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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표창원의 사건추적] '살인자' 꿈꾼 소년의 잔혹한 범행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다 잠자던 동생 도끼로 내리쳐

표창원│경찰대 교수 ㅣ | 승인 2012.11.06(Tue) 13: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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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동생 살해 사건 피의자 양 아무개군이 2001년 3월9일 범행 현장에서 범행 당시를 재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001년 3월5일 오전 7시30분, 광주에서 아내와 야식집을 운영하던 양 아무개씨(45)는 밤샘 영업으로 몸이 파김치가 되었다. 양씨 부부는 두 아들이 자고 있을 아파트로 귀가했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늘 귀여움을 독차지해왔던 막내아들(11세, 초등학교 4학년)이 안방 침대에 피를 잔뜩 흘린 채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씨는 피가 뿜어져 나온 목 부위를 수건으로 감싼 채 아들을 안고 인근 병원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막내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서 채 헤어나지도 못했지만 양씨 부부는 눈에 띄지 않는 큰아들(14세, 중학교 3학년) 걱정을 해야 했다.

막내를 살해한 범인이 큰아들마저 해치거나 납치해 갔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고를 받고 초동 수사에 돌입한 형사들이 파악한 사실은 양씨 부부로서는 도저히 믿지 못할 내용이었다.

사건 전부터 살인 저지를 것이라 예고

특히, 경찰이 양군의 컴퓨터 사용 흔적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양군이 ‘좀비’(zombie)라는 명칭으로 미니 홈페이지를 개설해서 운영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양군은 자신의 홈페이지 자기 소개란에 ‘군대 갔다 와서 살인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또 좋아하는 것은 ‘파충류’ ‘살육’ ‘쾌락’이고, 싫어하는 것은 ‘정의’ ‘법’ ‘인간들’이라고 적어두고 있었다.

특히, 사건이 발생하기 이틀 전인 3일에는 ‘가족과 정이 들면 안 된다. 살인이라는 것을 꼭 해보고 싶다. 평범함을 벗어나고 싶다. 할인점에서 도끼를 구입해 날을 갈아 침대 밑에 숨겨두었다’라는 글을 일기 형식으로 올려두었으며, 사건 전날인 4일 오후에는 살인 계획의 결행을 알리는 듯한 내용의 이메일을 자신의 친구들에게 발송했다.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는 청소년. ⓒ 연합뉴스
“원래는 40~50명 살해가 목표였다”

이미 이전부터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양군은 학교에서도 신상 기록의 장래 희망 란에 ‘살인업자’라고 적어 담임선생님이 양군 부모에게 정신과 치료를 제안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양군은 이미 주변 사람에게는 ‘끔찍한 일을 저지를 우려가 있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아이’라는 평가와 우려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양군을 아는 학교 선생님들과 주변 친구들은 양군이 일본에서 제작한 살과 피가 튀는 잔혹한 컴퓨터 게임인 <이스이터널> <영웅전설>과 국내에서 제작한 네트워크 게임인
<조선협객전>, 엽기 사이트인 ‘바이오해저드’ ‘귀신사랑’ 등에 지나치게 심취해 있었다고 전했다. 늘 게임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게임 아이템 구입에만 열을 올렸으며 가상과 현실 간의 구별이 모호해서 현실 감각을 상실한 ‘게임 중독’ ‘인터넷 중독’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이러한 사실들이 알려지자 양군이 마치 ‘시한폭탄’ 내지 ‘살인 기계’의 상태에 있는 매우 위험한 존재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더욱이 동생을 살해한 범행 도구인 도끼마저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아 양군이 제2, 제3의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경찰 수사진과 주변 이웃들에게 번져나갔다.

경찰에서는 전 인력을 동원해 역과 터미널, PC방, 골목길, 학교 주변 등 양군이 갈 만한 장소를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인근 시·도는 물론 전국 경찰에 사건 개요와 양군에 대한 수배 내용을 전파하면서 공조를 요청했다.

