되는 것이 싫어서 오히려 미디어 노출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가 S.G워너비의 <라라라>를 연주했다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일화이다. 한예종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앙상블 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스튜디오에서 녹음이 5~6시간으로 길어지자 앙상블 팀장이 지친 기색이 없는 강주미에게 “네가 힘이 가장 많이 남아 있으니까 네가 연주해라”라고 해서 <라라라>의 마지막 부분 바이올린 솔로 연주를 했다는 것. 물론 그때는 가수가 누구인지도, 어떤 곡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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