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영웅을 추락시켰다”
  • 한면택│워싱턴 통신원 ()
  • 승인 2012.11.2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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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미국 CIA 국장 퍼트레이어스의 불륜 추문 풀스토리

(맨위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CIA 국장, 존 앨런 미군 및 나토 국제안보지원군 사령관, 존 앨런 사령관과 부적절한 관계를 의심받고 있는 질 켈리., 퍼트레이어스 전 CIA 국장의 외도 상대로 밝혀진 여성 작가 폴라 브로드웰. ⓒ AP 연합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아프간) 전쟁을 지휘한 전쟁 영웅이자 CIA 중앙정보국장 그리고 공화당 진영의 차기 대권 주자로도 꼽혔던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장군을 일순간 몰락시킨 불륜 드라마가 미국을 강타했다. 20세 연하의 전기 작가와 중앙정보국장 시절 저지른 외도 스토리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불륜 커플의 전모는 물론 유명 인사들의 스캔들, 수사기관들의 이상한 보고 행태, 정치적 음모론 등이 얽히고설켰다.

미국 육사 선후배의 ‘잘못된 만남’

올해 60세의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미국 육군 예비역 대장을 모르는 미국인은 별로 없다. 부시 대통령 시절 이라크를 침공했던 2003년부터 최근의 아프간 전쟁까지 그는 두 개의 전쟁을 지휘하며 불리하던 전세를 역전시키곤 했다. 이 때문에 전쟁 영웅으로 불리며 몇십 년 만에 나올까 말까 할 사령관으로 꼽혔다. 당파를 초월해 존경을 받아왔다. 민주당 출신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측 인물인 그에게 14개월 전 중앙정보국을 맡겼다. 그런 그가 불륜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나락으로 추락했으니 미국이 경악한 것이다.

퍼트레이어스의 상대였던 폴라 브로드웰은 반대로 아는 이들이 별로 없는, 마흔 줄에 접어든 평범한 워킹맘이다. 그러나 그녀의 프로필은 화려하다. 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예비역 중위이고, 하버드 행정대학원인 케네디스쿨을 졸업했으며 박사 학위 과정에 있다. 4세와 6세인 두 아들을 둔 엄마이다.

CIA 국장과 전기 작가 사이 불륜 스토리의 시작은 2006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순수한 만남이었다. 당시 미국 육군 중장이었던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이 강연하기 위해 하버드 행정대학원 케네디스쿨에 갔을 때 대학원생 대표 중 한 명으로 폴라가 나온 것이다. 여럿이 저녁 식사를 할 때만 해도 이 두 사람이 20년 차이의 불륜 커플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두 사람이 서로 관심을 끌게 된 배경이 하나 있어 보인다. 폴라가 하버드 대학원생이었으나 알고 보니 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예비역 중위였으니 관심을 둘 만했다는 관측이다. 게다가 폴라는 군 정보 분야에서 주로 근무했기 때문에 서로 말이 통했던 것 같다고 폴라의 친구들은 전했다.

폴라는 퍼트레이어스 장군에게 푹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 불륜의 씨앗이 태동한 것은 2008년이었다. 하버드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폴라가 다른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게 되면서 사령관을 다시 떠올린 것이다. 폴라가 퍼트레이어스 장군의 지도력을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삼은 것이다. 이메일 인터뷰도 하고, 그와의 직접 만남도 다시 이루어졌다. 게다가 언론까지 피하는 신중한 처신으로 유명한 퍼트레이어스 장군이 그를 워싱턴 D.C. 포토맥 강가에서 열린 달리기 행사에 초대하는 파격을 보였다. 그때부터 퍼트레이어스 장군의 이상한 폴라 편애가 시작되었다. 폴라는 당시 상황에 대해 방송 인터뷰에서 “그와 내가 서로 테스트했는데 서로 통과한 것 같다”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전쟁 영웅의 이상한 처신

