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가 꿈꾸는 것은 ‘세계 제1의 통신 제국’
  • 도쿄·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2.10.24 13: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프트뱅크, 미국 3위 통신사 스프린트 인수 일본 기업의 해외 M&A 규모로는 역대 세 번째

지난 10월15일 일본 도쿄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스프린트 넥스텔 인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AP연합
지난 10월15일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미국 3위의 이동통신 업체인 스프린트 넥스텔을 2백1억 달러(1조5천7백억 엔)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 통신 시장이 술렁였다. 두 회사가 합병되면 모바일 계약자 수는 9천만명이 되고 매출 규모에서는 중국의 차이나모바일, 미국 버라이즌에 이어 세계 3위가 된다. 일본에서는 제1 이동통신사인 NTT(가입자 6천만명)를 제치고 1위로 등극하게 된다.

소프트뱅크의 주식 가격은 발표 당일 5.3%까지 떨어졌으나 16일 반등하기 시작해 9.6% 상승했다. 거액의 인수 자금에 불안을 느꼈던 투자자들이, 미즈호 파이낸셜그룹을 비롯한 미쓰이스미토모 파이낸셜그룹, 도쿄미쓰비시UFJ 등 일본의 대표적인 3대 대형 은행과 도이치 은행이 1조5천억 엔을 융자한다는 발표에 반응했기 때문이다. 또 M&A(인수·합병)의 달인인 손정의 회장이 자신감을 나타낸 것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는 스프린트로부터 주당 5달러25센트로 80억 달러 상당의 지분을 사들이고 기존 주주에게는 주당 7달러3센트를 주고 1백21억 달러 상당의 지분을 사들여 스프린트의 주식 70%을 취득하게 된다. 경영은 현재 스프린트의 CEO인 댄 헤세가 계속 맡기로 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경영은 손회장이 진두지휘할 예정이다. 그동안 일본 기업들이 해외에 M&A를 해왔으나 실질적인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아 실패한 사례가 있다. 손회장의 M&A 철학은 자신이 직접 최종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지분 구조를 갖는 것이다. 이 점이 단순 투자를 중심으로 하는 많은 일본의 기업인들과 다르다.

스프린트 결제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 모색

소프트뱅크의 이번 M&A는 올해 일본에서 최대 규모이다. 일본 기업의 해외 M&A 규모로는 역대 세 번째이다. 손회장이 이제 겨우 2006년 영국의 보다폰 일본 법인을 인수한 대금 1조7천5백억 엔을 변제해가는 시점에 다시 거대 자금이 투입되어야 하는 M&A를 하는 의도에 관심이 집중된다. 손정의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6년 전 보다폰을 인수할 당시부터 일본 국내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모바일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프린트를 인수한 배경과 경영 전략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밝히지 않았다.

몇 가지 예상할 수는 있다. 먼저 일본 이동통신 시장은 포화 상태이다. 가입자가 더는 늘어나지 않아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또, 이동통신 시장의 환경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이동통신의 세계 표준이 되고 있는 차세대 고속 무선통신 LTE 서비스에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프라가 정비되어가는 상황에서 기술의 표준화나 설비 조달 측면에서 주도권을 쥐고자 하는 의도도 엿보인다. 스마트폰 판매를 확대하려는 것은 물론이다. 나아가 미국 시장을 발판 삼아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원대한 목표도 읽을 수 있다. 스프린트의 결제 기반을 가지고 어플리케이션 서비스나 전자상거래 비즈니스 사업을 펼치려는 목적도 있다.

