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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믹스 봉지는 과학이다”

습기 막는 ‘구멍 뚫린 비닐’부터 과속 단속 감지선까지 생활 속에 숨은 과학들

노진섭 기자 ㅣ no@sisapress.com | 승인 2012.11.20(Tue) 09: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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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저널 이종현
지난 2009년과 2010년 중국에서 의자가 폭발해 10대 두 명이 죽고 다쳤다. 질소 가스의 압력으로 의자 높이를 조절하는 부품(실린더)이 문제였다. 질소보다 값싼 가스를 사용했고, 가스를 봉인한 철판 두께가 얇았다. 가스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실린더의 얇은 철판을 찢으며 폭발한 것이다. 이 실린더는 거의 모든 의자에 붙어 있다. 체형에 맞게 의자 높이를 조절하는 단순한 부품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도 과학이 숨어 있다. 질소의 압력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핵심 기술이다. 이 기술을 보유한 회사가 세계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다. 한국의 한 회사가 이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실린더 압력이 높으면 위의 사례처럼 폭발할 수 있고, 손잡이를 작동할 때 깜짝 놀랄 정도로 의자가 갑자기 높아져서 노약자가 다칠 수 있다. 압력이 너무 낮으면 의자 높이를 잘 조절할 수 없고, 오래 사용할수록 높낮이 기능이 떨어진다. 

앉아서 뒤로 젖힐 때 편한 의자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제품도 있다. 등판을 뒤로 젖히는 힘과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려는 의자의 반동이 조화를 잘 이룰 때 사람은 편안함을 느낀다. 이 편안함을 좌우하는 부품이 의자 밑에 있는 쇠뭉치, 즉 틸트(tilt)이다. 이것은 스프링이나 생고무의 탄성을 이용한다. 탄성이 크면 뒤로 잘 젖혀지지 않고, 젖힌 상태에서도 앞으로 돌아오려는 힘이 강해서 불편하다. 탄성이 작으면 등을 잘 받혀주지 못하고 자꾸 뒤로 넘어질 듯하게 된다. 가구업체 퍼시스의 관계자는 “틸트는 계속 움직이는 부품이므로 의자를 만들 때 적어도 20만번 이상 작동하는 시험 과정을 거친다. 이 부품은 의자의 편안함을 좌우하는 핵심으로, 자동차로 치면 엔진에 해당한다. 의자를 만들고 틸트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이 부품에 맞춰 의자를 디자인할 정도로 중요하다. 이 부품을 만드는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 독일, 미국, 이탈리아 등 몇 개국에 불과하다. 사람의 체형, 몸무게, 탄성, 안락감 등을 모두 고려해서 만든 의자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적당한 과학 작품’이다”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물건에 미처 의식하지 못한 과학이 녹아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커피믹스이다. 국내 커피믹스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동서식품은 하루에 3천100만 봉지 이상을 판다. 이처럼 커피믹스가 소비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커피·크림·설탕 등 내용물을 담고 있는 봉지가 있다.

국내에 커피가 대량 유통될 즈음, 커피는 주로 유리병에 담겨 있었다. 유리병에 있는 커피를 숟가락으로 조금 퍼서 컵에 담고, 기호에 따라 설탕과 크림을 탄 후 뜨거운 물을 부어 마셨다. 야외에서도 커피를 즐기고 싶다는 요구를 반영해 탄생한 제품이 커피믹스이다. 한 커피 제조사가 커피, 크림, 설탕을 사각형 비닐 재질의 봉지에 넣은 제품을 개발했다. 그 봉지 윗부분에 점선이 있었고, 점선 끝에는 꺽쇠 모양으로 칼집이 나 있어서 쉽게 개봉할 수 있었다. 이 가공품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거의 모든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았을 정도로 내용물의 배합도 훌륭했다. 그러나 사람의 입맛은 간사해서 사람마다 내용물의 배합을 달리할 필요가 생겼다. 주로 몸에 해로운 설탕을 적게 넣으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머리카락 굵기의 구멍 뚫어 쉽게 개봉

커피회사 동서식품이 지금의 커피믹스, 즉 길쭉한 막대 모양의 제품을 2008년에 내놓았다. 커피, 크림, 설탕이 섞여 있지 않으므로 봉지 뒷부분을 잡고 설탕량을 조절할 수 있다. 이 봉지에 숨은 과학은 잘 뜯어지면서도 습기를 막아내는 기술에 있다. 일반 과자 봉지처럼 위아래에 톱니 모양을 만들면 개봉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뜯는 과정에서 내용물을 조절할 수 없고 자칫 내용물을 쏟을 수 있다. 또 안전에도 문제가 있다. 가위나 칼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그런 도구를 찾는 일은 여간 불편하지 않다.

