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 속 6억원은 다스 비자금?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2.10.29 13: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일가가 특검의 칼날 위에 섰다. 아들 이시형씨는 지난 10월25일 ‘내곡동 사저 특검’ 사무실에 나가 수사를 받았고, 이씨의 큰아버지인 이상은 ㈜다스 회장도 소환 조사를 받는다. 시형씨는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과정에서의 배임 및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시형씨가 큰아버지에게 빌렸다는 6억원의 정체도 의문의 핵심이다. 이 돈과 관련해 주목되는 곳은 ㈜다스이다. 실제로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대통령이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6억원이 다스의 비자금일 가능성이 크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가 피의자로 소환되어 10월25일 서울 서초동 특검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내곡동 특검’의 행보가 파죽지세이다. 2011년 10월8일 <시사저널> 첫 보도로 불거진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의혹은 1년이 지나는 동안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의혹은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형국이다. 8개월 동안 검찰이 수사하기는 했지만, 결과는 ‘맹탕’이었다. 이대통령을 비롯한 관련자 일곱 명 모두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던 것이다. ‘졸속·부실 수사’라는 힐난이 쏟아졌고, 지난 6월 정치권에서는 특검을 실시하기로 여야가 합의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 10월15일 ‘이명박 정부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가 닻을 올렸다. 민주통합당 추천을 받은 이광범 특별검사는 이대통령 일가를 향해 칼을 빼들었다. 특검팀은 사무실 정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거침없는 광폭 행보에 나섰다. 이대통령의 아들 시형씨와 큰형 이상은 ㈜다스 회장 등 주요 수사 대상자 10여 명을 바로 출국 금지시켰다.이회장과 시형씨 등의 다스 사무실과 자택등을 전격 압수수색했고, 광범위한 계좌 추적도 벌이고 있다.

부지 매입 자금 출처가 특검 수사의 핵심

도피성 출국 논란을 빚은 이상은 회장은 10월24일 중국에서 귀국했고, 바로 그 다음 날(25일) 오전 시형씨는 서울 서초동 특검 사무실 앞에서 2백여 명의 취재진 앞에 서야 했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특검 수사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4월 검찰 수사 때 ‘피고발인’ 신분으로 서면 조사만 받았던 시형씨는 이번에는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이는 시형씨의 범죄 혐의가 짙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초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 건축이 예정되었던 서울 내곡동 20-17번지 현장. @시사저널 전영기

특검팀은 우선 내곡동 부지 매입 과정에서의 배임 및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시형씨가 내곡동 사저 부지를 매입하는 데 썼던 자금의 출처가 핵심 관건이다. 청와대와 시형씨는 내곡동 부지 9필지(7백88평)를 모두 54억원에 공동 매입했다. 그 가운데 시형씨가 부담한 것은 11억2천만원. 시형씨는 지난 4월 검찰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아버지(이대통령)가 ‘네 이름으로 사저 부지를 사는 게 좋겠다. 큰아버지(이상은 회장)에게 6억원을빌리고, 나머지는 어머니(김윤옥 여사)를 통해 마련하라’고 지시해서 돈을 마련해 청와대로 가져갔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시형씨 자신은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돈 배달’만 했을 뿐이라는 해명이었다. 다른 내곡동 의혹들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시형씨는 실제로 아버지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른 듯하다. 어머니 김윤옥 여사의 서울 논현동 땅을 담보로 농협 청와대 지점에서 6억원을 대출받았다. 나머지 6억원은 큰아버지에게 빌렸다고 한다. 문제는 시형씨가 큰 아버지에게 빌렸다는 6억원의 출처와 성격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시형씨는 지난 검찰 조사에서, 이회장에게 빌린 현금 6억원을 청와대 관저에 있는 붙박이장에 보관했고, 김세욱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실 행정관이 이 돈으로 부지 매입 대금을 송금했다고 진술했다.