손정의 회장의 M&A는 다목적을 추구하고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 미국의 야후를 인수할 때도, 일본에서 ADSL 사업을 할 때도 그랬다. 이런 M&A 철학과 노하우를 스프린트 인수에도 그대로 적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손회장은 일본의 NTT나 KDDI보다 앞서 스마트폰의 가능성을 예견하고 서비스해 큰 성공을 거둔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스프린트의 댄 헤세 CEO도 이를 기대하고 있다. 손회장은 바둑으로 말하면 늘 몇 수 앞을 내다본다. 네트워크 기기의 볼륨(양)이 커지면 스마트폰 메이커와 교섭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수도 읽힌다. 아울러 일본에서 네트워크 품질과 고속 통신 서비스를 높일 수 있는 효과도 있다. 자연스럽게 수익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또 빠뜨릴 수 없는 점은 손회장이 말하는 업의 정신, 즉 정보통신 혁명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풍요롭고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한다는 이념이 깔려 있다.

이런저런 목적과 의도 이외에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손회장이 강한 승부 근성과 정보통신 분야에서 글로벌 넘버원이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스프린트 인수를 결정한 뒤 기자 회견에서도 “언젠가 세계 1위가 되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길게, 크게 몇 수를 미리 내다보는 통찰력을 가진 인물에 대해 시장에서는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고 있다. 기대하는 측면은 일본 메이커 샤프 제품을 스프린트를 통해서 미국에서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어플리케이션 회사도, 전자상거래업계도 시장이 커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투자 실패 사례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그러나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자금은 일본 3대 메가뱅크에서 지원하기로 함으로써 투자자들을 안심시켰으나 문제는 어떻게 돈을 갚을 것인가이다. 손회장은 2006년 영국의 보다폰  일본 법인을 인수할 당시 1조7천5백억 엔(24조5천억원)을 거의 변제한 실적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금리도 보다폰을 인수할 때는 4%였으나 이번에는 1%를 조금 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인다. 또, 일본의 종합상사나 자동차회사들의 차입금에 비하면 턱없이 많은 것도 아니다.

투자에서 실패한 사례가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2006년에 NTT는 미국 AT&T와이어리스에 16% 투자했다. 하지만 경영을 장악하지 못해 엄청난 손실만 입고 철수한 적이 있다. 소프트뱅크의 경우에도 이런 전철을 밞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거기다 인재 유출도 걱정거리 중 하나이다. 소프트뱅크와 경쟁하는 통신회사들의 경우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다 외국산이어서 스프린트를 인수한다고 해서 일본제 단말기가 팔릴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조금 안이하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은 국토가 넓어서 인프라를 구축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하지만 손회장은 자신만만하다. 스프린트의 ARPU(1계약당 평균 월수입)가 회복되고 있고, 현재의 V자 회복 추세에 소프트뱅크가 함께한다면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을 자신하고 있다. 스프린트의 적자 원인 가운데 하나는 스마트폰을 대량 구입해놓은 것과 통신망에 중복 투자한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스마트폰의 판매는 순조롭게 늘어날 것이고, 2005년에 합병한 구 넥스텔의 별도 통신망은 2014년부터 중지될 것이기 때문에 중복 투자 문제가 해소될 것이다.

스프린트와의 M&A가 성공하게 되면 전 세계 통신업계가 재편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먼저 일본 국내 시장을 보면 9월 말을 기준으로 NTT도코모, KDDI, 소프트뱅크 가입자 수는 각각 6천78만명, 3천6백11만명, 3천46만명이다. 소프트뱅크가 2013년 2월에 매수할 예정인 이억세스의 4백20만명을 포함하면 3천4백66만명이 된다. 한편 미국 통신업계의 경우 AT&T모빌리티가 1억5백20만명, 버라이즌 와이어리스가 9천4백20만명, 스프린트넥스텔이 5천6백만명이다. 이번에 소프트뱅크가 스프린트를 인수하게 되면 가입자 수는 9천66만명이 된다. 여기에 스프린트를 통해서 T모바일USA 3천3백20만명, 메트로PCD커뮤니케이션 9백30만명을 인수하는 일이 실현된다면 1억3천3백16만명이 되어 세계 제1의 통신업자로 등극할 수 있다. 통신업계에서 세계 제일이 되겠다는 꿈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 셈이다.

