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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죄 반전 거듭한 ‘시신 없는 살인’의 진실

‘재판부의 합리적 의심’ 넘어설 ‘확증’ 있어야

윤고현 인턴기자 ㅣ 승인 2012.10.16(Tue) 11:5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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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한 뒤 피해자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범죄자를 다룬 영화 <화차>. ⓒ 영화제작소 보임 제공
지난해 5월의 1심 유죄(무기징역). 올 2월의 2심 무죄. 9월 대법원 유죄 취지의 파기 환송. 2010년 6월 부산에서 일어난 ‘시신 없는 살인 사건’은 그야말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한 편의 법정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이 문제적 사건의 결말은 아직 다 쓰여지지 않은 채 부산고법으로 다시 돌아왔다.

대구의 여성노숙자쉼터에서 만난 노숙인 김은혜씨(여·26)를 자신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취직시켜주겠다는 거짓말로 유인해 살해한 뒤 마치 자신이 사망한 것처럼 속여 보험금을 타낸 혐의를 받고 있는 손 아무개씨(여·42) 사건이다. 1심에서는 정황 증거가 인정되어 살인 및 사체 유기죄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으나, 2심 항소심에서 직접적인 살인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살인 혐의는 무죄가 되고 시체 유기에 대해서만 징역 5년이 선고되었다. 이어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지난 9월30일 상고심에서 살인 혐의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해당 사건을 다시 판단하라며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의 사망 경위나 피고인의 범행 방법을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고 피해자의 돌연사 내지 자살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있다는 등의 이유만으로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데에는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흠이 있다’라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은 과다한 금전 소비로 궁지에 몰린 형편에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거액의 월 보험료를 지불하면서까지 다수의 생명보험에 가입했고 이후 노숙자를 물색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보험 가입 후 자신이 사망한 것처럼 보이게 할 사체를 획득할 목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할 동기는 충분히 있었다’라고 밝혔다. 또한 피해자의 사망 장소인 놀이터에서 병원까지 불과 5분 거리였고, 피고인 손씨가 부산의 지리를 잘 알고 있었음에도, 사망 후 1~2시간 후에 병원에 데리고 간 점 또한 살인 혐의를 더욱 짙게 했다. 사람이 죽은 지 한 시간이 지나야 체온이 0.7℃씩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김은혜씨의 몸은 마치 마네킹처럼 딱딱했고 차가웠다. 마치 한두 시간이 지난 후 데려온 것 같았다”라는 간호사의 증언도 있다.

‘살인’ 성립하려면 ‘사체’ 증거는 기본

하지만 시신은 이미 화장되었고, 손씨가 김씨를 살해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망 경위를 추적할 CCTV나 병원 기록이 거의 전무한 상황이라 다음 상황을 예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직 손씨가 살해했을 것이라는 정황만 있는 상황이다. 법정에서 검찰과 변호인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 이유이다. 과연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무엇이며, 결국 최종적으로 어떻게 결론이 날까? 전문가들의 반응도 다소 엇갈렸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무죄를 선고한 2심 재판부가 인용한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만들 수는 없다’는 법 정신과 형사소송법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자의 이익에서’를 인용하며 운을 뗐다. 그는 “이 경우처럼 재판관의 ‘합리적 의심’을 뛰어넘을 만한 증거를 찾기 어려운 경우 일단은 피고인의 자백이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손씨는 “절대 살해하지 않았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교수는 “우리나라에도 국민참여재판이 있기는 하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다. 미국의 배심원 제도는 평범한 시민 20명의 만장일치를 판결로 받아들인다. 보편적 상식인들의 상식적 생각이 때로 더 정확할 수 있다. 사법적 판단은 감정적일 수 없다. 판사는 법 적용과 법 해석상의 문제를 더 관심 있게 본다. 정황상 살인으로 보여도 채증 법칙에 따라 채택할 만한 ‘누구나 납득할 수 있고 객관적으로 타당한’ 증거가 없다면 무죄로 판결 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라고 덧붙였다.

