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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표창원의 사건 추적] 자녀 학대가 부른 끔찍한 패륜 범죄

부모를 망치로 때려 살해 후 사체 토막 내 유기 2000년 5월 과천 토막 살인 사건

표창원│경찰대 교수 ㅣ 승인 2012.10.16(Tue) 11:5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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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5월29일 부모를 살해한 뒤 사체를 토막 유기한 사건에 대한 현장 검증에서 범행을 재현하는 이은석씨. ⓒ 시사저널 임준선
정부종합청사를 중심으로 새로 설계한 도로들이 시원하게 뻗고 중산층 이상이 밀집해 거주하는 아파트와 타운하우스 단지들 사이에 쾌적한 녹지 공간이 확보된 과천은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 하나이다. 간혹 정부 부처를 대상으로 한 집단 민원과 시위, 빈집을 노리는 절도 사건이 발생할 뿐 심각하고 강력한 범죄와는 거리가 먼 곳이다.

적어도 2000년 5월24일 아침 7시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날 아침도 여느 수요일처럼 시청 쓰레기 수거 차량이 과천 일대를 돌며 밤 사이 각 가정에서 내놓은 쓰레기 봉투들을 수거하고 있었다. 시민들의 산책 장소인 중앙공원 쓰레기 수거장 역시 그 가운데 하나였다. 일반 쓰레기 봉투들을 수거 차량에 싣던 미화원이 쓰레기 봉투 안에 담긴 사람의 발목을 발견하고 혼비백산했다. 미화원의 신고를 받은 과천경찰서 별양파출소에는 비상이 걸렸다. 신고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한 파출소장은 본서 강력반으로 전화를 했고, 현장에 출동한 형사들이 확인한 뒤에는 지방경찰청과 경찰청에까지 보고되었다.


평온했던 과천에서 갑자기 터진 ‘큰 사건’

수도권에서 가장 평온한 경찰서 중 하나였던 과천경찰서에 갑자기 ‘큰 사건’이 터진 것이다. 과천 중앙공원 쓰레기 수거장 주변에는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겹겹이 둘러쳐졌고 전경들에 의해 출입 통제가 이루어졌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서와 경기지방경찰청 과학수사요원들은 라텍스 장갑을 낀 손으로 모든 쓰레기봉투를 열어 내용물 하나하나를 뒤져나가기 시작했다.

흩어져서 작업하던 과학수사요원들이 여기저기서 터뜨리는 탄식과 한숨 소리가 이어졌다. 하루 종일 계속된 발굴 작업을 통해 발견된 사람 신체 부위는 어른 남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왼쪽 손, 왼쪽 발, 왼쪽 대퇴부, 오른쪽 발 그리고 팔뚝 모두 다섯 개였다. 그리고 어른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오른쪽 발과 몸통, 대퇴부 등 세 개, 모두 합해 여덟 개가 나왔다.

시신의 상태는 심하게 부패되지는 않았지만 사망 직후로 보이지도 않았다. 적어도 사망한 지 2~3일 이상은 지난 것으로 추정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어른 남자의 왼쪽 손에서 다섯 손가락 모두의 지문을 채취할 수 있었던 과학수사팀은 채취된 지문을 경찰청 감식계에 보내 신원 확인을 의뢰했다.

피해자의 신원은 그날 오후에 바로 확인되었다. 새로 도입된 자동지문검색시스템(AFIS) 덕분이었다. 예전 같으면 실종 신고된 어른 남자와 시신 발견 장소 주변에 거주하는 어른 남자 모두, 그 뒤에는 인근 지역과 전국 성인 남성의 지문 원지를 보고 사람이 육안으로 현장에서 채취된 지문과 일일이 비교 감식하는 ‘수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지문을 이용한 신원 확인 작업에는 무척 긴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피해 남성은 과천시 한 아파트에 주소를 둔 60세 이 아무개씨로 열 살 어린 50세 부인 황 아무개씨와의 사이에 20대인 두 아들을 두고 있는 가장으로 밝혀졌다. 피해자의 큰아들은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고 있었고, 실종 신고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함께 발견된 어른 여성의 시신이 부인의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따라서 두 아들의 안전 여부도 긴급하게 확인해야 할 상황이었다.

