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꾼’으로 돌아와 재선 청신호 켠 오바마
  • 한면택│워싱턴 통신원 ()
  • 승인 2012.10.23 17:2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대선 2차 TV 토론에서 ‘판정승’

10월16일 미국 뉴욕 호프스트라 대학에서 열린 TV 토론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롬니 후보를 등진 채 발언하고 있다. ⓒ UPI 연합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싸움꾼으로 돌아왔다. 1차 TV 토론에서 졸전 끝에 롬니 후보에게 강펀치를 맞고 비틀대더니 2차 토론에서는 설욕전을 펼쳤다. 오바마 대통령은 2차 토론에서 혈투 끝에 판정승을 거둬 마침내 출혈을 저지하고 재선 가능성을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벼랑 끝에서 밀리면 끝장난다는 각오로 사생결단을 하고 나선 모습이었다. 미국 시간으로 10월16일 밤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열린 2차 토론에 나타난 오바마 대통령은 분명 10여 일 전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 후보는 에너지와 감세 정책, 이민 개혁, 리비아 영사관 피습 사태 등을 놓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듯 설전을 벌이며 격돌했다.

‘강사’에서 ‘투사’로 변신 

오바마 대통령은 2차 토론에서 스타일을 확 바꿨다. ‘강사’에서 ‘투사’로 변신했다. 1차 토론 때와는 다르게 상대방이 발언하는 도중에 “그것은 완전히 사실이 아니다. 당신의 주장은 틀렸다”라고 말을 자르면서 토론 주도권을 잡으려 애썼다.

롬니 후보의 공세에도 점잖게, 조용히 듣고 있다가 강의조로 설명하던 1차 토론 때의 ‘강사’ 모습에서 ‘투사’ 스타일로 1백80° 변신한 것이다. 상대방의 잽도 허용하지 않으려고 자기 차례가 아닌데도 끼어들어 미리 봉쇄하는 모습이었다. 스타일뿐만 아니라 말투도 바꿨다. 롬니 후보에게 바짝 다가가 독설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1차 토론 때 언급하지 않았던 롬니 후보의 ‘미국민 47%’ 비하 발언 등을 모조리 끄집어냈다. 베인캐피털이라는 말만 하지 않았지 롬니 후보를 부자와 석유산업의 꼭두각시라고 몰고갔다.

두 후보 모두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에 갤럽이 선정한 부동층 80명의 청중들 앞에서 자주 말싸움을 벌여 사회자가 제지하는 장면까지 연출했다. 그러나 2차 토론에서는 역시 사생결단하고 나온 오바마 대통령이 무대를 장악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2차 토론에서는 롬니 후보의 정책을 반박하는 대신 부정직성을 공격했다. 표현만 달랐을 뿐 “롬니 후보는 거짓말쟁이이다”라고 몰아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롬니 후보가 자신의 4년 성적표를 공격하려 할 때는 물론 자신의 에너지 정책, 세법 개선, 일자리 창출 등에 대한 정책을 설명하려 할 때에도 “not true!”를 외쳤다. 오바마는 롬니 후보의 발언과 공격, 정책에서 팩트가 부족하고 사실이 아닌 것이 태반이라며 정직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롬니 후보는 세법 개편으로 5조 달러, 부시감세 조치 연장으로 1조 달러, 국방비 2조 달러 증액 등으로 10년간 7조~8조 달러의 비용을 들이면서도 중산층 감세 혜택을 유지하겠다고 말하고 있다”라면서 롬니의 공약이 허수로 가득한 빈 공약이라고 공격했다.

