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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삼성전자, 그래도 아슬아슬

4개 사업 전선에서 힘든 전투…문제는 ‘파괴적 혁신’

이철현 기자 ㅣ lee@sisapress.com | 승인 2012.11.13(Tue) 13: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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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지금 정보기술(IT)업계의 패자는 누가 뭐래도 삼성전자이다. 지난해 이미 세계 최대 IT업체(매출 기준)에 등극했다. 4개 사업 부문마다 세계 시장 1위에도 올라 있다. 실적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올해 매출은 2백3조원이 넘고 영업이익은 30조원에 육박한다. 안성호 한화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2013년 매출 2백18조원, 영업이익 33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했다. 그럼에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최지성 미래전략실장,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최고 경영진은 ‘지금이 위기이다’라고 강조한다. 임직원에게 위기의식을 불어넣기 위해 일부러 엄살을 떠는 면도 없지 않지만, 지금이 자칫 발 하나 잘못 디디면 실족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은 사실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1월1일 삼성전자 창립 43주년 기념일을 맞아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급격한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다. 현재의 성과에 안주하고 미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한순간에 몰락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IT업계 판도는 한 치 앞을 예상하기 힘들다. 순식간에 패자가 나타나 군웅할거를 종식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새 강자에 의해 시장에서 패퇴한다. 노키아는 지난 1990년대 말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 40%를 차지하면서 군림했으나 아이폰 하나 내세운 애플에 밀려 순식간에 몰락했다. 일본 샤프는 ‘액정표시장치(LCD) 원조’라고 일컬어지며 세계 디스플레이 산업을 호령했으나 지난해 순손실 3천7백61억 엔에 이어 올해도 4천5백억 엔이 넘는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전자 기기 시장을 장악하던 파나소닉과 소니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누적 적자 탓에 지속 가능성까지 의심받고 있다. 하나같이 사업의 변곡점마다 기술이나 시장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파괴적 혁신에 실패한 것이 몰락한 원인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지금 오르막과 내리막이 겹치는 꼭짓점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4개 사업 영역마다 변곡점에 닿아 있는 탓이다. 전선이 빠르게 개편되고 경쟁자의 면모와 전투력도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금 사업 영역마다 세계 최강의 적과 맞붙고 있다. 스마트폰 부문에서는 ‘파괴적 혁신의 대명사’ 애플과 시장뿐만 아니라 법정에서까지 ‘볼썽사납게’ 드잡이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 비메모리 반도체에서는 미국 인텔, 반도체 위탁 생산(파운드리) 시장에서는 타이완 TSMC, TV와 소비자 가전 부문에서는 LG전자,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는 LG디스플레이나 일본 샤프와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필요하면 ‘누가 먼저 죽어나가는지 보자’는 식의 치킨게임도 서슴지 않는다.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는 전선마다 삼성전자는 경쟁 업체들을 각개격파하고 있다. 상당수 IT업계 전문가는 삼성전자가 보이는 괴력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IT업계 패자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송종호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2012년 삼성전자에는 1999년의 노키아와 1980년의 인텔이 공존한다”라고 갈파했다. 핀란드 업체 노키아는 1999년 모토로라를 제치고 전 세계 휴대전화 1위 업체에 올랐다. 노키아는 슬라이드폰과 안테나 내장 모델을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시장 판도를 바꾼 혁신 제품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경쟁 업체들을 백야의 핀란드 하늘만큼 파랗게 질리게 했다. 노키아가 당시 채택한 시장 접근 전략은 전 세계 개별 시장에 맞는 다양한 제품군을 갖추는 것이었다.