주민등록부 등 가능한 신원 조회 자료들을 모두 검토한 수사진은 피해자가 해병대 중령으로 예편한 장교 출신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경찰청에 보고했다. ‘공무원’이 관련된 범죄 사건은 ‘즉보’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수사진은 피해자의 집 주소가 정확하게 확인되자마자 피해자의 집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형사들은 이웃들과 아파트 경비원을 찾아가 탐문한 끝에 ‘두 내외와 아들, 세 식구가 사는데 아들은 얼마 전 군대에서 제대해 특별한 일 없이 주로 집에서 지낸다’는 진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혹시 아들이 집에서 자고 있어 초인종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경비실에서 인터폰을 여러 차례 울려보고 집 전화로 전화도 계속 걸어보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형사들은 경비원과 주민 대표 입회하에 열쇠 수리공을 불러 자물쇠를 열게 했다. 열쇠 수리공이 막 장비를 열쇠 구멍에 넣고 자물쇠 해제를 시도하려는 순간, 안쪽에서 문이 벌컥 열렸다.

   
이은석씨가 토막 낸 부모의 시신을 버린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에 있는 과천중앙공원 내 쓰레기통. ⓒ 시사저널 최준필
피해자는 퇴역 해군 장교 부부

열쇠 수리공은 ‘어이쿠’ 소리와 함께 주저앉았고, 형사들은 격투 태세를 갖추었다. 옆에 있던 경비원이 “아들이네, 집에 있었구먼”이라고 확인해주지 않았다면 형사의 공격에 아들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형사들은 우선 이 젊은이가 아들인지부터 확실하게 확인했다. 이은석, 24세, 서울에 있는 한국 최고의 명문 사립대인 ㄱ대학교에 휴학 중으로 제대 후 아직 복학하지 않은 상태였다. 신원이 확인된 피해자 이씨의 둘째 아들임이 분명했다. 형사들은 부모님이 어디 계신지 아느냐고 물었다. 은석씨는 “지난 일요일 두 분이 함께 교회에 가신 이후로 소식이 없다”라고 대답했다. 그럼 행방불명된 지 3일이 지났는데 왜 아직 실종 신고도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찾지 않느냐는 형사의 질문에는 “형이 따로 살고 있기 때문에 오늘쯤 형에게 이야기하고 실종 신고를 할 예정이었다”라고 말했다.

부모님이 3일째 연락 없이 실종된 위급한 상황인데도 은석씨의 얼굴에는 걱정이나 불안 등 어떤 표정도 드러나지 않았고 목소리도 차분했다. ‘아버님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라는 형사의 말에 은석씨는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은 뒤에 고개를 떨구었다. ‘어디서, 어떻게, 어머니는?’ 등 당연히 뒤따라야 할 질문도 하지 않은 채. ‘너무 충격을 받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한 형사가 잠시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묻자 은석씨는 그러라고 하면서 형사들을 집 안으로 안내했다.

거실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특이한 정황이나 흔적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실종 전 부모님의 언행이나 특이 정황 등에 대한 형사의 계속된 질문에 은석씨는 고개를 떨군 채 단답형으로 응답했다.

목소리는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고 손과 팔의 동작이 잦아지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형사들은 일단 ‘낯선 사람이 침입해 온 가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하거나 ‘부부를 납치한 뒤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형태의 범행은 아닐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았다. 추가 범행을 막기 위한 긴급 수배나 공개를 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가족 내에서 무슨 일인가 일어났다’라고 볼 만한 정황이었다. 이은석씨는 경찰서로 함께 가자는 형사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곤 집을 나섰다. 은석씨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사이, 형사들은 피해자 이씨의 집과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은 경찰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혈흔을 찾기 위해 집 안의 모든 커튼을 치고 차광막을 설치해 ‘암실’을 만들고는 혈흔 발견용 특수 가변 광원으로 구석구석을 차례차례 비춰나갔다. 거실과 화장실에서 혈흔으로 의심되는 얼룩이 발견되었고 루미놀 시약 반응으로 혈흔임이 확인되었다. 채취된 혈흔 샘플은 국과수로 보내졌고, 분석 결과 사망한 이씨 부부의 혈액형 및 DNA와 일치했다.

