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사권’ 축배 아직 이르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11.2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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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검찰의 ‘수사권 힘겨루기’에서 경찰이 기선을 잡았다. 김광준 검사를 시작으로 연이어 검찰 비리가 터지면서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검찰은 내분에 휩싸이며 싸움의 동력을 상실했다. 그렇다고 경찰이 마냥 기뻐할 때는 아니다. 내부 사정이 복잡하다. 뼈를 깎는 내부 개혁에 나서지 않으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지난 9월3일 경찰청에서 김기용 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 경찰 지휘부 회의’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내년 2월에는 새 정부가 탄생한다.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검찰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김광준 검사의 비리가 터지면서 ‘검찰 개혁’은 탄력을 받고 있다. 박근혜·문재인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수사권 조정은 이루어질 전망이다. 박근혜 후보의 경우 11월21일 퇴직 경찰관들의 모임인 경우회 행사에 참석해 “경찰 수사권 독립을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기존의 ‘검·경 협의를 통한 합리적 배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검찰은 무기력해졌다. 검사들의 목소리도 사그라졌다. 여느 때 같으면 검사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하며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왔을 만하다. 하지만 지금은 입이 열 개라도 말할 처지가 아니다. 김광준 검사의 비리에 이어 현직 검사의 성추문 사건이 터지자 아예 패닉 상태에 빠졌다. 서울 동부지검에서 파견 근무하던 전 아무개 검사는 기소를 안 한다는 조건으로 검사실에서 피의자와 유사 성행위를 하고, 사무실 밖에서 성관계까지 가졌다.

당장 검찰 지휘부의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한상대 총장이 더 이상 자리를 지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어떤 형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할 입장이다. 그렇다고 대통령 선거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총장을 바꾸기에는 어딘가 찜찜하다. 검찰은 지금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안에서 사면초가에 빠졌다.

검찰이 초상집이라면 경찰은 잔칫집 분위기이다. 오랜 숙원이던 ‘수사권 조정 현실화’가 눈앞에 다가왔다. 물고 물리던 검찰과의 힘겨루기에서 기선을 잡은 모양새이다. 한 경찰 간부는 “김광준 검사는 경찰의 구세주이다. 사실 조희팔은 경찰의 아킬레스건이었는데 김검사가 연루되면서 극적으로 반전되었다. 대선이 끝날 때까지 김검사 사건을 끌고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경찰이 마냥 좋아할 처지는 아니다. 내부 사정도 복잡하다. 경찰대와 비(非)경찰대의 갈등, 하위직 경찰관들을 주축으로 추진되고 있는 ‘경찰직장협의회’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우선 새 정부가 출범한 후 김기용 경찰청장의 임기가 지켜질 것이냐가 관건이다.

김청장은 지난 4월 이명박 정부의 네 번째 경찰청장에 임명되었다. 조현오 전임 청장이 수원 20대 여성 토막 살해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난 후 그 자리에 앉았다. 당초 김청장은 청장 후보 물망에 없었다. 차기 청장으로 낙점해두었던 이강덕 당시 서울경찰청장(현 해양경찰청장) 카드가 물 건너가면서 어부지리로 발탁된 경우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야당의 반발을 무마하고,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장고를 거듭한 끝에 김청장을 골랐다는 후문이다.

그래서인지 경찰 내부에서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 경찰청장도 바뀔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경찰청장의 2년 임기가 법으로 정해져 있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리를 지키기가 힘들다는 분석이다. 현 정부가 들어선 후 김청장 앞에 세 명의 청장이 거쳐 갔지만, 임기를 채운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물론 경찰 안팎에서는 ‘법으로 보장된 2년 임기는 지켜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지난 11월17일 무궁화클럽 간부들이 서울 시내의 모처에 모여 ‘경찰직장협의회’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다. ⓒ 무궁화클럽 제공
김기용 청장, 임기 지켜질까

한 경찰 간부는 “사실 우리 조직 내에서도 김청장을 ‘시한부 청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원래 인사 카드에 없다가 갑자기 대안으로 만든 것 아니냐. 청장 임기는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하지만 김청장의 거취는 새 정부와 본인이 결정할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이무영 전 경찰청장은 “미국의 FBI(연방수사국)나 일본 경시청도 임기는 지켜준다. 민주주의하에서는 법치주의가 세워져야 하는데, 정치적인 이유나 여론 재판에 의해 경찰청장의 임기가 좌지우지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차기 청장에 대한 하마평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유야 어떠하든 김청장의 거취에 따라 경찰 조직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당장 지휘부에 영향을 미친다. 현재 지휘부에 속하는 치안정감은 여섯 명이다. 김청장이 물러나면 이들 중에서 한 명이 청장에 오른다. 김정석 경찰청 차장,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 이성한 부산지방경찰청장, 강경량 경기지방경찰청장, 서천호 경찰대학장 그리고 제일저축은행 유동천(구속기소) 회장으로부터 수천만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던 이철규 전 경기경찰청장이다. 이 전 청장은 대기발령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기자와 만나 “향후 재판이 마무리되면 조직에 복귀해서 명예를 회복하겠다”라고 말했다.  