연구 끝에 지금의 봉지를 개발했다. 봉지 윗부분을 손으로 잡고 뜯으면 쉽게 개봉할 수 있다. 그 부분을 이지 컷(easy cut)이라고 한다. 이 봉지는 얇아 보여도 다섯 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품명이 표시된 겉면(인쇄층), 내용물을 보호하는 격리면(베리어층·알루미늄 호일), 구김을 방지해 상품 모양을 유지하는 면(LLD층)이 있고, 이들을 서로 접착해주는 접착면(PE층)이 그 사이사이에 있다. 다섯 겹의 봉지는 손으로 뜯을 수 없을 만큼 질기다. 그럼에도 이지 컷 부분이 잘 떨어지는 이유는 그 부위에 칼집(구멍)이 있기 때문이다. 레이저 광선으로 봉지 겉면에만 점선 모양으로 칼집을 낸다. 즉, 네 개 층에는 구멍이 없는데도 손으로 쉽게 뜯을 수 있는 것은 그 구멍의 크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크기는 제작 비밀이지만, 대략 머리카락 굵기만 해서 눈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 시디즈 제공
백화점 의자에 숨은 ‘전투적 쇼핑 촉진’ 전략

이 봉지에 숨은 또 다른 과학은 습기 차단이다. 커피는 1~2시간만 공기 중에 노출되어도 습기를 빨아들여 끈적거린다. 특히 커피믹스의 커피는 맛과 향을 유지하는 공법(동결 건조)으로 제조되었다. 커피 추출물을 영하 60~70℃로 얼리는 과정에서 수분을 완전히 뺀 후 잘게 부수어 봉지에 담는다. 그래야 봉지 안에서 끈적거리지 않은 상태로 유지될 수 있다. 최경태 동서식품 홍보과장은 “이 봉지를 개발해서 1년 미만이던 유통 기한을 1년 6개월로 연장할 수 있었다. 외부 공기를 차단하면서도 쉽게 개봉할 수 있는 기술이 핵심이다. 다른 회사에서도 이 봉지를 개발하지만, 잘 뜯어지지 않거나 습기에 약한 문제점이 발생했다. 또,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이지 컷과 비슷한 매직 컷(magic cut)을 개발했지만 한국만큼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는 다섯 겹을 겹친 상태에서 한 개 층에만 구멍을 뚫지만, 일본은 일단 구멍을 뚫고 여러 겹을 붙이는 방식이었다. 가공이 복잡하고 비용이 비싸서 널리 사용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한정된 공간에서 많은 제품을 팔아야 하는 백화점은 소비 과학의 결정체이다. 단순히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하는 시대를 지나 과학적으로 재고 따져서 판매와 연결한다. 예컨대, 백화점 진열대의 높이는 몇 년 전 79cm였지만 한국인의 평균 체형이 커지자 요즘은 82㎝로 높아졌다. 이 수치는 한국인의 체형, 과학적 측정, 시험 등을 통해 정해졌다. 업체는 소비자가 허리와 팔을 구부리지 않고 가장 편하게 물건을 고를 수 있는 높이를 계산해낸 것이다. 보석이나 시계 진열대는 1백10cm로 높다. 손으로 만지기보다 눈으로 보는 제품이므로 사람 눈높이에 진열대를 맞춘 것이다.

매출이 좋은 매장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 있다. 에스컬레이터 부근에 있으면 소비자는 그 제품만 사고 떠날 수 있다. 소비자가 에스컬레이터에서 멀리 떨어진 그 매장까지 가면서 다른 상품을 구경할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다. 또 여성 의류 매장에는 옷을 입어볼 수 있는 탈의실(피팅룸)이 있다. 그런데 그 내부에는 거울이 없다. 소비자가 거울을 보고 혼자 판단해서 옷을 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팅룸 밖으로 나와서 거울을 보는 동안 옷에 대한 판매 사원이나 지인들의 평가를 들으면 옷을 살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백화점에 흐르는 음악은 그냥 듣기 좋으라고 트는 것이 아니다.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층마다 음악을 달리한다. 소비자가 많이 움직이도록 하려고 잡화를 파는 1층에는 빠른 음악을 튼다. 여성 의류를 파는 층에는 잔잔한 음악이 나온다. 옷은 꼼꼼히 살펴보아야 사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바이올린 독주곡은 신경을 거스를 수 있고, 가사가 있는 가요는 소비자가 상품보다 가사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백화점이 피하는 음악이다.

