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세상이 종교를 구원해야 할 때다”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2.11.20 11: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법·김민웅·김인국의 ‘잡설’ 토론 현장

지난 11월11일 일요일 저녁 7시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 남녀노소 3백여 명이 모여들었다. 청년들도 많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들, 백발노인들도 많이 보였다. 소극장은 비집고 들어가 앉을 공간이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꽉 찼다. 비바람이 세차게 불고 체감 온도가 영하로 내려갔을 것 같은 날씨에, 일요일 저녁이라는 악조건에도 이들은 왜 모였을까?

이날 스님, 목사, 신부 세 사람이 모여 좌담을 벌였다. 한국 불교 개혁과 생명평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도법 스님(63), 신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김민웅 목사(56), 사회 문제가 된 현장이라면 앞장서 달려가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총무 김인국 신부(49)였다. 이들이 이날 처음 좌담을 펼친 것은 아니었다. 이날은, 이들이 지난 8월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만나 이야기한 것이 책으로 엮여져 나온 것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세 사람은 북콘서트라고 이름 붙인 ‘낯선 자리’에서 지난 좌담들을 돌아보고 살을 덧붙이기도 하며 시민들과 소통했다. 좌담 중 종교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김기석 목사를 초대했는데, 그 부분을 중심으로 지상 중계한다.

11월11일 서울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도법 스님·김민웅 목사·김인국 신부(왼쪽부터)가 좌담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조철
김인국 : 나는 이런 것이 싫다. 성당에 오면 다 잘해줘야 한다. 누구나 다 위로받고, 사랑받고, 존중받고, 그렇게 다 챙겨줘야 한다. 다 불쌍한 자들이라고 하는 것이 싫다. 나는 가릴 것은 가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먹을 쓴 자는 성당에 오면 혼나야 된다. 맞은 사람은 위로받아야 되고. 그럼으로써 화해의 길로 나가는 그런 과정이 생략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도법 : 싸움 현장에 가보면 양쪽이 다 정당하다는 논리를 편다. 억울하다고 서로 항변하기도 한다. 때린 자는 때렸기 때문에 비인간화되고, 맞은 자는 맞아서 아프고. 결국 둘 다 피해자가 되는 셈이더라.

김민웅 : 도법 스님이 ‘화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제대로 화쟁이 되려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자리에 모두 나와줘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피해자는 현장에 나오는데, 가해자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김신부가 대한문 앞에서 미사를 드린다. 가해자 나오라고.

김인국 : 도법 스님이, 모든 사람에게는 잡고 들어갈 문고리가 있다고 했다. 어딘가 있는 문고리를 찾아서 당기면 열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의 중심에서 그 사람을 만나면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동의가 되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문고리가 어디 있는지 아무리 더듬거려도 못 찾겠더라. 더듬거리는 자체를 아예 용납하지 않는 인간들이 있더라는 것이다. 분규 현장에 가서 울고 있는 사람 옆에 서보았다. 우리가 싸운 적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돈이었다. 자본에는 문고리가 없더라. 말로 해서는 되지 않는다. 거룩한 힘으로 제압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도법 : 우리 사회에 좌우 대립이 응어리진 세월이 60년이 넘었다. 좌우라는 것은 극단적인 적개심을 부르는 것이다. 만나고 대화하고 소통할 대상이 아니었다. 씨를 말려야 하는, 제거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이 응어리를 풀지 않고 우리 사회가 하나로 통합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생명의 논리로 이 문제에 다가가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말을 안 하는 서로 간에 말문이 트이지 않을까.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바람은 생명과 평화이지 않겠나. 생명과 평화라는 화두가 서로 말문을 닫았던 사람들에게 말을 트게 하는 문고리가 되고, 이 문고리를 잘 열어서 작업을 하면 아마 응어리도 풀어지지 않을까.

김민웅 : 생명평화 운동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해야 된다. 그 다음에 도달한 질문은, 그러면 종교는 뭘 하지? 이런 얘기이다. 생명과 평화는 어떤 추상적인 주제나 관념이 아니라 사실은 현장에서 고통받고 아파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거기서부터 나오는 눈물과 의지가 발동되어야만 되는데, 지금의 종교들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이를테면 불교에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현장에 관심을 갖는 자체를 별로 의미가 없다고 본다. 개신교도 마찬가지다. 현장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정치욕 소유자라고 한다. 천주교도 비슷하다.