롬니 정책을 비판했던 1차 토론 때 강사처럼 장황하게 설명하거나 궁색하게 변명한 것으로 들려 쓴맛을 보았기 때문에 2차 토론에서는 정반대 전략을 들고 나온 것으로 해석되었다. 또한 롬니 후보의 가장 큰 취약점이 세부안이 부족하고 말과 입장을 자주 바꿔 신뢰를 잃어왔다는 점을 감안해 이를 최대한 파고든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선거 유세, 선거 광고, 토론 대결 할 것 없이 어느 후보가 유권자들을 잘 속이나 경쟁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물론 근거 없는 공격은 아니다. 그렇지만 전체를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들이 공격할 수 있는 일부만 사용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롬니 후보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다섯 가지 계획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은 단지 최상위층이 다른 룰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는 한 가지 계획이 있을 뿐이다”라고 공격했다. 롬니 후보가 에너지 사업 확대, 세법 개편에 따른 추가 감세 등 다섯 가지 사업으로 4년간 일자리를 1천2백만개 만들어 내겠다고 공약한 것을 공격한 것이다. 두 후보의 주장에는 모두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이 필요한 부분만 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 분석가들은 롬니 후보가 거창한 일자리 창출 계획을 내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의 미국 경제 회복 상황으로 미루어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4년간 1천2백만개의 일자리를 늘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기 침체기에 8백50만개의 일자리를 잃었던 미국 경제가 이미 3년간 5백20만개의 일자리를 회복했으며 그런 추세라면 대통령이나 정책과는 무관하게 4년간 1천2백만개 일자리를 창출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롬니 후보는 그럼에도 마치 자신의 획기적인 일자리 창출 방안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것을 지적하면 자신에게도 유리할 것이 없는 데다가 어거지 주장으로 들릴 것이므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대신 부자들과 대기업의 혜택을 위해 중산층·서민들을 볼모로 잡으려 한다고 역공을 취하고 있다.

지난 9월11일 리비아 뱅가지 주재 미국 총영사관이 피습당해 불타고 있다. ⓒ EPA 연합
롬니 후보는 토론 중 중대한 실수 범해

설상가상으로 롬니 후보는 2차 토론에서 자충수를 하나 두었다. 대사를 포함해 네 명의 외교관이 목숨을 잃은 리비아 뱅가지 미국 영사관 피습 사태를 끄집어내며,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성명을 발표하면서 테러 행위로 규정조차 하지 않았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사회자인 CNN 방송 캔디 크롤리 기자가 사실은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했었다고 즉석에서 지적하고 나서자 당황해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롬니의 자충수를 기다렸다는 듯 중간에 끼어들면서 “계속해 보세요”라고 말하고 크롤리 기자가 알아서 사실을 지적해주자 “좀 더 큰 소리로 말해달라”라고 주문하는 등 하나 걸려들었다는 듯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로즈가든 발표에서 외교관 사망 사태를 테러 행위로 규정하고 강력 규탄했으나 롬니 후보는 줄곧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공격했다가 2차 토론에서 중대한 실수를 범한 것으로 지적되었다.

2차 토론에서는 누구도 압도했거나 완패당하지는 않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CNN 방송이 토론을 시청한 등록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6%는 오바마를, 39%는 롬니를 각각 승자로 꼽았다. CBS 방송 조사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이 승리했다는 답변이 37%로 나왔다. 롬니 후보의 30%보다 많아 2차 토론은 오바마 대통령의 판정승으로 평가되었다. 따라서 2차 토론 후 오바마 대통령이 갑자기 압도하지는 못할 것이지만, 롬니 후보의 1차 토론 승리 이후의 상승세는 끝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에게 2차 토론의 판정승은 어느 때, 어느 것보다 귀중한 승리로 꼽히고 있다. 적어도 1차 토론 패배 이후 멈추지 않았던 출혈은 일단 막아내 지혈 효과를 본 것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1차 토론 패배로 내리막길을 걸어 역전패를 당할 위기에까지 몰렸으나 10여 일 만에 가진 리턴매치에서 선전해 롬니 후보의 상승세를 저지하며 재선 가능성을 되살리게 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제 11월6일 실시되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토론과는 상관없이 펼쳐져온 초박빙 대결이 계속되면서 플로리다·오하이오·버지니아·콜로라도·아이오와·네바다 등 ‘배틀 그라운드’에서 최후 승부가 갈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