‘의문의 현금 다발 6억원’의 출처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이상은 회장의 ‘다스’이다.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자동차 시트 부품을 생산하는 다스는 지난 1987년 7월10일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회사명은 대부기공㈜이었다. 대부기공은 2003년 2월13일 ㈜디에스에스로 회사명을 바꾸었다가, 보름 후 ‘다스’로 다시 변경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시 서울시장이었다.

회사명을 대부기공에서 다스로 바꾼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부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2002년 말이상은 회장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고, 그 소문이 다스 본사가 있는 경북 경주 지역에 퍼졌다. 그러자 회사 이미지를 바꾸자는 차원에서 회사명을 다스로 바꾼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지난 10월17일 경북 경주시 외동읍 외동농공단지 내 다스 본사 정문에서 경비원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스는 정주영이 MB에게 준 것” 증언 나와

그런데 대부기공을 설립할 수 있었던 배경에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는 전언이 있다. 현대차와 다스의 관계에 정통한 한 인사는 최근 기자에게 대부기공 설립 과정과 관련해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비화를 털어놓았다.

“대부기공이 설립되기 전에는 ‘효문산업’이라는 회사에서 자동차 시트 부품을 생산해 현대자동차에 납품했다. 효문산업은 현대자동차의 시트사업부에서 설립한 별도 법인이었다. 현대차가 효문산업에 대한 관리와 인사등 경영 전반에 관여했다. 1967년 설립된 현대차는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의 넷째 동생인 고 정세영 회장이 1996년까지 직접 경영했는데, 효문산업이 운영되던 1970~80년대에 이대통령은 현대건설 사장으로 있었다. 지난 1987년 정주영 회장은 효문산업의 부품 생산 사업을 이명박 사장에게 넘겨주었다. 정회장이 이명박 사장에게 효문산업이 생산하던 자동차 시트 부품 사업을 맡아서 해보라고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었던 것이다. 효문산업의 생산 설비까지 대부기공에 모두 넘겨주었다. 당시 이명박 사장은 정주영 회장의 신임을 두텁게 받고 있던 시절이다.

그런데 현대건설 사장이던 이대통령이 효문산업까지 직접 경영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이에 자동차 부품 사업 비 전문가인 친형 이상은씨에게 경영을 맡겼던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대부기공이 탄생했고, 오늘의 다스로 이어져 내려왔다.”이 인사는 대부기공이 공장 문을 닫을 뻔 했던 비화도 전해주었다. “정주영 회장이 국민당을 창당해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1992년, 이명박 대통령은 정회장과 결별하면서 그해 3월 총선에서 민주자유당(현 새누리당)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러자 크게 화가 난 정회장이 ‘저 회사(대부기공)를 없애라’고 정세영 현대차 회장에게 지시했다. 하지만 정세영 회장은 ‘대부기공을 대체할 만한 마땅한 부품회사가 없다’라고 보고했다. 그래서 대부기공은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다스의 본사인 경주공장의 경우 2006년 매출액이 3천억원대였으나, 지난해에는 6천2백70억원으로 6년 만에 두 배나 늘어났다. 국내에는 경주공장과 충남 아산공장이 있으며, 미국과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아홉 곳에 해외 사업장을 두고 있다. 현재 미국 공장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국내 공장과 해외 사업장의 지난해 총 매출액은 1조6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형씨는 2010년 이회사의 과장으로 입사한 후 올해 이사로 승진했다. 1978년생인 시형씨는 올해 35세이다. 강경호 다스 공동대표는 이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서울시 산하 서울메트로(서울지하철공사) 사장(2003년 4월~2007년 1월)을 지냈다. 2007년 대선 때는 이대통령의 외곽 조직인 서울경제포럼 공동 대표를, 현 정부 들어서는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사장(2008년 6~11월)을 역임한 MB의 측근이다.