식품 매장은 왜 지하 1층에 있을까? 쇼핑을 마친 소비자가 무거운 식품을 사서 지하 주차장에 있는 차로 이동하기 쉽기 때문이다. 홍콩이나 태국처럼 타워 주차장이 발달한 백화점에는 식품 매장이 고층에 있다. 과일은 낱개로 진열하면 잘 팔리지 않는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큰 진열대에 쏟아놓아야 저렴하고 풍성한 느낌을 준다. 또 색상에 따라 과일을 배치한다. 오렌지·밀감·한라봉과 같은 주황색 과일을 배치하고, 그 사이마다 포도·사과와 같은 다른 과일을 배치한다. 예를 들어 밀감 옆에 포도, 다시 오렌지를 진열하는 방식이다. 비슷한 색상의 과일을 연달아 진열하면 같은 과일로 인식해 한 종류만 구입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종류의 제품을 진열할 때는 비싼 것부터 전면에 놓는다. 소비자가 그 진열대를 지나갈수록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발견하는데, 이때 앞에 있던 것보다 상대적으로 싸게 느껴 구매력이 높아진다. 실제로는 비싼 가격임에도 가격에 대한 저항감을 낮추는 효과가 나는 것이다.

백화점 공간은 돈이다. 따라서 과거 백화점에 의자를 두는 일은 금기였다. 소비자가 계속 움직여야 많은 제품을 볼 수 있고 판매가 일어나는데, 의자는 그런 기회를 뺏는 주범이었다. 요즘 백화점에는 진열대 대신 널찍한 의자를 배치했다. 홍순상 신세계그룹 홍보부장은 “아예 커피를 파는 카페를 곳곳에 둔 백화점도 많다. 그것도 백화점 한복판에 설치해서 소비자가 쉬면서 주변 제품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쇼핑하다가 지친 소비자가 잠시 쉬면서 체력을 보충한 후 다시 의욕적으로 쇼핑한다”라고 설명했다.

할인점에서 소비자가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곳은 계산대이다. 그 계산대 옆에는 1평 남짓한 진열대가 있다. 이 진열대의 매출은 일반 진열대 매출의 2.6배에 달한다. 업체 경영진이 직접 그 진열대에 배치할 제품을 결정할 정도이다. 실제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최병렬 이마트 대표는 최근 이마트 매장과 똑같은 계산대를 연출한 자리에서 100개 제품을 선정하기도 했다. 소비자가 계산대에서 대기하는 시간은 약 1분30초, 이 시간에 구매를 결정할 정도로 잘 알려진 제품이어야 한다. 또 추가로 구매해도 가격이나 부피에 부담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소비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즐길 음료, 과자, 초콜릿, 껌 등이 대표적이다. 가격은 1천~2천원대이고, 무게는 20g 안팎이다. 과거에는 한 면에만 진열하던 제품을 요즘은 3면에 배치한다. 소비자가 어디로 눈을 돌려도 제품을 볼 수밖에 없다.

지난여름, 한 할인점은 매장 한복판에 원두막을 설치하고 매미 소리를 틀었다. 그냥 보기 좋으라고 매장에 큰돈을 쓴 것이 아니다. 그 원두막 옆에서 수박을 팔았는데, 원두막과 매미 소리가 소비자에게 시원함을 느끼게 했고 이는 수박 판매로 이어졌다. 수박 매출은 20% 이상 올랐다.

   
과속 단속 카메라가 과속 차량을 찍는 비밀은 도로 바닥에 있는 감지선에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과속 단속 카메라는 과학기술의 집합체”

도로에 설치된 과속 단속 카메라에도 과학이 숨어 있다. 얌체 운전자들은 단속 카메라 직전에 갑자기 속도를 줄이는 꼼수를 쓰지만 사실 카메라가 과속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 속도를 측정하는 것은 카메라에서 약 25m 앞 도로 바닥에 설치된 감지선이다. 팔각형 모양의 감지선 두 개가 6m 간격으로 도로에 깔려 있다. 자동차가 1차 감지선을 지나 2차 감지선에 도달하는 시간을 계산해 과속 여부를 판단한다. 규정 속도 이상일 때 카메라가 작동해서 사진을 찍는다. 

이동식 과속 단속 카메라의 작동 원리는 다르다. 감지선이 없는 대신 자체적으로 차량에 레이저 광선을 발사해서 반사되어 오는 시간으로 속도를 측정한다. 야구 중계에서 투수의 투구 속도를 재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고정식이든 이동식이든 과속 단속 카메라는 광학·정보기술·신호 전달·감지 등 과학기술의 집합체이다. 어떤 기후 조건에서도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0.01초 만에 다시 사진을 찍을 정도로 속도도 빠르다. 감시 범위도 넓고 정확도도 높으므로 카메라 앞에서 속도를 늦추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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