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뭉치면 유로 위기 사라질까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2.10.3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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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은행 연합’ 설립 합의

복원 공사 중인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위로 유럽연합기가 펄럭이고 있다. ⓒ EPA 연합
3년 가까이 지속되어온 유로 위기에 전기가 마련되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10월18일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 ‘은행 연합(banking union)’ 설립에 대한 동의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은행 연합을 끌어낸 배경은 무엇이고, 그래도 유로 위기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에는 어떤 영향이 닥쳐올 것인가.

독일의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EU 정상회담이 열리기 일주일 전 그리스 정부의 파산 가능성을 배제하면서 “유럽의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고 하더라도 유로존이 붕괴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유로를 신뢰할 만한 화폐로서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라고 말했다.

독일의 <슈피겔> 10월17일자는 독일 싱크탱크인 프로그노스의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가 유로존에서 탈퇴하게 되면 17조 유로의 손실을 초래하고 세계 경제는 경기 침체로 빠지게 된다는 내용이다. 프랑스가 가장 큰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만으로도 1천6백40억 유로의 손실이 발생해 그리스 인구 1인당 1만4천 유로의 부담을 안게 된다고 추산했다. 동시에 독일이 채권국으로서 치르게 되는 대가는 6백40억 유로이고, 이로 인해 2013년에서 2020년 사이에 입게 될 경제적 손해는 7백30억 유로에 달하게 된다며 이는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2.9%에 해당된다고 보았다.

EU 정상회담에서 만난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 ⓒ EPA 연합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독일·프랑스의 입장 차

또 포르투갈이 유로존을 탈퇴하면 독일은 2020년까지 2천2백50억 유로의 손실을 보게 되고, 스페인이 유로존을 탈퇴하면 독일은 2020년까지 8천5백억 유로의 손해를 보게 된다고 내다보았다. 미국 또한 1조2천억 유로의 손실을 보며, 다른 42개국이 9조9천억 유로의 손실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슈피겔>은 유로존에서 세 번째로 경제 규모가 큰 이탈리아가 탈퇴할 경우에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선 독일은 GDP에서 1조7천 유로의 손실을 보고, 독일에서 2015년까지 적어도 100만명의 실업자가 생겨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슈피겔> 10월18일자는, 독일과 프랑스는 EU의 미래에 대해서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있지만 불행스럽게도 접근 방법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EU 정상회담에서 마찰이 예상된다고도 보도했다.

양국의 차이점은 이렇다. 먼저 독일은 EU의 예산 규정을 좀 더 강화하고자 하며 해당 EU 조약들을 최대한 빠르게 개정하기를 원한다. 반면, 프랑스의 최우선 과제는 은행에 대한 감독 메커니즘을 빨리 만드는 것이다. <슈피겔>은 이 때문에 정상회담의 결과는 교착 상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슈피겔>은 독일 정부 내의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한 기대를 이미 낮췄고, 어떤 중요 결정도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또한 정상회담은 그저 12월에 예정된 다음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수순에 불과할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 이외에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집단적인 은행 감독 시스템을 연내에 마련해서 유로 구제 자금인 유럽안정메커니즘(ESM)이 2013년부터 은행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제공하기를 바라고 있다. 현재 ESM은 회원국 정부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주어지고 있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최악은 면했다는 것을 확인한다”라고 EU 정상회담에서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배경은 은행연합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다는 낙관적 전망에 근거한다. 유로존의 새로운 은행 감독 기관으로서 역할을 할 은행연합은 연말까지 법적 토대를 완성하고 2013년 중에 본격 가동될 예정이다. 유로존의 구제 자금인 ESM은 내년에 문제 은행들의 재자본화를 위해 직접 사용될 전망이다.

<이코노미스트> 10월18일자에 따르면, 프랑스가 지난 6월에 주창한 은행연합의 창설에 유럽의 지도자들이 독일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고 평했다. 은행연합은 자본력이 취약한 은행들과 국채 간의 악순환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따라서 유럽중앙은행은 유로존 내 6천개 은행 모두를 감독하는 권한을 갖게 된다.

위기 타개할 돌파구 될지는 좀 더 두고봐야

정상회담에서 은행연합 설립이 합의되었지만, 은행 감독에 관련된 세부 사항들은 재무장관들이 논의해서 마련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유럽중앙은행의 감독 권한에 대한 내용에서 유로존에 소속되지 않은 회원국과의 잠재적 논쟁이 잠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는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나라를 위해서 안전장치로서의 역할을 바라고 있는 반면, 독일은 개혁을 진행하는 국가들에 대해서 더 많은 자금을 제공하는, 자유 재량에 따른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고 전한다.

한편, <슈피겔> 10월23일자에 따르면, 독일의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유럽 재정 위기가 소강 국면에 들어간 듯한 것은 환상에 불과하며, 최악은 아직 지나가지 않았다”라고 올랑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경고했다.

최근 유럽 주요 증시의 종합주가지수가 올랐다. 국가 채권에 대한 이자율은 낮추어졌으며, 유로도 달러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투자자들의 위축된 투자 심리도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쇼이블레 장관은 외적 측면은 속기 쉬운 것이라고 말했다. 최악의 위기가 지나갔다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유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개혁 노력이 배가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유럽중앙은행의 집행이사회 멤버인 이브 머쉬 또한 쇼이블레 장관의 경고에 동감하면서, “환자의 출혈은 멈췄지만, 아직 회복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같은 비관적 견해는 유럽집행이사회 부위원장인 올리렌의 일주일 전 논평과 상반되는 것이다. 렌 부위원장은 “최악의 위기는 지났으며, 유로존을 떠날 회원국이 나올 가능성은 없다”라고 낙관한 바 있다.

유로존의 상태에 대해서 이처럼 상반된 견해가 나오는 것은 유럽이 점점 태풍의 눈처럼 비친다는 뜻이라고 <슈피겔>은 논평하고 있다. 대출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 유로존의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의 채권을 무제한 매입하겠다는 최근 유럽중앙은행의 공약은 금융 시장의 압박을 덜어주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는 필요한 개혁을 이행하는 데 여전히 느리고, 추가 구제금융이 더 들어갈 상황이다.

이번 EU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된 은행연합은 실제로 프랑스의 이니셔티브에 따른 것이다. 왜냐하면 유로존이 부분적으로나마 붕괴한다면 프랑스가 가장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은행 연합의 설립을 이끌어낸 EU 정상회담에서는 프랑스의 정치 주도권이 독일의 경제 주도권을 압도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그것 이외에 실제로 유로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았다고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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