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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꼼짝 마! 블랙박스에 다 찍혔다

범죄나 교통사고 현장 ‘침묵의 목격자’로 맹활약

정락인 기자 ㅣ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11.20(Tue) 11: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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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용 블랙박스(원 안 사진)가 자칫 묻힐 수 있는 범죄를 적발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차량용 블랙박스는 범죄 현장의 ‘소리 없는 목격자’이다. 항시 이동이 가능하고, 차량마다 설치할 수 있다. 그만큼 촘촘한 감시가 가능하다. 얼마 전 대구에서는 40여 차례에 걸쳐 현금과 컴퓨터 등을 훔친 용의자가 검거되었다. 대구 시내에서 절도 행각을 벌인 용의자는 주도면밀했다. 범행에 나설 때는 모자와 복면을 쓰고, 장갑을 끼었다.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차량과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았다. 완전 범죄를 노리던 범죄자는 전혀 생각지 않은 곳에서 꼬리가 잡혔다. 바로 차량용 블랙박스이다.

경찰은 범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자 범죄 현장 인근에 있던 차량의 블랙박스를 수소문했다. 그러다 차량 한 대에서 핵심 증거를 찾아냈다. 용의자는 범행에 들어가기 직전 식당 앞에서 옷을 갈아입고, 모자와 장갑을 착용했다. 이런 용의자의 모습이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경찰은 범인의 인상착의를 토대로 수사를 벌여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블랙박스가 범인 검거에 일등 공신 역할을 한 것이다.

2009년 1월 대학생 등 부녀자 여덟 명을 연쇄 살해한 강호순은 고의 교통사고를 내는 방법으로 보험금 수억 원을 타냈다. 보험사는 ‘사고를 당했다’는 강씨의 말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했다. 만약, 강씨의 차량이나 사고 당시 인근에 있던 차량에 블랙박스가 있었다면 ‘고의 교통사고’는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차량을 운전하다 보면 도로나 주택가 등에서 ‘자해 공갈단’을 만날 수가 있다. 이들은 여러 명이 짝을 이뤄 조직적으로 범행에 나선다. 합의금이나 보험금을 노리고 사고를 가장해서 돈을 뜯는 수법이다. 보험사들에게도 자해 공갈단은 골칫거리이다. 하지만 블랙박스 앞에서 자해 공갈단은 ‘꼼짝 마’ 신세가 된다.

동영상 전문 사이트인 ‘유튜브’에도 자해 공갈단의 범행 전후가 녹화된 블랙박스 영상이 실감나게 올라와 있다. 어느 한적한 주택가 도로를 승용차 한 대가 달리고 있다. 때마침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도로 한가운데를 지나간다. 운전자는 잠시 차를 세우고 이 남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남자는 길을 건너지 않는다.

정차된 차량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갑자기 본네트 위에 푹 나자빠진다. 그리고는 “아야!”라고 신음 소리를 내지른다. 운전자가 당황하며 나가자 은근슬쩍 합의금을 요구한다. 합의를 거부하자 차량 앞에 엎드리거나 길바닥에 주저앉으며 시비를 건다. 경찰이 출동하고 차량 블랙박스를 확인한 후에야 이 남자의 자해 공갈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승용차 한 대가 4차선 도로를 달리다가 보행 신호로 바뀌자 속도를 줄이며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때 횡단보도에 서 있던 남자가 순식간에 차량 앞으로 뛰쳐나오며 부딪친다. 차량 안에 블랙박스가 없었다면 이 운전자는 꼼짝없이 교통사고 가해자가 될 뻔했다.

   
블랙박스에 촬영된 범죄 용의자와 노인 ‘지팡이 공갈단’의 사건 현장. ⓒ SBS 제공
자해 공갈단도 설 자리 잃어

지팡이를 이용한 노인들의 자해 공갈도 더는 설자리를 잃었다. 상가가 밀집한 2차선 도로를 승용차 한 대가 주행한다. 차도 가까이에서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든 노인이 지나간다. 차량이 노인 옆을 지나자 “아이고, 다리야!”라는 비명 소리가 들린다. 운전자는 자신의 과실인 줄 알고 차를 세우고는 노인에게 연신 “죄송하다”라며 사과한다. 전후 사정을 모르면 누가 보아도 운전자의 잘못이다.

노인은 “아들이 선물한 독일제 고급 지팡이가 망가졌다”라며 운전자에게 현금을 요구했고, 운전자는 17만원을 주고 합의서를 썼다. 하지만 운전자는 차량 안에 설치된 블랙박스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길을 가던 노인이 오른손에 짚고 있던 지팡이를 승용차에 슬쩍 밀어넣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지팡이는 미리 구부린 것이었고, 외제가 아닌 싸구려였다. 노인은 일명 ‘지팡이치기’로 불리는 자해 공갈단이었다.

