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없고 정치만 있다
  • 안동현 | 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 승인 2012.11.1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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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이 오바마의 재선으로 끝났다. 오바마와 롬니의 경제 정책은 세제·일자리 창출·무역 정책 등 모든 세부 분야에서 교집합을 찾기 힘들 정도로 대척점에 섰다. 오바마가 부자 감세 폐지, 정부의 시장 개입 확대, 큰 정부, 녹색 에너지 육성, 자유 무역 확대 등을 내세운 데 반해 롬니는 감세, 자유로운 기업 환경, 작은 정부, 화석 에너지 개발, 불공정 무역 대상국 견제 등 모든 면에서 차별화가 명확했다. 유색 인종의 압도적 지지와 선거 막판의 경제 지표 개선 및 태풍 샌디의 영향이 컸지만, 기본적으로 유권자가 오바마의 경제 정책에 더 많은 점수를 준 것이 승리의 원동력이라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이제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우리 대선의 경우 각 후보의 경제 정책 기조가 경제 민주화로 통일되다 보니 차별화가 명확치 않고 선명성 경쟁으로 변질되었다. 그런데 각 캠프를 주도하고 있는 정책 수장의 경제 철학을 비교해보면 상당한 거리가 있다. 세 후보의 경제 정책 수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종인 전 의원, 장하성 교수 그리고 이정우 교수 등을 보면 그렇다.

김종인 위원장의 경우 노태우 정권 시절 경제 민주화 조항을 헌법에 삽입한 원조 경제 민주화 주창자이다. 기본적인 경제 철학은 유럽에서 공부한 영향으로 독일의 사민 자본주의에 속하며 특히 재벌 개혁을 그 중심에 두고 있는데, 최근 언급한 대기업집단법이나 기업 총수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의무화 등을 보면 가장 좌클릭한 측면이 있다.

장하성 교수의 경우는 전공이 재무 쪽으로 세부 전공은 증권 거래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미시 구조였으나 참여연대에 몸담은 후 기업 지배구조 쪽으로 전환했다. 초기에는 삼성을 주 타깃으로 소액주주 운동을 주도했으며, 최근에는 라자드와 일명 ‘장하성 펀드’로 불리는 지배구조 펀드를 조성해 펀드 자문업에 진출했다. 소액주주 운동이나 지배구조론은 기본적으로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 철학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유럽식 이해자 관계주의와 가장 대칭점에 서 있으며 신자유주의의 첨병으로 볼 수 있다. 이정우 교수는 노무현 정권 초기 정책실장으로, 한 축은 출자총액제 강화 등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한 재벌 개혁을 추구했고 다른 축은 종부세 등을 통해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데에 초점을 두어 정책을 펼쳤다. 기본 경제 철학은 헨리 조지의 토지에 대한 철학을 계승한 측면에서 조지스트라 부를 수 있고, 북유럽식 사민주의가 혼합된 형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 세 사람이 지금까지 주창해온 정책을 인수 분해해 보면 경제 민주화 및 재벌 개혁이라는 공통 요인이 나오지만 그 배후에 있는 경제에 대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보면 가장 좌측이 이정우 교수, 가장 우측이 장하성 교수이다. 그리고 김종인 위원장의 경우 중간 정도에 배치할 수 있지만, 그 거리는 상당한 편이다. 이렇게 화풍이 서로 다른 세 사람이 비슷한 구도의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경제에 민주화가 필요하기는 필요한가 보다. 그런데 세 사람 모두 보이지 않는 것인지, 보려 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또 다른 우리 경제의 주요 화두인 잠재 성장률 하락 방지와 경제 민주화를 어떻게 연결시킬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없다는 점을 보면 역시 정치는 경제 철학에 앞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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