하지만 이 커플은 불륜 스토리를 만들기도 전에 긴 이별을 해야 했다. 2009년 폴라는 남편 스콧을 따라 두 아들과 함께 워싱턴을 떠나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롯으로 이주했다. 퍼트레이어스 사령관도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 미국 중부군 사령관,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으로 두 개의 전쟁을 지휘해야 했기 때문에 딴짓을 할 시간이나 여유는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들 커플은 이상한 행동과 처신으로 불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야 말았다. 2010년 6월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은 전황이 악화되던 아프간 전선을 되돌려야 한다는 특명을 받고 미국 중부군 사령관에서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때마침 폴라는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의 자서전을 직접 쓰겠다는 이상한 제안을 꺼내들었다. 실제로 폴라는 퍼트레이어스의 전기 <올인(All In): 퍼트레이어스 장군의 교육>을 공동 집필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작가나 언론인 경력이 전무했다는 점에서 무슨 용기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장군의 자서전을 집필하겠다고 나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들었다.

문제는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이 그 제안을 수락해 공동 집필을 허락하는, 수상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심지어 그를 전장인 아프간에 여섯 번이나 방문하도록 허용했다. 정보 총수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폴라를 극히 일부만 출입할 수 있는 CIA 국장 사무실로 불러 들였다. 미군과 중앙정보국에 있던 그의 참모들이 보기에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이상한 환대, 비정상적인 처신이었다. 예전과는 크게 다른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의 폴라 편애에 군과 CIA 참모들은 의구심과 걱정, 고언을 쏟아냈지만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스무 살 차이가 나는 이 커플이 유부남·유부녀였음에도 불륜에 빠져든 것은 2011년 11월쯤으로 알려졌다. 실질적인 첫 불륜 관계는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 랭리에 있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청사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폴라의 친구들에 따르면 이들 커플의 정사는 퍼트레이어스 장군이 군복을 벗고 정보 총수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맡은 지 두 달쯤 지난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불륜 스토리가 세상에 알려지기 1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이들 커플은 4개월 전에 불륜 관계를 끝냈다고 한다. 서로 끝내기로 합의했고, 그리 나쁘게 헤어지지는 않았는지 결별한 후에도 최근 한 달 전까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던 육군 대장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은 왜 그런 수렁에 빠져들었을까. 그를 잘 아는 옛 참모들은 전쟁 스트레스와 외로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말 미국 육군 대장 군복을 벗고 중앙정보국장으로 취임했으나, 평생을 보낸 군을 떠나야 했던 허탈감은 상상을 초월했던 것 같다고 옛 참모들은 전했다.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을 지휘했을 때 겪었을 전쟁 스트레스에 군을 떠난 허탈감이 더해졌다는 말이다. 게다가 겉보기에는 화려하고 막강 파워를 지닌 중앙정보국장이지만 군 출신이 정보 총수로 부임한 일종의 낙하산이어서 외로움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옛 참모들은 전했다.

그런 순간에 나타난 폴라는 미국 육사 후배인 동시에 정보 커뮤니티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 쉽게 말이 통했다. 거기에 누구도 하지 않았던 자신의 엉덩이를 찰 정도로 스스럼없는 행동을 하는 폴라에게 일탈을 모르던 모범생 퍼트레이어스 장군도 끌려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의 불륜 드라마가 세상에 알려지고 결국 전쟁 영웅, 가장 존경받는 미군 사령관을 추락시키게 된 것은 폴라의 질투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에 빠져버린 폴라는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또 한 명의 여성에게 질투심을 폭발시키면서 ‘퍼트레이어스와 가깝게 지내지 말 것’을 위협하는 협박성 이메일들을 보냈다가 화를 자초했다. 익명으로 보냈던 이메일에서 폴라는 ‘내 남자에게서 떨어지라’라고 요구했다.

이 여성은 플로리다 탬파에서 미국 공군기지를 출입하며 민·군 간 연락관 역할을 해온 37세의 질 켈리였다. 폴라로부터 협박성 이메일을 받은 켈리가 연방수사국(FBI)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고, FBI가 조사에 착수했다.