이처럼 도로에서 교통사고나 접촉 사고가 났을 때 ‘블랙박스’는 차량 운전자의 구세주가 된다. 잦은 접촉 사고와 승객과의 승강이도 걱정할 것이 없다. 차량 내에 든든한 목격자인 ‘블랙박스’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영업용 택시들은 대부분 차량 내에 블랙박스를 장착했다. 오는 2013년까지 버스나 택시 등 모든 상업용 차량은 의무적으로 블랙박스를 달아야 한다. 일반 승용차 운전자들도 너도나도 블랙박스를 찾는 추세이다.

차량용 블랙박스의 효과는 금세 나타나고 있다.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분쟁이 대폭 줄어들었다. 기존에는 교통사고가 나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잘잘못을 따지며 시비가 붙는 일이 많았다. 사고 원인을 두고 법적 분쟁으로 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억울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블랙박스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교통사고가 일어났을 때 시시비비가 분명해졌다. 교통사고를 내고 도망치는 뺑소니범도 줄어들고, 검거율도 높아졌다. 버스나 택시, 화물차의 난폭 운전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택시 기사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택시 강도’의 출현을 막을 수도 있다.

이상민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 8월 자동차회사가 출고하는 모든 차량에 차량용 블랙박스를 의무 장착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의원은 “블랙박스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면 교통사고 시 책임 소재의 판단을 용이하게 하고 교통사고 예방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물론 법안에는 자동차 내외의 특정 공간과 운행 기간 외에 영상 기록을 하면 안 된다는 단서 조항이 추가되었다.

택시 운전자들은 블랙박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기자가 만난 택시 운전자들은 대부분 블랙박스 설치를 반겼다.

올해 4년차 영업용 택시를 운전하고 있다는 김 아무개씨(40대)는 “택시를 운전하다 보면 여러 상황과 맞닥뜨린다. 내가 운전을 잘한다고 해서 사고가 안 나는 것은 아니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는 술에 취한 승객과 시비를 벌일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나한테 과실이 없어도 골치가 아프다. 경찰서에 불려다녀야 하고, 회사측에 경위서를 써야 한다. 때로는 금전적인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 블랙박스가 설치된 후에는 이런 걱정을 덜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영업용 택시 운전자에게 ‘회사에서 감시하고 있는 것 같지 않느냐’라고 물으니 “그런 생각도 들지만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으니 감수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국내 블랙박스 판매량은 2010년 30만대에서 지난해에는 85만대, 올해는 1백50만대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에는 2백만대를 넘을 전망이다. 주택가나 도로 등에 움직이는 방범용 CCTV가 설치된 것이나 다름없다. 강도·살인·절도 등의 범죄자들의 범행이나 도주 장면이 블랙박스에 녹화될 확률이 그만큼 높아졌다.

그렇다고 블랙박스가 ‘만사형통’은 아니다. CCTV처럼 양날의 칼이다.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블랙박스를 악용한 지능형 범죄자들이 등장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차량에 블랙박스가 장착된 것을 알고 범행 계획을 세운다는 점이다. 범죄 표적은 신호 위반·법규 위반·음주 운전 차량이다.

블랙박스를 이용한 범죄자들은 고의로 교통사고를 낸 뒤 운전자를 협박해 현금을 뜯어내거나 보험금을 챙겼다. 이들은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 동영상을 이용해 법규 위반 운전자의 형사 처벌 등 불안 심리를 악용했다.

블랙박스에 담긴 영상을 빌미로 협박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한 여성은 인터넷에 ‘차량 내 블랙박스 협박에 시달린다’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이 여성에 따르면 “얼마 전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자신의 차량 내에 설치된 블랙박스로 협박을 한다. 차 안에서 과도한 스킨십과 애정 행각을 한 것이 녹화되었는지, 더 이상 만나주지 않으면 녹화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한다”라며 불안해했다. 

사생활 침해에 악용될 수도

한 여당 국회의원의 블랙박스 괴담은 유명하다. ‘해당 의원이 지난해 5월 술을 마시고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여성과 함께 택시에 동승했다. 두 사람은 뒷자리에서 진한 애정 행각을 벌였는데, 이것이 택시 안에 설치된 블랙박스에 녹화되었다. 국회의원 신분임을 알아챈 택시기사가 돈을 요구하며 협박했고, 결국 국회의원은 거액을 주고 사태를 무마했다’는 것이다. 블랙박스 동영상이 언제든지 ‘협박용’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블랙박스에 의한 사생활 침해도 심각하다. 현재 차량용 블랙박스는 차량 전방만 촬영할 수 있는 1채널(CH) 기종과 전·후방 촬영이 가능한 2채널(CH), 전·후방 좌우는 물론 차량 내부의 동영상과 음성 메시지를 기록할 수 있는 4채널(CH)로 분류된다.