   
이은석씨가 사건 당시 경찰 조사를 받다가 흐느끼고 있다. ⓒ 뉴스뱅크 이미지
둘째 아들, “내가 살해했다” 자백

너무도 충격적인 사건이고, 범죄 전과도 전혀 없는 명문 대학생인 아들을 부모 살해 용의자로 조사하는 상황이라 담당 형사는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부모 실종 후 3일간 신고조차 하지 않은 이유나 부친의 시신 발견 소식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거나 질문을 하지 않은 데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한 채 횡설수설 진술 번복을 반복하는 은석씨에 대한 의심은 점점 강해져갔다.

특히 집 안 거실과 화장실에서 혈흔이 발견된 뒤에는 은석씨가 범인이라는 심증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가급적 은석씨 스스로 자백하기를 바라고 기다리며 직접적 추궁을 피한 채 심문하던 형사도 2시간 반이 지나자 더는 시간을 끌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증거를 바탕으로 직접적이고 집요하게 은석씨를 추궁했다.

결국 조사가 시작된 지 3시간 만에 은석씨는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망치로 부모를 따로따로 살해한 뒤 화장실로 시신을 옮겨 부엌칼과 쇠톱을 이용해 시신을 절단하고는 비닐 봉지로 여러 겹 싸고 커다란 100ℓ짜리 종량제 쓰레기 봉투 여러 개에 나눠 담은 뒤 과천 시내 이곳저곳에 있는 쓰레기 수거 장소에 나눠 버렸다는 것이다.


수사진은 은석씨에게 범행 도구와 나머지 시신이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했고, 은석씨는 단 한 번의 주저나 막힘없이 시신 절단 도구인 쇠톱을 버린 쓰레기 분리 수거함과 시신의 부분들을 버린 장소들로 형사들을 안내했다. 정부종합청사 옆 하천에서는 숨진 이씨 부부의 머리가 수거되었고, 경마장 부근 하천 가에서는 이씨의 하체가 발견되었다.

멀리 서울 중구에 있는 한 폐기물처리장에서는 아버지 이씨의 몸통이 발견되었다. 나머지 시신 부위들은 과천 쓰레기소각장에서 발견되거나 이미 소각이 이루어진 뒤였다. 이씨의 집에서는 살해 도구인 망치와 시신 절단을 위해 사용한 부엌칼 3개와 작은 칼 2개 그리고 시신의 옷을 벗기는 데 사용한 가위 등 범행 도구들을 찾아 DNA 등 감식과 분석을 위해 국과수로 보냈다.

이은석씨를 긴급 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한 경찰은 따로 살고 있는 장남에게 연락을 했다. 과천경찰서를 찾아온 은석씨의 형은 형사의 설명을 들은 뒤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잠시 뒤 ‘동생을 이해할 것 같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은 뒤 “다 제 잘못입니다. 동생과 함께 죗값을 갚으며 살게요”라며 자책했다.

겉으로는 너무도 모범적인 중산층 가정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둘째 아들이 부모를 살해해 그 시신을 토막 낸 채 유기하고 나서도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으며, 큰아들은 그런 동생을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했을까?

문제의 시작은 피해자인 이씨와 황씨의 성장 과정과 만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수재였던 이씨는 목표했던 서울대 진학에 실패하고 취직해 직장 생활을 하다가 다시 대학 입시 공부를 한 끝에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한 엘리트 장교였다.