   
갤럭시S3 누적 판매 3천만대 돌파 기념 촬영(아래) ⓒ삼성전자 제공 ,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 라인(왼쪽)ⓒ 삼성전자 제공 , 왼쪽 아래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EPA 연합.
고객·제품 다변화 전략으로 애플에 대응

삼성전자는 노키아와 비슷한 제품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애플이 1~2년 만에 아이폰 시리즈를 내놓는 것과 달리 삼성전자는 1~2분기마다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애플이 지난 9월 1년 만에 출시한 아이폰5에 대항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갤럭시S3와 갤럭시노트2를 잇달아 내놓았다. 갤럭시S3는 4.8인치 화면에 두뇌가 4개인 쿼드코어 중앙연산처리장치(CPU)를 장착해 4인치 화면에 두뇌가 두 개에 불과한 듀얼코어를 장착한 아이폰5보다 사양 면에서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이폰5가 출시되자 삼성전자는 곧바로 화면 5.55인치 갤럭시노트2를 내놓아 팻블릿의(phone과 tablet의 합성어로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중간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내년에는 갤럭시S4가 출시된다. 다품종 전략 덕에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출하량에서 애플을 압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노키아를 제치고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 1위에 올랐다. 스마트폰 부문에서는 올해 시장 점유율 32%를 차지해 애플(21%)을 제치고 왕좌에 등극했다.