양군의 채팅 친구가 있다는 대구에는 직접 수사대를 급파했다. 결국 그날 밤 9시, 사건 발생 13시간 반 만에 경찰은 한 유흥가 골목을 서성거리는 양군을 검거할 수 있었다.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순순히 경찰의 체포에 응한 양군은 경찰 조사에서 살인은 매우 오래전부터 계획한 것이었고, 원래는 40명 내지 50명을 살해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해 아쉽다고 차분하게 진술하는 모습은 담당 형사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양군이 밝힌 당일 행적은 이렇다.

자신이 계획한 연쇄 살인의 제1차 대상이었던 동생이 자고 있는 사이 미리 준비한 날 선 도끼로 동생의 목을 내리쳤고, 피를 흘리며 숨져가는 동생에게 “편안히 잘 자라”라고 인사한 뒤 피가 튄 옷을 갈아입고 도끼를 가방에 넣고 나서 그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자기를 아는 사람이 없는 다른 곳으로 가서 마음 놓고 살인을 하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에서 만난 친구에게 동생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전북 고창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에서 내린 양군은 걸어가다가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얻어탔고, 오토바이를 태워준 40대 아저씨가 잠시 길에서 소변을 보는 사이 뒤에서 도끼로 내리쳐 살해할 마음을 먹었으나 마침 다른 사람이 지나가는 바람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후 마땅한 살해 대상을 찾지 못한 양군은 다시 버스를 타고 광주로 돌아와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인적이 없는 골목길에 있는 한 PC방 건물 앞에서 등을 보이고 서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는 도끼를 꺼내들고 다가갔다. 목표까지 몇 발짝 남겨둔 곳에서 갑자기 앞에 세워둔 큰 거울에 도끼를 든 자신의 모습이 비쳤고 순간 겁이 나면서 살해 의도가 사라져버렸다. 이후 주변을 배회하던 양군은 자신을 찾기 위해 일대를 수색하던 형사에게 발견되어 검거되었다.

‘게임 중독’ 탓으로만 돌릴 수 없어

양군의 범행은 곧 ‘청소년의 게임 중독’과 그 폐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폭력적·선정적인 내용을 담은 게임류의 등급 심의가 까다로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양군의 범행을 ‘게임 중독’ 탓만으로 돌리는 것은 무책임한 편의주의적 해석이 될 수 있으며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눈을 감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양군의 경우 게임 중독과 엽기 코드 심취에 이르게 된 성장 과정과 가정 환경상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으며 여러 차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성격과 심리, 행동상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었음이 감지되었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한 가정과 학교, 주변 등 사회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양군은 소년법 적용을 받아 재판 과정과 결과가 비공개되었다. 현재는 어딘가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린 살인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잉태되는가

2005년 한 해 동안 18세 이하 어린이가 저지른 살인 사건은 미국에서 9백44건(FBI Uniform Crime Reports, 2006년), 우리나라에서 20건(대검찰청 범죄 분석, 2006년)이었다. 각각 전체 살인의 5.5%와 1%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다만, 미국은 12세 이하 ‘어린아이 살인범’이 11명이나 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14세 미만 살인자는 없고, 14세 한 명, 15세 두 명으로 아직은 상대적으로 나은 상황이다.

우리 사회의 ‘어린 살인자’ 문제를 들여다보자면, ‘입시’ 이외에는 교육 목적이 없다고 믿고 있는 듯한 교육 당국과 학교, 먹이고 재우고 돈 벌어주는 것이 부모의 가장 중요한 도리라고 믿고 있는 사회 풍토 속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방치된 아이들은 끓어오르는 욕구와 애정에 대한 갈구를 해소하지 못한 채 사이버 공간과 PC방, 게임방, 술집과 유해 화학물질이 제공하는 환상과 환각의 세계에 빠져든다.