어머니 황씨는 중학생 때 돌아가신 부친이 물려준 재산으로 유복하게 자라 최고의 명문 여자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재원이었다. 군사 정권 시절, 촉망받는 엘리트 군 장교 남편을 만나 ‘권력의 꿈’을 이루고 싶었던 황씨와 늘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자제와 절제, 임무 수행에만 전념하며 살아온 이씨의 부부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대화도 없었고, 군 생활 특유의 잦은 타지 출장과 훈련 외박 등으로 늘 소원했던 둘 사이는 적은 봉급과 기대에 못 미치는 지위와 권한 등 모든 문제가 격렬한 다툼과 냉대의 빌미가 되었다. 극심한 부모의 불화를 목격하며 자라온 두 아들은 어릴 때부터 가슴속에 분노와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적극적 의사 표시와 반항으로 감정을 표출해온 큰아들은 마음의 병이 크지는 않았지만, 늘 묵묵히 받아들이고 속으로만 삭이던 작은아들의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뒤틀리고 짓눌려왔던 것이다.

급기야 남편 이씨가 대령 진급에 실패하면서 중령으로 예편하게 되자 황씨의 욕구 불만과 좌절, 분노는 극단적으로 표출되기 일쑤였고, 그 분노는 당사자인 남편보다 그를 닮은 작은아들에게로 투사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두 아들의 진술, 주변 지인들의 목격담, 남겨진 피해자 부부의 일기장이나 메모 등을 종합해보면 부부는 각자의 좌절된 꿈을 아들을 통해 대리 달성하고 싶은 욕구가 유달리 강했다. 패륜적 존속살해범이 된 이은석씨의 경우 늘 반에서 3등 안에 드는 수재였는데도, ‘그렇게 해서 서울대에 갈 수 있느냐’ ‘너처럼 모자란 자식은 필요 없다, 나가 죽어라’ ‘싹수가 노란 놈’ 등의 폭언을 듣고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서울대 못 간 피해 의식을 아들에게 표출

결국 최고의 명문 사립대에 합격했지만 ‘서울대학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은석씨는 부모로부터 ‘실패한 자식’ 취급을 당해야 했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집에 잘 들어오지 않던 아버지는 가끔씩 귀가할 때마다 이은석씨에게 다정한 대화나 격려 대신 군대식 질책과 훈육으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고, 좌절감과 분노에 가득 찬 어머니는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큰아들 대신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어서 스펀지처럼 참고 받아들인 작은아들에게 거칠고 폭력적으로 감정을 마구 쏟아내며 살아왔다.

그런 저간의 사정이 있었기에 큰아들이 부모의 끔찍한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동생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검거된 후 실시된 정신 감정에서 이은석씨는 우울증과 회피성 인격 장애 등 정신 장애의 정도가 심각한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부모의 학대에 짓눌려 늘 위축되고 불안에 떨며 살아온 은석씨는 신체 발육도 잘 안 되어 또래에 비해 늘 작은 체구였고, 자존감이 낮고 자신감이 부족해 또래 친구들과 대화도 잘 하지 못해 친구가 없었다. 그런 은석씨는 늘 짓궂은 친구들의 먹잇감이 되어 집 단 따돌림과 폭력의 희생양이 되었다.

집단 따돌림은 군대에 가서도 계속되었다. 심지어 하급자 후임병들마저 은석씨를 무시하는 ‘기수 열외’까지 당하게 되자 은석씨의 좌절감과 자기 비하, 분노는 극단적으로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부모가 인정하지 않는 대학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한 은석씨는 제대한 이후에도 복학을 미루고 집 안에 틀어박혀 영화 비디오와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고 지냈다.

이런 은석씨의 모습은 다시 아버지 이씨와 어머니 황씨의 불만과 분노를 자극해 어린 시절부터 계속되어온 극단적인 표현과 욕설이 섞인 질타로 이어졌다. 군대도 다녀온 스물네 살 청년이 된 은석씨는 생전 처음으로 부모의 학대에 정면 대응하며 반항했고, 당황한 부모는 반사적으로 반항을 억누르기 위해 더 큰 분노를 쏟아냈다.