경찰 내에서 ‘경찰대 폐지’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현재 경찰 내의 주요 요직은 경찰대 출신들이 사실상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찰대는 지난 1980년에 경찰 고급 간부 양성을 위해 설립되었다. 현재까지 3천2백여 명을 배출했고, 이 중 1천3백여 명이 현직에 남아 있다.

지난 8월 말을 기준으로 총경급 이상 간부 중 경찰대 출신이 40%가 넘는다. 지방청장들도 상당수는 경찰대 출신으로 채워졌다. 여기에다 경찰 내 요직인 기획, 인사, 정보 등을 경찰대 출신들이 차지한 것으로 알려져 “경찰대 출신들이 경찰을 움직인다”는 말이 나온다. 경위 이하 하위직 경찰들은 ‘경찰대 폐지’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일반 출신들은 경찰대 출신들이 간부 자리를 독식하면서 승진 문턱이 좁아진 것에 대해 불만이 많다. 현재 경감까지 근속 승진이 가능해졌지만 경찰대와 비경찰대 간의 알력은 여전하다.

전·현직 경찰관의 최대 커뮤니티인 무궁화클럽은 대선 후보자에게 ‘경찰 10대 개혁 요구 사항’을 전달한 상태이다. 여기에는 ‘경찰대 폐지’도 들어 있다. 무궁화클럽에 따르면 “조직 내 특권을 누리고 패권적인 행위로 희망보다 실망을 안겨주고 있는 경찰대, 간부 후보, 고시 등 출신자들에게 먼저 열악한 현장 근무를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동대(3년), 지구대(3년), 형사(3년) 의무 근무를 하도록 하고, 경무관 이상 출신별 쿼터제를 도입해 조직 내 패권적인 행태를 없애야 한다. 경찰대는 이제 조직에서 순기능의 수명을 다한 것 같다”라고 밝히고 있다. 

하위직 경찰 ‘직장협의회’ 추진에 박차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는 경찰 개혁안으로 ‘경찰대 폐지론’을 들고 나왔으나, 경찰대 등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쳤다. 경찰대 폐지론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리고 있지만 당장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대 출신들이 요직을 장악한다거나, 파벌을 형성해 ‘끼리끼리 싸고돈다’는 등의 내부 불만이 터져나올 경우 폐지 여론에 직면할 수도 있다.

차기 정부에서 경찰대 출신 첫 청장이 나올지도 관심사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윤재옥 전 경기경찰청장(현 새누리당 의원)이나 이강덕 해양경찰청장이 청장 후보로 유력했으나, 바로 눈앞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첫 청장의 영예는 강경량 경기경찰청장이나 서천호 경찰대학장에게 기대를 걸어야 한다. 이 중 서학장은 경기경찰청장 재직 때 수원 20대 여성 피살 사건이 발생했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혔으나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다며 철회한 전력이 있다. 서학장은 조현오 전 청장의 측근으로 조청장이 자신의 후임으로 물밑 작업을 했다는 후문이다.

경찰 내부에서 주목되는 또 하나의 움직임은 ‘경찰직장협의회’이다. 하위직 경찰관들은 ‘수사권 독립’보다는 먹고사는 문제가 더 급하다고 말한다. 무궁화클럽은 ‘경찰직장협의회’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실무진도 구성하고, 몇 차례 모임도 가졌다. 폴네띠앙 회원들도 자체 모임을 갖고 경찰 조직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 직장협의회 설립 허용을 요구하기로 결의했다. 현행 공무원직장협의회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은 경찰과 소방공무원 등 일부 직종은 직협을 만들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 경찰 최대 현안으로 ‘직장협의회 추진’이 부각될 전망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정애 의원(민주통합당)은 소방·경찰 공무원도 직장협의회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공무원직장협의회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한 상태이다.

한정애 의원은 “경찰 내부에 막혀 있는 소통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직장협의회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보고 있다. 김성복 무궁화클럽 회장도 “경찰 개혁과 발전 그리고 조직원들의 복리 증진을 위해서는 ‘직장협의회’가 꼭 필요하다. 직장협의회가 관철되면 지휘부의 독단을 견제하고, 국민을 위한 경찰이 될 수 있다. 경찰 조직을 망가뜨리자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합심해서 건강하고 투명한 조직을 만들자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4대 권력기관’ 중에서 경찰은 색깔이 없다. 지금까지 경찰은 독자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군사 정권 시절에는 ‘권력의 시녀’로 내몰렸다. 권력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허수아비’였다. 절대적인 힘에 충성하는 ‘권력의 도구’였던 셈이다.