손정의 회장의 미국 기업 M&A 도전사

손회장이 미국 회사를 인수·합병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세계 최대 컴퓨터 전시 행사인 컴덱스와 세계 최대컴퓨터 출판사인 지프데이비스를 인수한 적이 있다. 수십억 달러 규모였다. 이어서 1996년에 경상 손익 1억 엔(1천4백억원)의 적자투성이 회사인 야후에 1백50억 엔(2천100억원)을 투자했다. 당시 인터넷 선진국인 미국의 언론들은 “일본에서 온 마지막 ‘거품남(bubble man)’이다”라고 조롱했다. 하지만 손회장은 야후에 대한 투자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소프트뱅크가 탄생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손회장은 컴덱스·지프데이비스·야후의 인수·합병에 성공하며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 자신감으로 미국뿐만이 아니라 글로벌 모바일 시장에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손회장은 2006년에 영국의 보다폰 일본 법인을 인수한 뒤 당분간 재무 구조 개선에 집중하며 안정적인 경영 전략을 취하는 것으로 선회하는 듯했다. 2010년 창립 30주년을 맞이해 ‘소프트뱅크 신30년 비전’을 발표하고 후계자 육성을 위해 ‘소프트뱅크 아카데미’ 학교를 개교했을 때 더욱 그랬다. 손회장 자신이 19세 시절에 세웠다는 ‘인생 50년 계획’ 50대의 계획을 실천해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인생 50년 계획은 ‘20대에 업계에 이름을 알리고, 30대에 1천억 엔(1조4천억원) 정도의 투자 자금을 확보해서, 40대에 1조 엔(14조원)·2조 엔·3조 엔 단위의 투자를 한다. 50대에 사업을 성공시켜, 60대에 후계자에게 물려준다’는 계획이다. 그의 ‘인생 50년 계획’대로 40대인 2006년에 보다폰 일본 법인에 1조7천5백억 엔(24조5천억원)이라는 조 엔(몇십조 원) 단위 인수·합병을 성공시켰다.

1957년생인 손회장은 이제 50대가 되어 ‘인생 50년 계획’에 의하면 사업을 성공시켜가야 하는 과정에 있다. 하지만 50대에 들어서도 아직 40대의 몇조 엔 단위의 투자와 M&A를 계속하고 있다. 도전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었다며 100억 엔(1천4백억원)을 쾌척하고, 일본의 에너지 정책을 바꾸기 위해 10억 엔을 들여 자연에너지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끊임없이 시대를 휘젓는 인간 손정의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가 늘 얘기하듯이 정보 혁명을 통해서 인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것인가? 분명한 사실은 정보 혁명 분야에서 글로벌 1위를 차지하겠다는 야망이 있음을 이번 스프린트를 인수할 때의 인터뷰에서 피력했다. 그는 제일 한국인 3세로서 갖은 차별과 제약, 서러움 속에서 ‘누구나 평범하고, 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중이다. 1등 추구가 평범한 일은 아니지만 온갖 차별과 악조건 속에서 자란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삶의 여정이라고 인간 손정의는 웅변하고 있다. 그의 지독한 1등 정신은 일본 사회에서 때로는 비난의 화살이 되어 날아오기도 했다. 한 사례로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고 감격에 겨워 우는 모습에 대해 금메달도 아닌 겨우 동메달을 따고 우느냐는 말을 해 여론의 뭇매를 당하기도 했다.

스프린트 인수는 글로벌 넘버원을 향해 가는 과정이다. 손정의의 도전 스토리에는 당분간 마침표가 있지 않을 것 같다. 스프린트 인수 후 경영이 궤도에 오른 후에는 스프린트를 통해서 클리어와이어나 미국 이동통신 5위인 메트로 PCS커뮤니케이션의 인수·합병이라는 도전의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번 스프린트의 인수는 어쩌면 이 두 회사와의 M&A을 위해, 글로벌 넘버원이라는 마지막 승부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지칠 줄 모르며 끊임없이 세상을 휘젓는 사람, 3백년 지속되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인간 손정의의 미래가 그 어떤 드라마보다 흥미로워진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