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떠러지에 선 경제가 초당적 협력 끌어낼까
  • 한면택│워싱턴 통신원 ()
  • 승인 2012.12.0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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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재정 절벽’ 해법 위해 오바마-공화당 타협 나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1월28일 백악관 내 아이젠하워빌딩에서 의회의 세금감면안에 대해 발언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 AP 연합
미국 경제가 2012년 말, 다시 벼랑 끝에 섰다. 이른바 ‘재정 절벽(Fiscal Cliff)’에서 추락할 위험에 직면해 있다. 재정 절벽이란, 한꺼번에 정부 지출 예산이 대폭 축소되어 유동성이 위축되고 동시에 세금이 급격하게 많아져 경제에 직격탄을 가하는 것을 뜻한다.

워싱턴 정치권은 기존 합의에 따라 새해 1월부터 정부 지출 예산을 대폭 삭감해야 한다. 그 액수만 10년간 1조2천억 달러에 달한다. 첫해인 2013년 한 해에만 1천100억 달러가 삭감된다. 그 가운데 절반인 5백50억 달러는 국방비이며 나머지 5백50억 달러는 일반 예산이다. 특히 일반 예산에서는 실업수당 2백60억 달러를 포함해 노년층 의료보험인 메디케어와 교육 예산 등에서 줄어들기 때문에 서민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게다가 10년 이상 시행되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감세 조치가 올해 말로 종료되면서 새해 1월부터는 세금이 급격히 늘어난다. 경기 침체로 사회보장세를 2%씩 감면해준 감세 혜택 역시 함께 소멸한다.

미국 세금정책센터(TPC)의 전망에 따르면 두 가지 감세 조치가 사라질 경우 미국 국민의 약 90%가 새해부터 대폭 오른 세금을 내야 할 처지에 놓인다. 가구당 한 해 동안 내야 할 세금이 약 3천5백 달러이다. 중산층은 2천 달러 정도 더 내야 하고 저소득층마저도 약 4백 달러씩을 더 물어야 한다. 최고 부유층의 경우에는 가구당 증세액이 약 12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 의회예산국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재정 절벽 타개책을 연말까지 마련하지 못한다면 내년 미국 경제는 다시 침체기에 접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국민 대다수가 세금을 더 내면 그만큼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소비 지출이 대폭 감소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미국 경제에서 자국민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70%이다.

재정 절벽에 빠질 경우 마이너스 성장 예상?

실제로 재정 절벽에 빠질 것을 가정한다면 2012년에 1.7% 성장한 미국 경제는 2013년에 -0.5% 후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마이너스 성장이 현실화하면 7.9%인 실업률은 내년 4분기에 9.1%로 급등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2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재정 절벽 피하기’에 총력전을 펴야 하는 상황이다. 이미 공화·민주 상하원 지도부와 협상에 돌입했다. 정가에서는 협상은 결국 ‘담판’으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마지막 순간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얼굴을 맞대고 결론지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 두 사람은 지난해 재정 적자 감축안과 부채 한도 상향을 두고 대타협을 시도했지만 결국에는 합의점을 찾지 못한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워싱턴 정치권은 재정 절벽을 피하기 위해서 부자들의 세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방법론에서 차이를 보인다. 민주당은 부유층의 소득세 인상 방법을 고수하고 있고 공화당은 세제 혜택을 제한하는 방법을 선호하고 있다. 민주당은 감세 조치의 일부를 올해 말 만료시켜 가구당 연소득 25만 달러 이상인 부유층의 소득세율을 현행 33%는 36%로, 35%는 39.6%로 환원해 10년간 1조 달러를 더 거두어들이자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부유층이나 대기업에 대한 세액 공제에 상한선을 두는 방법을 추가해 6천억 달러를 더 징수하자는 주장이다. 민주당의 방법대로라면 총 10년간 1조6천억 달러의 세수를 늘리는 것이 가능하다.

반면, 공화당은 모든 계층의 감세 조치를 일괄 연장해야 하며 부자 증세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용 불가’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대신 연소득 25만 달러 이상의 부유층에게는 기부금이나 주택 모기지 등에서 세액 공제 상한선을 2만5천 달러 또는 5만 달러로 정해 그만큼 세입을 늘리자고 말한다. 공화당의 방안은 세금 인상이라는 ‘논란’은 피할 수 있지만 대신 거두어들일 수 있는 세금이 민주당 안보다 많이 적은 6천억 달러에 불과하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협상을 통해 나올 수 있는 네 가지 시나리오가 주목되고 있다. 하나는 민주·공화 양 진영이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해 재정 절벽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최악의 결과이지만 이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가 당할 정치적 재난을 고려해본다면 실현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임시 연장 조치 취한 뒤 해법 논의가 유력

최종 결정을 올해가 아닌 내년으로 미루는 방법도 있다. 올해 안에 결정을 내리지 않고 내년 1월에 구성되는 차기 의회가 해법을 논의하는 방안이다. 아니면 아예 몇 달 동안 ‘임시 연장 조치’를 취한 뒤 시간을 충분히 두고 해법을 찾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마지막으로 이른바 ‘대타협’에 성공하는 것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한 부유층 증세와 공화당이 내놓은 세액 공제 축소 방안을 서로 절충해 합의한다는 시나리오이다. 지금 상황으로만 놓고 보면 두 번째나 세 번째 시나리오가 실현된 가능성이 유력하다. 감세 조치를 일단 일정 기간 연장한 뒤에 해법을 다시 논의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만약 재정 절벽을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한다면 미국 국민의 생활 그리고 미국 경제 모두 엄청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정치권이 파국으로 치닫게 내버려두기 어렵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말 안에 재정 절벽을 피하도록 의회 지도자들과 협력하고 열린 마음으로 타협에 나설 것이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민주·공화 양당 지도부도 “연말 안에 해법을 마련해 재정 절벽을 피할 수 있다”라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만약 예상하지 못했던 폭풍우가 몰아닥친다면 속수무책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재정 절벽은 이미 예견되고 알려진 문제였다. 낙관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어떤 식으로든 모종의 답변은 내놓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워싱턴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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