FBI는 퍼트레이어스 국장과 폴라가 주고받은 이메일 등에서 두 사람이 불륜 커플인 사실을 밝혀냈다. FBI는 두 사람의 불륜을 확인한 다음 폴라의 랩탑 컴퓨터에 기밀 정보들이 들어 있는지, 퍼트레이어스 전 국장이 극비 정보를 누설했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나 FBI의 수사 결과, 폴라가 갖고 있던 정보들이 대단한 기밀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퍼트레이어스 국장이 기밀 정보를 누출해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없다고 강조했다.

데이비드-폴라 불륜 드라마에는 또 다른 커플이 등장했다. 존과 질이다. 즉, 존 앨런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과 이번 사건을 폭로시킨 주인공 질 켈리라는 여인이다. 퍼트레이어스 국장을 몰락시킨 불륜 스캔들이 존 앨런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에게까지 번진 것이다. 폴라로부터 협박성 이메일을 받고 FBI 수사를 촉발시킨 질 켈리와 앨런 사령관이 수많은 이메일을 주고  받은 것으로 드러나 이들도 불륜 커플이 아닌지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본인들도 부인하고 있고, 정황상 이 두 사람은 불륜 관계는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FBI가 확보한 두 사람 간의 이메일이 당초 1만~2만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인 것으로 보도되었으나 이는 두 사람 사이에 주고받은 것 외에 다른 사람들과의 이메일도 모두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게다가 앨런 사령관이 보유하고 있던 켈리의 이메일은 켈리의 의사 남편과 앨런 사령관의 부인 등이 공유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불륜 관계로 보기에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2010년 6월24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프간 사령관 교체를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당시 아프간 사령관에 임명된 퍼트레이어스 전 CIA국장이 서 있다. ⓒ AP 연합
아프간 미군 사령관에게도 불똥

그럼에도 앨런 사령관은 이번 스캔들로 직격탄을 맞았다.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에서 나토군 총사령관으로 전보 명령을 받고 11월15일로 예정되었던 상원 인준 청문회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에 왔다가 날벼락을 맞은 셈이 되었다. 미국 해병 대장인 앨런 사령관은 퍼트레이어스 사령관 아래서 미국 중부군 부사령관을 지냈고, 아프간 주둔 사령관 자리도 물려받는 등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앨런 사령관은 현재 켈리라는 여인과 주고받은 이메일에 이상한 내용이 담겨 있는지, 군사 기밀을 누설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 미국 국방부 감사관실의 조사를 받고 있다.

그 조사 때문에 나토군 사령관 전보가 유보되었고 상원 인준 청문회도 취소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그의 무관함을 확신하며 여전히 신임을 표시해 조만간 복귀할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자칫하면 몰락의 주인공이 될 뻔했다.

재선에 성공한 이후 11월14일 첫 기자회견을 가졌던 오바마 대통령은 퍼트레이어스 스캔들과 관련된 질문이 쏟아져 곤혹을 치러야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11월6일 선거가 끝난 지 이틀 만인 11월8일 퍼트레이어스 국장이 사표를 들고 와 불륜 사실을 고백했을 때 처음으로 그 사실을 알았다고 공개해 의문을 남기고 있다. 게다가 퍼트레이어스의 불륜과 FBI의 수사 사실을 공화당 하원 대표인 에릭 캔터 하원의원이 10월에 먼저 알았던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FBI는 상급 기관인 법무부에만 보고하고 백악관과 연방의회 정보위원회에는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는데, 백악관이 사전에 몰랐다는 점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민주·공화 핵심부 모두 이번 불륜 스토리를 접하고 정치적으로 계산하는 데 애를 썼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11월6일 선거일보다 나흘 전에 끝났다는 FBI 수사 결과와 그 이전에 파악했을 퍼트레이어스 불륜 사실을 몰랐다면 보고 체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선거 때문에 쉬쉬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공화당 입장에서는 인물난을 겪고 있기 때문에 2016년 차기 대선에서 내세울 수 있는 퍼트 레이어스 국장을 보호하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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