대화가 단절되고 건전한 놀이 문화와 자연스러운 인성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아이들 중에 특히 성격적 문제가 더 심각하고 부정적 자극에 자주 노출된 아이들이 살인이라는 극단적 출구를 선택할 때, 그 주변에 있는 누구라도 아무런 준비와 예고 없이, 전혀 상관도 없이 어처구니없는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다만, 널리 알려진 잘못된 속설과 달리, ‘빈곤’이나 ‘결손 가정’ 등 가정의 경제적 혹은 외형적 모습이 ‘어린 살인범’을 만드는 원인은 아니다. 2005년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18세 이하 ‘어린이 살인범’(20명)의 40%(8명)는 ‘중류 이상’ 가정 출신이고, 70%(14명)는 친부모와 살고 있었다. 어린이 살인범 중 부모가 없는 고아는 한 명에 불과했다.

가정의 절대적인 경제 수준이나 부모 모두와 함께 사느냐, 친부모냐 여부는 어린이가 살인자가 되는지 여부에 대한 결정 요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이 아이에 대해 얼마나 사랑과 관심을 쏟고, 진심 어린 대화를 하며, 규칙 준수와 타인에 대한 배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체득시켜주느냐, 긍정적인 태도와 희망을 보여주고 실천하느냐, 아니면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학대 혹은 방치하느냐가 더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CCTV 보급 확산 계기 만든, 영국 10대들의 3세 유아 살인 사건 

1993년 2월12일, 영국 북부에 위치한 대도시 리버풀의 한 대형 쇼핑몰에서 엄마와 함께 나들이 나왔던 세 살배기 어린이 제임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혼잡한 정육점에서 고기와 반찬거리를 사느라 잠시 아들의 손을 놓고 있던 엄마는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제임스!” “제임스!” 미친 사람처럼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주위를 다 훑었지만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도,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곧 쇼핑몰 보안요원들이 달려왔고, 무전기를 통해 쇼핑몰 내부 전역에 대한 수색이 이루어졌지만 어린 제임스는 발견되지 않았다.

미아보호소에도 제임스는 없었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쇼핑몰에 설치된 CCTV 카메라가 촬영한 화면들을 녹화한 테이프부터 제출받아 분석에 들어갔다. 혼잡한 대형 쇼핑몰 천장에 설치된 CCTV가 촬영한 화면들 속에서 경찰과 제임스의 엄마는 자그마한 제임스의 뒷모습을 찾아냈다.

혼자 길을 잃고 엄마를 찾아 헤매거나 아는 어른의 손에 이끌려갔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CCTV 화면 속의 어린 제임스는 10대로 보이는 남자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자연스럽게 쇼핑몰 밖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가정 폭력과 학대에 장기간 노출되었던 용의자들

뒷모습만 보인, 제임스를 데려간 소년의 모습을 찾기 위해 다시 CCTV 화면들을 검색하던 경찰은 제임스가 실종되었던 의류 매장 부근에 설치된 CCTV에 촬영된 화면 속에서 결국 그 소년과 같은 복장을 한 소년의 모습을 찾아냈다. 그 소년은 친구로 보이는 다른 아이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상의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건물 천장에 달린 해상도 낮은 CCTV에 찍힌 모습이다 보니 소년들의 정확한 키나 연령은 추정하기 힘들었다. 다시 제임스의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이 찍힌 CCTV 화면과 비교하던 경찰은 그 화면 속에서 전혀 관계없는 행인처럼 보이는, 몇 발짝 앞서가던 검은 옷의 소년이 제임스를 데려간 소년과 친구 내지 동행 인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곧 흐릿한 CCTV 캡쳐 화면 두 장은 리버풀 지역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공개되었고, 비슷한 소년을 알고 있거나 보았다는 제보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음 날에는 BBC를 포함한 전국의 텔레비전을 통해 제임스의 실종 소식이 두 장의 CCTV 화면과 함께 보도되었다. 어른이 아닌 소년들에 의해 이끌려갔기 때문에 아직 살아 있고, 곧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제임스의 가족과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공유되었다.