다스의 설립 과정이나 여러 증언 등을 통해 다스의 실소유자가 이대통령이 아니냐는 의혹이 또다시 제기되고 있다. 기자가 접촉한 복수의 자동차 부품업계 관계자들은 “다스의 진짜 주인은 이대통령일 것이다”라고 강하게 의심한다. 특히 시형씨가 올해 이사로 승진하면서 업계에서는 “결국 시형씨가 이대통령의 다스 대행자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 아니냐”라고 수군거리고 있다. 이상은 회장은 대외 활동이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품업계 관계자들은 “이상은 회장은 자동차 부품업계 모임에 거의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다스의 실제 소유자가 누구인가 하는 논란은 이미 지난 2007년 대선 과정에서 크게 불거진 바 있다. 다스는 지난 2003년 5월 ‘BBK에 1백90억원을 투자했다가 사기당했다’며 김경준 당시 BBK 대표를 미국에 고발했다. 그 다스의 실소유자가 이명박 후보가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었던 것이다.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김경준씨는 자서전 <BBK의 배신>에서 다스의 실소유주로 이대통령을 지목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 12월 검찰과 2008년 2월 ‘BBK 특검’은 MB의 ‘BBK-다스’ 의혹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럼에도 ‘내곡동 특검’이 다스를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다스의 실소유자 논란이 불붙고 있다.

이회장이 6억원이나 되는 거액의 현금 다발을 서울 구의동 자택에 보관한 까닭도 석연치 않다. 한겨레 10월24일자 보도에 따르면, 시형씨는 경주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 청와대에 있는 가방 3개를 자신의 차에 실은 뒤 서울 광진구 구의동 이상은 회장의 집으로 갔다. 당시 집에 있던 이회장의 부인 박 아무개씨가 집 붙박이장에 있던 1만원권과 5만원권으로 현금 6억원을 건넸고, 시형씨는 현금을 가방에 담아 곧장 청와대로 왔다.

이상은측 “6억 출처·비자금 등은 모른다”

최근 이 돈의 출처와 관련해 ‘다스의 비자금’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다스’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통상적으로 현금 6억원을 집에 두는 경우는 없다. 정상적인 자금이라면 은행에 예치한다. 비정상적인 돈이기 때문에 집에 그것도 현금으로 보관했던 것이다. 다스는 현대·기아차에 생산 제품 90% 이상을 납품하고 일부 수입차 브랜드에도 공급한다. 100% 주문자 생산 방식(OEM)이다. 별도의 영업 활동이 필요하지 않은 회사이기 때문에 거액의 현금을 따로 보관할 이유가 없다. 다스의 비자금이 아니라면 6억원의 출처가 설명되지 않는다. 비자금일 가능성이 짙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다스의 비자금 조성 방식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관측을 내놓았다. 그는 “다스는 중국이나 인도 등 여러 곳에 해외 사업장을 두고 있다. 이들 해외 사업장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할 수도 있다. 특히 1999년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합병하면서, 다스도 국내 공장과 설비를 증설했다. 그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했을 개연성도 있다. 정상적인 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10월25일 이명박 대통령 일가의 내곡동 사저 부지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이광범 특별검사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6억원의 출처 및 비자금 조성 의혹’ 등에 대해 이회장측은 “그런 부분에 대해 모른다”라고만 말했다. 다스측 관계자들도 한결같이 “모른다”라고만 말했다. 현대·기아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한 중소기업 사장은 “만도기계의 경우 정세영 회장 형제(고 정인영 한라그룹 회장)가 운영하고, 정회장의 사위와 처남 등도 자동차 범퍼와 휠 탱크 등을 생산해 현대·기아차에 납품한다. 이들 회사는 현대·기아차 안팎에서 ‘로열패밀리’로 분류된다. 다스 역시 로열패밀리에 포함된다. 이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로열패밀리 중의 로열패밀리’로 불린다. 심지어 부품업계에서는 다스가 ‘갑’이고, 오히려 현대·기아차가 ‘을’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내곡동 특검’ 수사는 이대통령을 점점 옥죄어가는 형국이다. 아들 시형씨 소환에 이어 이상은 회장 부부도 특검 사무실에 출두한다. 특검 안팎에서는 김윤옥 여사의 소환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역대 정권 말기 대통령 일가가 수모를 당했던 치욕스러운 역사가 이번 정권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