경찰은 오명으로 얼룩진 과거를 털고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 조직 내부에서는 ‘국민의 경찰’로 거듭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조직이 확 바뀔 수는 없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당장 눈앞에 다가온 ‘수사권’에 들떠 있을 때가 아니다. 나중에 ‘경찰 수사권’이 치명적인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지금 검찰이 받는 고통보다 더한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국민들은 경찰에게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경찰’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경찰’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주문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해 5월4일 경찰청에서 역대 치안총수 간담회가 열렸다. ⓒ 연합뉴스
경찰은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91년에 ‘경찰청장’ 시대를 맞았다. 초대 김원환 청장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17명의 청장(현 김기용 청장 포함)이 거쳐갔다. 이 중 초대 김청장을 제외한 나머지 16명은 생존해 있다.

역대 경찰 수장들은 자신의 정치력에 따라 명암이 엇갈렸다. 공기업 사장, 기업 고문, 정부 기관, 국회의원 등으로 행보를 달리했다. 화려한 뒤안길은 없었다. 역대 검찰총장 37명 중 16명이 법무부장관으로 수직 상승한 것에 비해 경찰청장은 단 한 명도 장관으로 올라간 적이 없다.

오히려 불운을 겪은 청장이 많았다. 퇴임 후 검찰청사를 드나든 사람이 적지 않았다. 역대 청장 16명 중 절반이 넘는 9명이 개인 비리 등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이 중 5명이 구속된 전력이 있다. 15대 강희락 청장은 함바집 비리로 구속되어 지금도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16대 조현오 청장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 계좌 발언으로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경찰청장들은 정치권과는 별로 인연이 없었다. 지금까지 정치권에 입문해 국회의원 배지를 단 사람은 단 두 명뿐이다. 4대 김화남 청장은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지만 배지를 단 지 4개월여 만에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9대 이무영 청장도 제18대 총선에서 무소속(전주 완산 갑)으로 여의도에 입성했지만,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고 ‘7개월 배지’ 신세가 되었다.

이 전 청장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의 공동경선선대본부장을 맡았으나 ‘이념이 다르다’라며 중도 사퇴했다. 그는 지난 10월 새누리당에 입당해, 전북도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다.

12대 허준영 청장도 정치권 문을 두드렸다. 허 전 청장은 퇴임 후 코레일(철도공사) 사장에 임명되었으나, 19대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했다. 새누리당 후보로 서울 노원 병에 출마했으나 쓴잔을 마셨다. 현재는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직능총괄본부 사회안전본부장이다.

11대 최기문 청장은 역대 청장 중 유일하게 기업에 몸담았다. 그는 2005년에 한화그룹 비상임 고문으로 영입되었다. 하지만 2010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대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최 전 청장도 끊임없이 정치권 진출을 모색했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공천에서 탈락했고, 19대 때는 경북 영천에서 무소속으로 나섰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6대 조현오 청장은 청장 재직 때부터 정치권 진출설이 나돌았다. 그는 지난 4월 수원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토막 살해 사건의 책임을 지고 불명예스럽게 옷을 벗었다. 그 후 청소년폭력예방재단 고문으로 위촉되었으나 별다른 활동이 없었다. 지난 7월에는 새누리당에 입당해 국책자문위원에 위촉되었다. 같은 달 부산 지역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출마를 앞두고 서울과 부산에서 회고록 출판기념회까지 열었지만 헛물만 켰다. 

퇴임 후 다른 정부 기관에 발탁된 사람은 세 명이다. 5대 박일룡 청장은 안기부 제1차장으로 들어갔다. 7대 김세옥·14대 어청수 청장은 퇴임 후 행보가 비슷하다. 김 전 청장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을 거쳐 노무현 정권에서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냈다. 어 전 전 청장도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을 지낸 후 청와대 경호처장에 발탁되었다.

그 밖에 1대 고 김원환 청장은 신용관리기금 이사장을 거쳐 2002년 4월부터 대한민국 재향경우회 제16대 회장을 맡았으나 2년 후에 지병으로 별세했다. 3대 김효은 청장은 사회복지법인 청지기재단 이사장을 맡았으며, 6대 황용하 청장은 한국전력공사 감사를 지냈다. 8대 김광식 청장은 제3대 경북도립대 학장을 역임했다. 한편 김세옥(7대)·이팔호(10대)·이택순(13대) 전 청장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 중 이택순 전 청장은 문후보의 대선 특보단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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