실종 이틀 뒤, 연인들이 만나 사랑을 고백하는 밸런타인데이인 2월14일 일요일, 이런 국민적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실종 장소인 쇼핑몰에서 4km 떨어진 후미진 기찻길 옆에서 무참하게 공격당한 채 숨져 있는 제임스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제임스의 사인은 외부 충격에 의한 뇌손상이었다. 시체검안과 부검 소견, 사체 발견 장소 주변 유류물 등을 종합한 결과 범인(들)은 제임스를 시체가 발견된 기찻길로 데려온 뒤 인근에 있던 버려진 페인트통을 주어들고는 제임스의 얼굴에 파란색 페인트를 쏟아붓고 온몸을 벽돌과 쇠파이프로 여러 차례 때려 숨지게 한 뒤 기찻길 위에 시신을 올려놓고 마치 열차에 친 사고인 것처럼 위장하려 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시체는 계획대로 열차에 치었으나 부검 결과 열차에 치이기 전에 이미 사망한 사실이 밝혀졌다. 범행의 잔혹함과 치밀함은 곧 제임스를 데려간 범인이 10대 후반이거나, 아니면 소년의 손에 이끌려간 뒤 길에 방치된 제임스를 어른이 데려가 살해한 것이라는 세간의 추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제임스의 시체가 발견된 지 4일이 지난 목요일 아침, 리버풀 지역을 관할하는 머시사이드 경찰청 형사과에 연행되어 온 용의자들은 놀랍게도 막 형사상 미성년자를 벗어난 열 살 동갑내기 친구 존 베나블즈와 로버트 톰슨이었다. 사고 현장 인근 거주 소년 중 결석자 중심으로 수사를 하던 경찰이 CCTV 화면과 유사한 체격과 복장을 지닌 두 소년을 찾아냈고, 이들에 대한 가택 수색 결과 숨진 제임스의 시체에서 발견된 파란색 페인트 흔적 및 제임스 혈액과 DNA가 일치하는 혈흔을 발견한 것이다. 

영국 언론 규정에 의해, 어린 용의자들의 이름은 확정 판결 전까지 공개할 수 없었으나 사건의 충격과 파장이 워낙 컸기 때문에 두 어린 용의자의 이름은 어디가 먼저랄 것 없이 각 매체를 통해 공개되었고, 흔히 ‘타블로이드’로 불리는 영국의 대중지들은 이 두 열 살 소년들을 서슴없이 ‘악마’(devil)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악마성’ 못지않게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 영국 사회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 경찰의 수사 내용 역시 충격적이었다.

용의자 존 베나블즈와 로버트 톰슨은 학교에서 장기 무단 결석 상태였음에도 학교나 가족 그 누구도 이들을 보호하거나 선도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었고, 둘 모두 가정 폭력과 학대에 장기간 노출된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사건 당일 오전에도 베나블즈와 톰슨은 어린아이를 유괴하기로 마음먹고 쇼핑몰에 가서 두 살짜리 유아의 손을 잡아끌고 나오다 뒤늦게 아이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 엄마에게 들키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어린 제임스가 용의자의 손에 이끌려 쇼핑몰을 나온 뒤 살해 장소인 기찻길로 갈 때까지 용의자들에 의해 머리를 얻어맞고, 발로 차이는 모습을 무려 38명의 어른들이 목격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했다는 사실도 충격을 주었다.

대중지 ‘선(SUN)’ 등 일부에서는 베나블즈와 톰슨이 결석하고 놀던 시간에 당시 유행하던 ‘쳐키 시리즈’ 등 폭력적 비디오물을 많이 본 것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영국 법에 따라 10세 피고인 베나블즈와 톰슨은 성인 법정에서 성인 범죄자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재판을 받았고, 두 어린 악마를 극형에 처하라는 성난 여론에 밀린 변호사는 아무런 증인도 신청하지 않았다.

더구나 재판이 열린 시점은 서양에서 악마와 귀신들의 날로 정한 ‘할로윈’ 즈음이었다. 배심원단은 두 소년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형량은 최소 8년 동안은 가석방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무기징역’이었다.

분노하는 여론에 밀려 가석방 기한까지 늘려

이후 가석방 가능 기간이 너무 짧다는 여론이 빗발쳤고, 일부 신문은 30만명의 서명을 받아 형량 상향을 요구하는 청원을 정부에 제출했다. 정부에서는 ‘공익의 대변자’ 자격으로 항소를 제기했고, 가석방 불가능 기한은 10년으로 늘어났다.