김인국 : 천주교는 좀 다른데….(청중 웃음) 성실하게 안 해서 그렇지, 문헌에는 하라고 나온다. 때리는 사람, 맞는 사람, 뺏는 사람, 빼앗기는 사람, 훔치는 사람, 당하는 사람이 있는데, 종교가 뭘 하느냐? 내 생각이 아니라 책에 그렇게 나온다. ‘편을 들어라.’

김민웅 : 책은 무슨 책인가. 정확히 해달라.

김인국 : 가톨릭사회교리 문헌에 명시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 이렇게 나온다. 굉장히 논란 소지가 많은 구호이지만, 가톨릭교회는 이것을 선택했다. 그래서 교회는 생리적으로 편 들어주어야 하고 그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고…. <성경>에서도 약한 자 편을 들어주는 내용이 있다. 이런 요구가 현실적이다.

김민웅 : 스님, 이야기를 잘해주셔야겠다. 그래야지 지금 청중들이 절로 갈까, 교회로 갈까 결정할 수 있다.(청중 웃음)

도법 : 현재의 종교들이 종교이겠는가. 싸움판을 벌이는데. 인간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야만적이고 파괴적이고 비인간적인 것이 전쟁인데, 이것을 종교의 이름으로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인류가 저지른 전쟁의 약 70%가 종교 전쟁이다. 지금도 곳곳에서 종교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인류 역사에서 종교가 있었을까 하는 근원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종교는 꼭 필요하지만, 적어도 자기 집단 중심의 이로운 입장을 가지고 싸움판을 벌일 것이라면 이것이 어떻게 종교이겠는가. 그래서 종교는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종교를 구제할 대책을 세우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종교 언어를 일상 언어로 바꾸는 작업 절실”

김민웅 : 그래서 종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종교는 사실 철저하게 권력의 부당함, 불을 가지고 권세를 부린 자들을 향해서 경종을 울리는 신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을까. 그것을 못하면 종교가 아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다. 김기석 목사를 모셨다. 종교의 고뇌를 일상의 언어로 어떻게 풀 것인지 들려달라.

김기석 : 내가 신학을 공부해야 되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던 것은 ‘신학은 인간학’이라는 말과 만났을 때였다. 결국 인간의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신에 대해 알 수도 없고, 신에 대해 사유하지 않으면 인간에 대해 깊이 알 수도 없겠다. 인간은 뭐냐 알고 보니, 모든 존재가 아프고 슬프더라. 그렇다면 인간을 넓은 품으로 품어 안아야 하는 것이 종교인데, 종교의 현실을 보면 서로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하고 있다. 예수를 믿으면 사람이 커져야 하는데, 잘 믿는다고 겉으로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품이 좁은 경우가 많다. 이것이 한국 교회가 오늘날 세상의 문젯거리가 된 이유 같다. 그래서 종교는 품어 안을 수 있는 능력이 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마음이 답답할 때, 신은 그를 장막 밖으로 데려가서 밤하늘의 별을 좀 보라고 한다. 종교란 뭐냐, 자기 현실에 매어 있는 사람들에게 별을 보여주기도 하는…. 그것이 답은 아니지만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인국 : 이제는 세상이 종교를 구원해줄 시점이 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970~80년대까지 아직 세상에 돈의 위협이 노골적이지 않을 때는 교회가 밥값을 조금 했다. 그런데 돈에 다 포섭된 다음부터는 교회가 매우 쩨쩨해졌다. 그전에는 종교인들이 밥값을 하고 있는지 묻고 답하는 여정이었는데, 오히려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에게서 빛을 보게 된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빤한 것인데, 이렇게 많이 오셨다. 여러분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종교에 대한 기대와 사랑이 있음을 본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서 빛을 보며, 그래서 이제는 세상이 종교를 살려주어야겠다는 말을 다시 한번 하고 싶다.

김기석 : 지금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종교적인 언어를 일상적인 언어로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나는 그 부분을 고민하고 있고, 일상의 모든 삶이 종교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기 시작할 때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력하나마 종교적인 언어를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해나가, 우리의 눈이 조금씩 떠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