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체절명 위기에서 황금 생명줄 찾다
  • 이철현 (lee@sisapress.com)
  • 승인 2012.11.2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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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 기업’ 후성, 친환경 업체로 변신 성공 3세 김용민 대표 취임으로 불확실성 커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에 위치한 후성빌딩. ⓒ 시사저널 최준필
역발상이 주효했다. 오염물질 배출업체가 친환경 사업으로 변신하면서 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시사저널>이 우량 중견 기업(제1200호 특집 ‘경제 허리 받치는 우량 중견 기업들’ 참조) 5위로 꼽은 후성이 그 주인공이다. 후성은 대기 오염물질 배출업체였다. 회사 설립 초기부터 오존층 파괴 물질로 알려진 염화불화탄소(CFC)를 대량 생산했다. 염화불화탄소는 에어컨디셔너나 공조기에 들어가는 냉매 가스이다. 오존층 파괴가 심각해지자 국제 사회는 지난 2009년 염화불화탄소를 생산 금지 품목으로 지정했다. 후성에게는 위기였다. 국내 냉매 가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후성에게 염화불화탄소 생산 금지는 치명적이었다. 이 와중에 중국 업체는 저가 냉매 가스를 쏟아냈다. 후성은 중국 제품과 출혈 경쟁까지 벌여야 했다. 후성은 지속 가능성까지 의심받기 시작했다. ‘난세에 영웅이 나듯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후성에게는 송한주 대표(60)가 있었다.

송대표는 1983년 후성의 모태 격인 울산화학에 입사해 20년 동안 불소화학 분야만 연구했다. 화학 소재 분야에서 국산화를 이끈 인물로 꼽힌다. 송대표는 염화불화탄소 생산이 금지되자 대체 물질을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주요 매출처가 냉매 사업이라서 대체 물질을 개발하지 못하면 후성은 문을 닫아야 했다. 삼성전자·LG전자·현대차·기아차 같은 수출업체가 주요 고객인지라 냉매 가스 생산 중단은 수출에까지 지장을 초래할 수 있었다. 송대표는 각고의 노력 끝에 대체 물질인 수소불화탄소(HFC) 계열의 냉매를 개발해냈다. 이 덕분에 후성은 지금까지 수소불화탄소를 병행 생산하면서 독점에 가까운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냉매 가스 사업은 캐시카우(자금 원천 사업)로서 현금 흐름을 창출한다. 후성은 에어컨디셔너와 공조기에 들어가는 냉매 가스의 국내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총 매출액 중 냉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이른다. 미래 성장 동력으로 손꼽히는 2차전지 소재 사업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하다. 후성의 기술력도 20년 이상 축적한 불소 화학 원천 기술에서 나온다. 불소 화합물 관련 국내외 특허도 50여 건 보유하고 있다.

냉매 가스 사업 부문이 안정되자 송대표는 2차전지 소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회사의 미래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2차전지 4대 핵심 소재는 양극 활물질, 음극 활물질, 분리막, 전해액이다. 후성은 국내 최초로 2차전지 전해액에 들어가는 육불화인산리튬(LiPF6)을 개발했다. 2차전지 사업 핵심 인재는 우병원 상무(49)이다. 우상무는 경북대 화학 박사 학위 소지자로 기술개발연구소 연구2팀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 1996년 후성에 입사해 국내에서 유일하게 육불화인산리튬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후성은 지난 2004년 2월 육불화인산리튬 생산 공장을 설립했다. 지난 2006년 4월에는 육불화인산리튬 생산 설비를 두 배 증설했다.

생산 설비 증설에 골칫거리는 투자 재원이었다. 2차전지 소재 생산 설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거액의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송대표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분야에 주목했다. 탄소배출권 거래였다. 오염물질 배출업체로 낙인찍힌 후성이 탄소배출권 거래 같은 녹색 사업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송대표의 역발상은 ‘대박’을 낳았다. 후성은 연간 평균 2백20만여 t씩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였다고 인정받았다. 온실가스 감축 실적으로 얻은 탄소배출권을 유럽과 캐나다에 팔아 2009년 한 해에만 1백6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탄소배출권 사업으로 매출을 올린 것은 후성이 국내 최초였다. 송대표는 탄소배출권 거래 사업으로 벌어들인 자금을 2차전지 개발에 집어넣었다. 그 덕에 2차전지 소재 생산 시설은 지난해 9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2천t까지 늘릴 수 있었다.

후성이 생산하는 육불화인산리튬은 2차전지 전해액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이다.
김근수 회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조카

육불화인산리튬은 2차전지의 핵심 소재이다.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2차전지마다 육불화인산리튬이 들어 있다. 이로 인해 갤럭시S3, 아이폰5, 옵티머스G 중 어느 모델이 잘 팔리든 상관없다. 삼성전자, 애플, LG전자부터 마이크로소프트까지 모두 후성의 전해질 소재를 쓰기 때문이다. 하준두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후성은 육불화인산리튬 시장에서 한발 빠른 생산 설비 증설과 저렴한 소재 공급으로 일본 경쟁 업체들을 압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거칠 것 없이 성장하는’ 후성에 드리워지는 불확실성은 오너 3세로의 경영권 승계이다. 김근수 후성그룹 회장(64)은 지난 1월2일 후성 대표이사에서 사임했다. 김회장의 아들인 김용민 후성 부사장(38)이 지난 1월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대표이사에 올랐다. 김사장은 지난 2007년 2월 후성 지분 57.14%를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으면서 최대 주주가 되었다. 후성 IR 담당자는 “김근수 회장이 소유한 후성 구주를 김용민 사장에게 상속하는 방식으로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상속세도 정상적으로 납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사장은 현재 지분 22.75%를 보유하고 있다.

김근수 회장은 26개 계열사를 거느린 후성그룹의 총수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넷째 동생 정희영 여사와 ‘기계 박사’로 불렸던 고 김영주 전 한국프랜지공업회장(전 현대중공업 회장)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김회장은 1983년 현대중공업 화공사업부가 분사해 설립한 울산화학으로 1988년 세워진 석수화학을 합쳐 후성을 만들었다.

김근수 회장은 대표이사로 재직할 때 주요 의사 결정을 송한주 대표에게 맡겼다. 송대표는 지난 2001년 대표이사에 올라 회사 경영을 총괄했다. 회사 리더십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8년 12월 김용민 사장이 후성에 입사하면서부터다. 김사장은 2006년 미국 코넬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취득하고 후성의 해외 사업을 주도하면서 회사 경영에 참여했다. 회사 IR 담당자는 “송대표가 경영을 총괄하고 있으나 주요 의사 결정부터 세부 관리 업무까지 김사장이 사전에 결재하고 있어 회사를 공동 경영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사장은 아직까지 경영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2009년부터 2차전지 소재 사업 투자를 주도했다고 하나, 송사장이 이미 세워놓은 투자 계획을 집행한 것에 불과했다. 지난 2010년 노볼라이트테크놀로지와의 합작으로 중국과 미국의 전해질 사업에 진출하고자 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후성은 지난 4월 전해액 자회사 노볼라이트테크놀로지 지분을 BASF에게 팔고 육불화인산리튬 제조업체 노볼라이트테크놀로지를 자회사로 편입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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