하지만 늘 부모에게 맞서고 반항하며 살아온 큰아들에게는 동생인 자기 명의로 대출까지 받아 자취방과 세간살이를 마련해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 부모에게 극단적인 배신감과 분노를 느낀 은석씨는 부친이 애지중지하며 보관 중이던 양주를 들이키고 서로 멀리 떨어진 방에서 따로 자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살해하게 된 것이다. 이은석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받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확정 판결을 받아 현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폭력의 부메랑 ‘아동 학대 피해 증후군’

학대당하며 자란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일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FBI(연방수사국) 범죄 통계에 따르면 1977년부터 1986년 사이 10년간 총 3백명의 부모가 자녀에게 피살당했는데, 그중 가장 많은 경우가 ‘극한 상황에 내몰린 피학대 청소년이 가해 부모를 살해한 경우’였다.

부모를 살해한 청소년 중 90%에게 아동 학대 피해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 중에는 우리나라의 ‘박한상 사건’처럼 부모의 유산이나 보험금 등 재산적 이익을 위해 살해하는 등 아동 학대 피해 후유증이 아닌 다른 이유로 살해한 경우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항거하지 못할 지속적 폭력에 시달려왔는지’ ‘도움(구조) 요청에도 외면당하거나 도움(구조) 요청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피해자가 ‘죽음 혹은 중대한 신체적 중상해 피해가 닥칠 것이라는 강한 두려움과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폭력과 학대 피해로부터의 방어 혹은 도피가 유일한 살해 동기였는지’(보험금 등 경제적 이익 등 다른 사유가 없는 지) 등 ‘아동 학대 피해 후유증’에 의한 방어적 범행인지가 증거에 입각해 철저하게 입증되어야 심신 미약에 따른 감형이 이루어질 수 있다.

유사한 사건들로 층격을 받은 호주 퀸즈랜드 주에서는 2011년에 법을 개정해 가정 폭력이나 아동 학대 피해자가 가해자를 살해한 경우 ‘부분적 정당방위’를 인정해 교도소 수감 등 형사 처벌이 아닌 치료나 수강 명령 등 대안적 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Series) 표창원 교수의 사건 추적


1. 악마가 된 외톨이의 빗나간 분노의 돌진
- 1991년 10월 여의도 광장 차량 폭주 사건

2. 미군에 희생된 꽃다운 청춘의 절규
- 1992년 10월 동두천 주한 미군 범죄 희생자 윤금이씨 사건

3. 남자친구의 환심 사려 끔찍한 범행
- 1990년 유치원생 곽재은양 유괴·살해 사건

4. 만삭의 여인이 벌인 잔혹한 범죄
- 1997년 8월 박초롱초롱빛나리양 유괴 사건

5. 자녀 학대가 부른 끔찍한 패륜 범죄
- 2000년 5월 과천 토막 살인 사건

6. 고희 되도록 못 버린 ‘그놈의 도벽’
- 권력자 울리고 서민 웃겼던 대도 조세형 사건

7. 악마로 변한 살인자의 두 얼굴
- 1998년 부천 비디오 가게 살인 사건

8. '살인자' 꿈꾼 소년의 잔혹한 범행
-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다 잠자던 동생 도끼로 내리쳐

9. "나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
- 아홉 살 때 성폭행당한 여성이 20년 후 가해자 살해 ‘아동 성폭력’ 심각성 알린 김부남 사건

10. '짐승' 의붓아버지 죽인 비운의 여인
- '성폭력 특별법' 탄생시킨 김보은·김진관 사건

11. "유전 무죄, 무전 유죄" 탈주범의 절규
- 1988년 탈주범 지강헌 일당의 인질범 사건
 

12. 법대 여대생 꿈 짓밟은 판사 장모의 편집증
- 미행과 감시, 위협하다 킬러 고용해 살해

13. 기막힌 살인 누명 쓴 '억울한 3인조'
- 경찰, 가상 사건 꾸며내 범인으로 몰아, 2001년 속초 콘도 살인 암매장 사건

14. 무고한 인명 앗아간 '지옥 지하철'
- 1백92명 사망, 1백48명 부상한 최악의 사건,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

15. 탐욕스런 선수들의 썩은 스포츠 정신
- 조폭과 승부 브로커들, 금전 동원해 선수 유혹한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

16. 무참하게 행복 짓밟힌 한 가족
- "웃음소리에 화가 나 살인했다"...2010년 서울 신정동 묻지마 옥탑방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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