당시 보수당 존 메이저 총리와 마이클 하워드 내무장관은 소년범 무기징역의 가석방 기한을 최저 15년으로 정하는 규칙을 발표했지만, 대법원에 의해 무효 판정을 받게 된다. 유럽인권법원은 당시의 재판이 지나친 여론의 영향을 받았으며, 어린이 피고인의 권리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아 ‘불공정한 재판’이었다며 두 어린이 살인범의 조기 석방을 요청했고, 영국 정부는 8년이 지난 2001년 베나블즈와 톰슨을 가석방함과 동시에 이들에게 새로운 이름과 신분을 부여하면서 영국 언론에 이들의 새로운 이름과 신원 공개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두 소년의 부모들도 거듭되는 살해 위협에 시달리다 정부로부터 새로운 신분을 부여받고 아무도 몰래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지금도 영국 사회에는 제임스의 기일이 되면 시신이 발견된 기찻길에 수십만 송이의 꽃이 쌓이는 등 피살된 어린 천사 ‘제임스 벌저’를 추모하는 열기가 식지 않는 한편, 석방되어 세상에 나온 두 악마 ‘베나블즈’와 ‘톰슨’의 소재와 새 신분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나쁜 씨’를 타고난 악마일까, 아니면 가정과 주변이 오염시킨 ‘손상된 영혼’일까? 한편, 이 사건은 영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범죄 예방용 CCTV 설치를 급속하게 확산시킨 계기가 된 대표적 사건으로 꼽힌다.

 


 

Series) 표창원 교수의 사건 추적


1. 악마가 된 외톨이의 빗나간 분노의 돌진
- 1991년 10월 여의도 광장 차량 폭주 사건

2. 미군에 희생된 꽃다운 청춘의 절규
- 1992년 10월 동두천 주한 미군 범죄 희생자 윤금이씨 사건

3. 남자친구의 환심 사려 끔찍한 범행
- 1990년 유치원생 곽재은양 유괴·살해 사건

4. 만삭의 여인이 벌인 잔혹한 범죄
- 1997년 8월 박초롱초롱빛나리양 유괴 사건

5. 자녀 학대가 부른 끔찍한 패륜 범죄
- 2000년 5월 과천 토막 살인 사건

6. 고희 되도록 못 버린 ‘그놈의 도벽’
- 권력자 울리고 서민 웃겼던 대도 조세형 사건

7. 악마로 변한 살인자의 두 얼굴
- 1998년 부천 비디오 가게 살인 사건

8. '살인자' 꿈꾼 소년의 잔혹한 범행
-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다 잠자던 동생 도끼로 내리쳐

9. "나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
- 아홉 살 때 성폭행당한 여성이 20년 후 가해자 살해 ‘아동 성폭력’ 심각성 알린 김부남 사건

10. '짐승' 의붓아버지 죽인 비운의 여인
- '성폭력 특별법' 탄생시킨 김보은·김진관 사건

11. "유전 무죄, 무전 유죄" 탈주범의 절규
- 1988년 탈주범 지강헌 일당의 인질범 사건
 

12. 법대 여대생 꿈 짓밟은 판사 장모의 편집증
- 미행과 감시, 위협하다 킬러 고용해 살해

13. 기막힌 살인 누명 쓴 '억울한 3인조'
- 경찰, 가상 사건 꾸며내 범인으로 몰아, 2001년 속초 콘도 살인 암매장 사건

14. 무고한 인명 앗아간 '지옥 지하철'
- 1백92명 사망, 1백48명 부상한 최악의 사건,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

15. 탐욕스런 선수들의 썩은 스포츠 정신
- 조폭과 승부 브로커들, 금전 동원해 선수 유혹한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

16. 무참하게 행복 짓밟힌 한 가족
- "웃음소리에 화가 나 살인했다"...2010년 서울 신정동 묻지마 옥탑방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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