정황상 명백한 증거에도 유죄에 대한 증거의 기준이 점차 높아지는 상황도 있다. 의사 출신인 이용환 변호사는 “살인·강도의 경우 판사들이 유죄에 대한 확신 정도를 매우 엄격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피해자의 높은 간 수치나 과다 체중, 월경 불순 등 건강검진에 따른 의학적 증거를 들이대며 돌연사 가능성을 제기하면 판사들은 유죄에 대한 확신을 하기 어렵다. 심장 발작에 의한 돌연사가 의학적 가능성의 정도가 매우 낮음에도 그 낮은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판사들이 잘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무죄 판결이 났던 2심에서는 유죄의 증거와 무죄의 증거 중 유죄의 증거 가치가 절하된 상황이었다. 언어의 취사 선택의 문제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유죄 판결의 여지가 크다는 지적도 있다. 유죄를 선고한 1심 판결문에서는 판단의 근거로 ‘유죄의 심증은 경험칙과 논리 법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간접 증거에 의하여도 형성될 수 있는 것인 바 (중략) 전체 증거를 상호 관련하에 종합적으로 고찰할 경우 그 단독으로는 가지지 못하는 종합적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그에 의하여도 범죄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살인 사건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사체가 증거로 있어야 한다. 살인이 강하게 의심되어도 무죄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간접적 증거를 종합해 살인죄가 성립된다고 보는 판례도 늘어나고 있다. 2008년 경기도 용인에서 일어난 30대 남성 살인 사건과 2010년 인천 낙지 살인 사건이 그 예이다. 시신이 없어도 정황 증거로 ‘유죄’ 판결이 난 사건들이다. 두 사건 모두 시체를 은닉해 증거를 없앤 경우이다. 그런데 채무 관계나 보험 실적이라는 동기와 여러 가지 정황상의 증거가 인정되어 피고인의 유죄가 확정되었다.

   
‘확증’ 범위 안에 무엇이 포함되느냐가 관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교수는 “2008년 용인경찰서가 수사했던 사건에서도 사체를 은닉해서 찾을 수 없었지만 피해자와 피고인 간 채무관계, 돈거래 추적을 통해 유죄가 결정됐다. 부산 사건의 경우 이미 시간을 많이 소요한 후 피해자를 병원에 데려간 점, 피의자의 부채가 많았던 점, 처지에 맞지 않는 고액의 생명보험에 다수 가입한 것 등 정황상 살인의 동기는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2심 판결문 자체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피고인 변론만을 중점으로 구성된 점이 특이하다. 자살 가능성과 돌연사 가능성에 대한 여지의 추측을 다 받아들였다. 자살·돌연사 가능성에 대한 근거는 불분명하다. 피해자의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판결문에서도 ‘심장질환 등의 질병을 앓고 있지는 않았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나’라고 언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무죄를 뒷받침할 증거도 미약한 상황이다. 이교수는 “2심 판결문에서 ‘피해자의 돌연사 가능성 유무’ 부분은 조악하다. 피고인은 돌연사 가능성으로 과체중, 생리 불순과 높은 간 수치를 들고 있는데 관련된 질병으로 인한 입원 기록도 없다. 건강검진 기록이 전부이다. ‘간의 수치가 일반인에 비하여 두 배 이상 높은 정도’로 사망으로 이어질 만한 결정적 증거가 없다. 보험 가입 방법, 증인들의 상세한 증언의 비중이 더 컸어야 했다. 또한 자궁 미성숙, 흡연 등의 건강 문제가 있었던 것을 지적하고 있지만 이것이 피해자의 죽음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결론을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이번 사건의 판결에서 재판부의 ‘합리적 의심’의 수위를 넘을 만한 검찰의 카드는 어떠한 것이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수정 교수는 “용인 살인 사건과 인천 낙지 살인 사건 등 기존 생명보험과 연관된 살인 사건 중 유죄 판결이 난, 사체 없는 살인 사건들과 비교해서 이 사건이 그 기준에 어떻게 적합한지 판례 연구가 필요하다. 문제는 재판부의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이다. 의심이 없을 정도로 확증이 있어야 한다. 확증의 범위 안에 무엇이 포함되느냐는 여전히 문제의 여지를 남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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