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선심성 예산 편성 안 된다
  • 김용철 |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 ()
  • 승인 2012.12.0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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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증액 법적 요건도 강화할 필요 있어

국회 예결위계수조정소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11월26일 내년 예산안을 심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사업 챙기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선심으로 예산을 요구하는 규모가 1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올해에는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예산 증액 요구가 극심해졌다. 현재 예산 심의가 끝나지 않은 법사위원회의 증액분까지 합하면 12조원을 훨씬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실질적으로 정부 편성 예산의 3.5% 이상이 국회의원들에 의해 추가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의 예산 심의는 예산 편성과 집행 및 결산의 전 과정 중에서 가장 정치적이다. 여당과 야당의 충돌과 대립은 물론이고 같은 당내에서도 많은 불협화음이 일어난다.

이대로 가면 국가 재정의 파탄 면할 길 없어

이러한 선심성 예산의 근원에는 국가적인 사업에 따르는 재정 지출 상황을 반영한 것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국회의원의 지역구 민원과 사업 챙기기에 따르는 특별교부금과 관련이 있다. 특별교부금은 원래 지역의 특별한 재정 수요가 있거나 재정 수입의 감소가 있을 때 또는 자치단체 공공 복지시설의 신설 확장에 근거해 지출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역구 민원 챙기기가 과도해지면 국가 재정 지출의 비효율성이 나타나게 된다. 정부의 예산 편성은 당해 연도의 재정 상황에 따라 균형 예산에 기준을 맞추어 편성해 제출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이러한 균형 예산의 원칙이 지켜지는지 견제하고 통제해야 할 국회에서 오히려 원칙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행정부 예산의 국회 수정률은 예년에 비추어보면 너무 낮아서 문제였던 것인데, 최근에는 이렇게 국회의 예산 증액 요구가 무리하게 추진됨으로써 정부 예산 관리의 합리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여당은 전통적으로 정부 제출 예산안의 정당성과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옹호하고, 야당은 대폭적인 축소를 요구하며 대치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야 할 것 없이 선심성 무리한 지원 요구가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물론 상임위원회의 예산 심사 과정에서는 증액 위주의 행태가 관례화되어오고 있다. 이러한 증액 지향적 상임위원회의 예산 심사 운영은 전체 국회 운영의 효율성 측면에서 보면 세입과 세출의 균형 예산을 고려하지 않은 단견적·즉흥적 예산 심의의 한 형태로밖에 볼 수 없다. 상임위원회 심사 과정에서의 예산 증액은 자신의 지역구 민원 챙기기의 하나이다. 무리하게 예산을 확보하려는 것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는 지역 주민에게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고, 차기 재선을 위해 텃밭을 유리하게 다지기 위한 것이다.

국회의원이 지역 주민을 대표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지역구 예산을 확보하는 행위는 사실 당연한 일로 보여지기도 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지역 주민에 대한 대표성은 전체 국민의 대표성보다 후순위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비록 지역 주민에 의해 당선되었지만 전체 국민의 이익을 위한 의정 활동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 제46조에서도 이러한 국가 이익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오히려 지역 주민의 대표성과 연계되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정당 대표성의 개념이다. 영국과 독일 등은 지역 주민의 이익과 정당 이익을 동시에 강조하는 양립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경우 여당이 정부 예산 원안 통과를 강조하고, 야당은 대폭 축소를 주장해 대립하는 것과 같은 논리일 것이다.

예산안 심의 기간, 현실적으로 너무 짧아

예산 심의는 전체 정부 활동이나 사업의 방향과 그 내용을 결정짓는 중요한 대정부 의정 활동 중 하나이다. 지나친 지역 대표성과 정당 대표성의 논리는 지양되어야 한다. 전체 국가 자원 배분의 효율성과 국가 재정의 균형성을 기준으로 국민 전체의 공공 이익을 중심으로 예산 심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지역구 예산을 지나치게 확보하기 위한 국회의원들 간의 경쟁이 심화될 경우 국가 재원의 한정성을 감안한다면 특정 지역이나 특정 계층에 대한 불균형적인 예산 집중을 가져오게 된다. 이것은 반대로 다른 지역과 계층의 예산 감소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렇지 않고 국가 예산의 전체 지역구 증액이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결국 누구도 중앙 정부의 적자 예산을 걱정하지 않는 ‘공유지의 비극’을 초래함으로써 국가 재정의 파탄을 면할 길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국가 재정과 지방 재정이 불균형적인 상황이다. 중앙과 지방의 재정 불균형성을 선진국형의 균형 재정 상황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한 국가적 재정 과제이다. 결국 국회의 편파적인 예산 심의는 재정 민주주의를 더욱더 역행시키는 일이다. 예산 심의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전문성을 향상시켜 좀 더 효율적인 심의로 행정부 예산 편성을 통제한다면 지역구 사업에만 신경 쓰는 무리한 요구도 어느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상임위원회에서 증액된 지역구 예산에 대한 요구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정당화되고,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상임위원회의 예산 증액 요구에 관한 법적 요건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재 상임위원회 예산 심의 과정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제도적인 참여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은 예산안 심의에 대한 의사를 투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 국민 세금에 대한 예산액의 심사라는 측면에서 향후 국민들의 요구나 의사가 투입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절차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예산안 심의 기간이 현실적으로 너무 짧은 것도 예산 심의의 효율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이다. 예산 심의 기간이 짧으면 예산 심의에 대한 국회의원 간 의견 교환보다 자신의 지역구 예산을 확보하는 데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다.

행정부 예산의 졸속 심의와 지나친 지역구 예산을 확보하려는 경쟁에는 당리당략과 지역구의 상호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여기에 지역구 국회의원의 정치적 입지 강화에 대한 과대한 욕구가 결합되어지게 되면 결국 정부 예산에 대한 심도 있는 심의와 정부 사업의 효율적 통제가 될 수가 없다. 특히 특별교부세의 경우 힘 있고 정치력이 뛰어난 국회의원의 지역구에 많이 배정되고, 그렇지 않은 국회의원의 지역구에 적게 배분되는 불공정을 초래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의 지역·계층 간 위화감과 불신감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의 관심이 대통령 선거에 집중되는 것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이익 확보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공공 이익을 위해 국가 재원의 효율적인 예산 배분이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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