하지만 점차 기능이 강화되면서 촬영 범위가 넓어졌고, 화질도 업그레이드되었다. 수십 초 분량에서부터 24시간을 촬영할 수 있는 고급 기종까지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차량 내부까지 촬영이 가능해 승객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촬영된다. 목소리도 녹음된다. 승객들의 은밀한 사생활까지 엿보게 되었다.

인터넷에서는 블랙박스에 촬영된 사생활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얼굴이 모자이크되지 않거나 음성이 변조되지 않은 은밀한 사생활을 담은 블랙박스 동영상이 떠돌아다닌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블랙박스 애정 행각’을 검색해보았다.

그랬더니 관련 글과 사진 그리고 영상이 뜬다. 이 중 ‘젊은 것들의 애정 행각’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클릭했다. 곧바로 블랙박스 동호회 카페로 연결된다. 동영상을 작동시키니 대낮에 승용차 앞에서 젊은 남녀가 스킨십을 하는 모습이 들어 있다. 촬영일과 시간까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게시자는 촬영 장소까지 알려주고 있었다.

지난 3월 인터넷을 달군 ‘택시 막말녀’ 사건도 블랙박스 동영상이 유출된 것이다. 여기에는 20~3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택시 운전기사에게 반말과 욕설을 하는 모습이 담겼다. 여성의 얼굴과 목소리도 그대로 노출되었다.

이 동영상은 택시 기사의 자녀라고 소개한 네티즌이 올렸다. 얼마 후 이 여성이 다니는 회사와 나이까지 공개되었다. 최근 화제가 된 ‘택시 매너녀’ 동영상도 블랙박스에 녹화된 것이다. 이렇듯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사생활이 무차별 공개되고 있다.

블랙박스가 배우자의 외도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자신을 결혼 10년차라고 밝힌 한 주부는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고, 차량을 수리하면서 블랙박스를 장착했다. 나중에 메모리카드를 확인해보니 남편이 다른 여자와 있는 모습이 그대로 찍혀 있었다”라고 인터넷 상담 코너에 글을 올렸다. 남편의 외도 장면을 블랙박스를 통해 확보했는데, 이혼 소송 시 증거 자료가 될 수 있느냐며 문의하는 것도 있었다.

이처럼 블랙박스가 원래의 용도 외에 ‘도촬(도둑 촬영)’용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영업용 차량 안에 블랙박스가 설치되었을 경우 개인정보 보호법상 안내문을 부착해야 한다. 영상을 녹화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녹음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블랙박스 동영상을 당사자 동의 없이 공개했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동영상을 타인에게 제공할 때에도 영상 속 다른 인물의 신분을 확인할 수 없도록 모자이크 처리해야 한다.

타인의 차량 번호를 가리지 않거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블랙박스에 찍힌 ‘사생활’ 어떻게 지킬까 
 

   
택시를 타거나 승용차에 있는 내 모습은 더는 비밀이 아니다. 블랙박스가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 내 모습뿐 아니라 목소리도 그대로 녹음된다. 즉, 블랙박스 동영상이 언젠가는 내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블랙박스에서 내 사생활을 보호할 수는 없는 것일까.

물론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원래 목적 외에 블랙박스 동영상을 사용하거나 유출할 경우 처벌을 받는다. 그렇다고 ‘개인정보보호법’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아니다. 지금도 지하철, 버스, 도로, 모텔 등에서 찍힌 불법 동영상들이 인터넷 등에서 떠돌고 있다. 얼굴이 모자이크되거나, 음성이 변조되었다고 해도 네티즌들의 신상 털기를 통해 개인 신상이 드러나는 것이 현실이다. 인터넷상에 한번 퍼지면 최초 유포자는 처벌할 수 있어도 나머지 유포자를 모두 처벌하거나 이미 퍼진 동영상을 지울 수는 없다. 따라서 일단 택시 안에서는 개인 사생활이 노출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택시 기사와의 불필요한 시비, 인신공격, 연인과의 애정 행위, 상식을 벗어난 행동 등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비밀스런 내용의 휴대전화 통화도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칫 ‘알몸녀’ ‘재수녀’ ‘막말남’ ‘쩍벌남’ 등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럴 경우 네티즌의 ‘신상 털기’ 대상이 되어 마녀사냥을 당할 수도 있다.

만약 블랙박스 동영상을 빌미로 협박을 받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런 때에는 적극적인 대응 자세가 필요하다. 김상중 안양 동안경찰서 지능팀장은 “당황하거나 불안해하면 안 된다. 그러면 상대자는 자신의 협박이 통하는 줄 알고 점차 강도를 높이게 된다. 여기에 끌려다니면 더 큰 낭패를 볼 수가 있다. 이런 때에는 차분하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협박 내용을 녹취한 후 경찰에 고소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만약 동영상이 유포되었다면 즉각 경찰에 신고하고, 해당 인터넷 사이트에 ‘권리 침해 신고’ 등을 해서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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