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회장의 훈수 받고 공부는 끝이 없음을 배웠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11.0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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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병철 요리사’ 이병환씨

ⓒ 시사저널 최준필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30여 년 전 당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일식 요리사로 하여금 생선 초밥 한 점에 있는 밥알을 세게 했다. 그 일식 요리사가 이병환 한국외식업중앙회 부회장(62)이다.

“당시 나는 호텔신라의 음식을 책임지는 조리부장이었다. 이회장은 틈만 나면 나를 일본의 한 초밥집에 견학을 보냈다. 한 초밥집에 다섯 번이나 가서 공부한 적도 있다. 그 식당은 60년 전통을 가지고 있었지만 몇 평 되지 않는 초라한 구멍가게였다. 호텔신라의 조리부장인 내가 그곳에서, 그것도 몇 번이나 들러 배울 것이 뭐가 있었겠는가.”

그날은 삼성그룹 중역들이 신라호텔에 모여 점심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 요리사는 ‘오늘이야말로 일본에서 배워온 실력을 토대로 제대로 된 초밥을 선보이겠다’고 벼르며 초밥을 만들었다. 접시에 먹음직스럽게 놓인 초밥을 음미하던 이회장이 요리사에게, 일본에서 초밥에 대해 많이 배웠느냐고 물었다. 요리사는 밥 무게와 생선 무게를 15g으로 같게 하고, 온도는 어떻게 해야 제 맛이 난다는 식으로 줄줄이 설명했다. 이회장은 초밥 한 점에 밥알이 몇 알이냐고 고쳐 물어왔다. 그 질문에 요리사는 숨이 가빠지고 땀이 배어나왔다.

“모른다고 솔직하게 대답하고 그 자리에서 초밥을 물에 풀어헤치고 밥알을 한 톨 한 톨 셌다. 그리고 3백20알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회장은 ‘낮에는 밥으로 먹기 때문에 초밥 한 점에 3백20알이 있다. 그러나 저녁에는 술 안주로 먹기 좋게 2백80알 정도가 있어야 정석이다’라고 훈수했다. 한마디로 조금 배웠다고 까불지 말라는 소리였다. 나는 그 이전부터 일본 도쿄 오쿠라호텔의 일식당을 비롯해 가락국숫집, 메밀국숫집, 복집에서 당대 최고의 요리사로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비법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30대의 젊은 나이에 호텔신라에서 만드는 모든 음식을 책임지는 조리부장에 올랐다. 당시 자만했던 나는 이회장의 훈수를 받고 공부는 평생 해도 끝이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가 처음 음식과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조리사협회장까지 지낸 큰아버지 덕분이다. 1951년 경북 영덕군에서 태어난 이부회장은 중학교를 졸업한 뒤 상경해 큰아버지가 운영하던 식당에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 갓 스무 살을 넘겼을 때, 그는 팔레스호텔, 퍼시픽호텔의 일본 요리사들로부터 정통 일식요리를 전수받았다. 호텔신라가 서울 장충동에 문을 열 무렵인 1977년 요리사로 입사해서 35세에 사상 최연소 조리부 총괄부장으로 승진했다.

그곳에서 근무한 13년 동안 그는 이회장과 개인적인 대화나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이부회장은 인터뷰 중간에 잠시 눈을 지그시 감고 그 당시를 떠올렸다. 그리고 입을 뗐다.

“세계 입맛 잡으려면 한국 음식 개선해야”

“눈이 많이 오던 날이었다. 점심 무렵 호텔신라 일식당을 찾은 이회장은 여느 때처럼 탁자 대신 스시 바에 앉았다. 식사가 나왔는데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같이 온 중역들도 눈치를 보느라 식사를 하지 못할 정도로 분위기가 무거웠다. 알고 보니 삼성이 개발한 항공기 엔진과 관련한 신문 기사 때문이었다. 대한항공 얘기는 대문짝만 하게 실렸는데, 정작 엔진을 개발한 삼성 얘기는 쥐꼬리만큼 나왔다. 안 되겠다 싶어서 이회장에게 ‘오늘은 점심값을 두 배로 받아야겠다’라고 말하고 ‘창문을 통해 하얀 눈에 덮인 풍경을 볼 수 있으니 풍경값을 더할 수밖에 없다’라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제야 이회장은 미소를 띠며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식사 후 이회장은 옆 회의실에서 중역들에게 위기 탈출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금 전에 요리사가 나의 위기를 탈출시켜주었듯이 삼성도 의기소침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밖에도 그는 이회장으로부터 다양한 방법을 통해 가르침을 받았다. 일본이 만드는 음식 맛을 우리라고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이회장의 말에 초밥, 메밀국수, 튀김에 대해 연구했다. 또 기분이 좋은 날에는 초밥 여덟 점, 기분이 언짢은 날은 여섯 점만, 그것도 천천히 음미하는 미식가 이회장의 입맛을 맞추다 보니 음식에 공을 들이는 습관이 몸에 뱄다. 일본에서 배운 것들과 이회장의 혜안을 종합한 그는 한국의 음식 문화를 바꿔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국내 일식집에서 아무나 복 요리를 하던 당시 복을 잘못 먹고 죽는 사람이 많았다. 일본에서는 복 요리 면허증을 가진 사람만이 복 요리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직업관리공단에 제안해서 한국에도 복 요리 면허증 제도를 만들자고 했다. 또 당시는 생선을 비료 부대에 대충 담아 땅에 질질 끌어 납품하던 때였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납품업체들에게 식자재를 스티로폼 상자에 담아 제공하도록 했다.”

이회장이 세상을 떠난 1년 후인 1989년 그는 호텔신라 조리부장직을 사임하고 현재까지 서울에서 일식당을 경영하고 있다. 또 한국외식업중앙회 부회장으로 요식업계에 쓴소리를 토해내기도 한다.

“대충 만들어낸 음식에 바가지 요금을 붙여 팔면 절대로 발전할 수 없다. 업소가 위생적이어야 하고, 음식 재료를 정직하게 사용해야 한다. 또 양도 적당하게 내어 음식 쓰레기를 줄이고, 가격도 적정하게 매겨야 한다. 이런 나라가 현재의 선진국들이다.”

몇 년 전에는 음식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바꾼 공로를 인정받아 이명박 대통령이 주는 표창장을 받았다. 그는 한국 음식을 세계인이 즐길 수 있도록 전통 음식을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요식업이 사양 산업이라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일본은 초밥으로, 인도는 카레로 세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한국은 어떤가. 일부에서 떡볶이를 내세우는데, 그것은 아닌 것 같다. 한국 음식은 궁중 요리, 비빔밥, 탕류, 갈비(고기류)이다. 이것을 서양인들이 먹기 좋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갈비를 스테이크처럼 큼지막하게 만들어 철판에 구워내면 그들이 포크와 나이프로 먹을 수 있다. 수천만 원짜리 옷을 입은 서양 상류층들이 숯불 냄새 풍기는 음식을 먹을 것인가 생각해보라. 이런 식으로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일본은 우리 김치를 서양인 입맛에 맞게 만들어 세계에 팔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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