   
인텔은 컴퓨터 중앙연산처리장치(CPU) 부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대 강자이다. 인텔은 1974년 8080프로세서라는 CPU를 개발했다. 당시 IBM은 컴퓨터 CPU를 인텔로부터 공급받았다. IBM이 ‘CPU는 핵심 역량이 아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CPU에 해당하는 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에 참여한 계기도 비슷하다. 삼성전자는 1996년 미국 디지털이큅먼트와 손잡고 64비트 알파칩 개발에 나섰다. 당시 인텔이 디지털이큅먼트를 합병하면서 알파칩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 삼성전자는 칩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2007년 아이폰 AP를 생산할 수 있었다. 인텔은 당시 AP 시장을 얕잡아보았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에서 벗어나 AP라는 비메모리 반도체로 사업을 확대했다. AP 개발이라는 전략적 선택은 주효했다. 애플은 낸드플래시 같은 메모리는 다른 업체로 공급선을 바꾸어도 AP만큼은 아직까지 삼성전자에게 전량 의존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오자 애플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애플은 전 세계 법정에서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전 방위적으로 벌이고 있다. 또,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 업체를 아이폰5 낸드플래시 공급선에서 배제했다. 애플은 지금 도시바, SK하이닉스, 마이크론으로부터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조달하고 있다. 애플은 전 세계 낸드플래시 메모리 수요 30%를 차지하고 있다. 모바일 D램 수요량의 30%도 애플 몫이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 모바일 D램의 60%를 생산한다. 애플이 SK하이닉스나 엘피다로부터 모바일 D램을 전량 조달한다면 삼성전자는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애플은 디스플레이 부문에서도 삼성전자를 배제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 일본디스플레이, 샤프에서 디스플레이를 공급받는 것이다. 배터리는 ATL과 산요에서 조달한다. 세계 최대 휴대전화 배터리업체인 삼성SDI는 공급선에서 배제되었다. 애플이 삼성전자에게 공급받는 것은 AP가 유일하다. 애플은 AP마저 타이완 반도체업체 TSMC에게서 조달하려 한다. TSMC는 내년 하반기부터 아이폰 시리즈 AP를 공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면 삼성전자는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KDB대우증권은 ‘애플이 삼성전자로부터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LSI를 조달하지 않을 경우 삼성전자가 입을 손해액은 5천2백억원이다’라고 평가했다. 이것은 내년 영업이익 33조원의 1.6%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고객 다변화와 제품 다변화 전략으로 애플의 ‘왕따’ 전략에 대응하고 있다. 퀄컴이나 AMD, NVIDIA 같은 업체로 고객 폭을 넓히는가 하면 올해 하반기 28나노 AP 제조 공정에 진입했다. TSMC가 삼성전자보다 빨리 28나노 공정에 들어갔다. TSMC의 28나노 공정이 생산 능력이나 효율성 측면에서 삼성전자 32나노 공정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삼성전자에게는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삼성전자는 TSMC 영토에 침입해 들어갔다. TSMC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이다. 파운드리는 패블리스(Fabless) 업체가 설계한 반도체를 생산·공급하는 사업이다. 패블리스는 제조 라인이 없고 반도체 설계만 하는 업체이다. 삼성전자는 퀄컴으로부터 AP와 베이스밴드(스마트폰에서 모델 역할을 하는 부품)를 하나에 담은 칩을 수탁해 생산해달라고 요청받았다. 이 사업을 계기로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 비중을 15%에서 30%까지 늘릴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AP에다 베이스밴드, 통신망 접속 솔루션까지 통합한 칩을 개발하고 있다.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시까지 감안하면 삼성전자는 스마트 기기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이나 솔루션을 일괄 생산하게 된다. 제품 다변화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선태 NH증권 연구원은 “시스템 LSI 시장은 과거 CPU 시장 강자인 인텔과 파운드리 1위 TSMC가 서로 다른 영역을 구축하며 사업을 벌여 별다른 경쟁 구도가 형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AP와 파운드리 사업에 동시에 진입하면서 인텔·TSMC와 경쟁 구도를 형성하게 되었다”라고 분석했다. 시스템 LSI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에서 시스템 LSI 쪽으로 핵심 역량을 이전하고 있다. 올해 2분기 미국 텍사스 오스틴 공장의 낸드플래시 생산 설비를 시스템 LSI 제조 라인으로 바꾸었다. 도시바는 낸드플래시생산 능력을 30% 줄였다. 공급량이 줄고 스마트 기기 시장이 커지면서 낸드플래시 값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D램 시장에서는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 올해 초 엘피다가 파산하자 반짝 오르는가 싶던 D램값이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다시 고꾸라졌다. 시장조사 기관 IDC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D램 시장 40.5%, 낸드플래시 시장 45.4% 장악하고 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 뉴시스
혁신 이끌 ‘전략적 선택’ 역량은 부족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삼성전자는 차별화에 힘쓰고 있다. 애플이 LCD를 기반으로 한 레티나디스플레이에 인셀 터치 패널 방식을 채택하면서 아이폰5가 얇아지고 가벼워졌다. 삼성전자는 내년부터 유기 발광 다이오드(OLED)에 기초한 ‘깨지지 않는 디스플레이 패널(UBP)’을 출시한다. 삼성전자는 UBP 생산 과정에서 유리 대신 플라스틱 기판을 사용한다. 플라스틱 기판을 채택하면 디스플레이가 깨지지 않고 얇으면서도 가볍게 만들 수 있다. 플라스틱 기판은 휘거나 말 수 있고 궁극적으로 접을 수 있는 디스플레이로 진화하는 첫 단계 기술이다. 애플이 인셀 터치 방식으로 두께와 무게를 크게 줄이며 압박해오자 삼성전자는 UBP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사업 전선에서 벌이는 개별 전투에서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하지만 IT 전쟁에서 궁극적인 승리자가 될지는 불확실하다. 삼성전자는 특정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지난 3분기 전체 영업이익에서 스마트폰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육박한다. 스마트폰 수요가 꺾이면 삼성전자의 수익성은 크게 나빠질 수 있다. 스마트폰 시장은 이미 폭발적인 성장세에서 벗어나 안정 성장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 탓에 삼성전자의 내년 영업이익 성장률은 16.7%로 올해보다 크게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선도 기업이 숙명적으로 지니고 있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혁신 기업의 딜레마>의 저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 대학 경영학과 교수는 ‘선도 기업들은 통상 존속적 혁신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고자 하나 새 성장 기업의 혁신 기술이나 파괴적 혁신에 의해 선도 위치를 잃을 수 있다’라고 갈파했다. 삼성전자는 지금 파괴적 혁신으로 이어질 전략적 선택이 결여되어 있다. 하드웨어, 부품, 소재, 장비에서 파괴적 혁신을 가능하게 할 전략적 선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기존 반도체보다 100배 빠른 그래핀 반도체를 2017년 상용화한다는 계획만이 눈에 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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