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중산층에 멕시코가 다시 보이네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2.12.0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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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FTA 수혜 입어 경제 새 바람

엔라케 페냐 니에토 신임 멕시코 대통령의 당선 뒤에는 새롭게 등장한 ‘중산층’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다. ⓒ EPA 연합
마약과 빈부 격차로 신음하던 멕시코에 중산층이 등장했다. 사회의 다수가 된 이들은 정치 개혁과 부패 추방, 공무원의 책임을 추구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다. 이들을 태동시킨 원동력은 ‘가난 숙명론 탈출’이다. 그래서 줄기차게 재산을 늘리고 미래 지향적으로 돌진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먹는 문제로 고민하지 않는다. 주부들은 오히려 아이들이 너무 많이 먹을까봐 걱정한다. 국민들은 겨우 10여 년 만에 달라진 자신들의 모습을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이러다가 갑자기 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함도 느낀다. 반면, 이제는 풍요를 누려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가난은 이제 그만’을 저술한 전 멕시코 통상차관 루이스 드라 칼레는 “이제는 중산층 사회의 국민으로 행동해도 무방하다”라고 말했다.

불법 이민자 신분으로 미국으로 넘어가 밥벌이를 하던 시절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불법 이민자들은 속속 고국으로 귀국했다. 이들은 이제 중산층의 주축 멤버가 되어 가난했던 시절을 추억한다. 2006년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우파의 국민행동당 후보 펠리페 칼데론에게 승리를 안겨준 것도 이들 중산층이었다. 그의 빈부 해소 공약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중산층은 지난 7월 대통령 선거에서 또 한 번 이변을 연출했다. 과거 12년간 독재를 했던 제도혁명당의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그의 개혁 정책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 이유이다.

정치적으로 볼 때 멕시코 중산층은 분열되어 있다. 중산층 부활을 가져온 정당을 지지하기도 하고, 민주화를 강조하는 정당을 선호하기도 한다. 이들 중산층이 공통적으로 걱정하는 것이 있다면 어렵게 성취한 오늘의 부를 상실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1990년대의 경제 위기가 재연되는 것을 제일 무서워하는 셈이다. 그래서 이념이 무엇이든 반(反)시장경제적인 정치 세력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가까스로 중산층 대열에 끼어든 한 30세의 직장인은 책상 위에 매드맨 TV 시리즈의 DVD와 중산층의 필독서 <기원(fountainhead)>의 스페인어판을 열독하면서 현재의 처지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멕시코 중산층은 중부 고원의 산업지구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번영을 이끈 것은 자동차 산업이다. 수도인 멕시코시티에서 북쪽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인구 100만명의 게레타로에는 새로운 상업지구와 공원들이 즐비하다. 일자리가 있고 치안이 보장된 이곳으로 수많은 사람이 몰려온다. 일부는 마약과 폭력으로 악명 높은 북부 도시 몬테레리에서 이주해왔다. 납치, 강탈, ‘묻지 마 살인’에 진절머리가 난 사람들이다. 그런 곳에 비해 게레타로는 조용한 주거 도시이다. 살인 사건 발생률은 10만명당 3.2명으로 미국의 위스콘신 주와 비슷하다. 

물론 중산층의 삶은 공짜가 아니다. 주 60시간의 노동이 있어야 한다. 그래도 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노동 뒤의 대가로 대형 마트 코스트코는 늘 붐비고 테니스 코트는 항상 만원이다. 열네 살짜리 중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어학 학원은 연중무휴이며 여가를 위해 사람들은 영화관 티켓 구매에 5달러를 기꺼이 지불하고 있다. 이런 도시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수혜를 입은 곳이다. 이 협정이 주는 혜택을 최대한 챙겼다. 항공기 제조 산업에 수십억 달러의 외국 자본이 들어왔다. 아에로스페이스·제너럴일렉트릭·지멘스 같은 글로벌 회사들이 이곳에 자리 잡았다.

“나는 중산층이다” 65%에 달해

게레타로 외곽에는 1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유토피아 도시가 건설되고 있다. 이 도시는 ‘지바타’로 불린다. ‘인공 세계(made-up world)’라는  뜻이다. 지바타는 일종의 문으로 통하는 공동체(gated community)가 될 모양이다. 이 시설의 모든 입구에는 체크포인트가 설치되어 얼굴 인식 소프트웨어를 통해 입주자를 확인한다. 이곳은 중산층의 공간이다. 중산층이 타깃인데 모든 시설은 고급 아파트와 타운하우스로 구성되었다. 시설들은 자전거 도로로 연결되고 그린벨트와 간이 점포가 필요한 곳마다 위치해 있다. 시설의 기본 콘셉트는 ‘포용’이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이웃 친화적인 곳이다. 지바타의 슬로건은 ‘불가능한 곳의 가능’이다.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멕시코에서 이는 모든 멕시코인들의 소망이기도 하다. 

요즘 멕시코에서는 중산층의 숫자와 그 측정 방식을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미국에서는 납세액을 통해 중산층을 계산하지만 인구 1억1천만명의 멕시코에서는 그 셈법이 복잡하다. 주택 소유자가 얼마를 소비하는가, 냉장고와 자동차는 있는가, 스마트폰은 몇 개인가를 따진다. 이 모든 것을 합친 소비 규모를 기준으로 중산층을 정한다.

중산층을 분류하는 또 다른 방식은 인식의 차원이다. 우선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생각하면 중산층이다. 지난 2월에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5%는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대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27%는 빈민으로, 2%는 상류층이라고 대답했다. 지갑 사정으로만 따지면 멕시코가 급성장하고 있지는 않다. 연평균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2~3%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나라 국민들은 자신이 곧 중산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대한다. 중소기업연구소장 윌리 아자르코야 씨는 “이런 태도 적응(attitude adjustment)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아직 멕시코 전체가 온통 장밋빛 공간은 아니다. 인구의 4분의 1 이상, 심지어 절반 정도는 아직 가난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멕시코의 빈곤층은 2008년 세계적 불황 때문에 약간 늘어났지만, 중산층 역시 서서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동 인구의 45%는 여성이며 대다수는 맞벌이 부부이다. 지금 멕시코의 도로에는 2천만대의 자동차가 질주하고 있는데 1980년대의 4백만대에 비하면 증가세가 뚜렷하다.

많은 신흥 개도국 구직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가지만 멕시코에서는 그런 부류가 거의 없다. 국내에 많은 일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탄생은 여성들의 출산 인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한때 7.3명이던 출산율은 2.3명으로 줄어들었다. 미국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희망 수입은 월 1천~1천5백 달러, 최고 목표 연봉은 3만1천 달러이다. 선진국에 비하면 그리 높지도 않지만 멕시코인들은 이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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