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와 김정은의 생존 게임
  • 한면택│워싱턴 통신원 ()
  • 승인 2012.12.1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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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북한 미사일에 솜방망이 대응도 어렵고 강경책도 여의치 않아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장거리 로켓 발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국·일본·중국·러시아뿐 아니라 미사일이 영해에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필리핀까지 정보 수집에 나섰다. 가장 크게 고민하는 나라는 역시 미국이다. 집권 2기를 막 시작하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다시 대북 딜레마에 빠져들었다. ‘북한의 도전’과 ‘미국의 대응’이 되풀이될 때마다 대응 수위를 결정하는 것이 미국의 딜레마였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사망 1주기를 맞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벼랑 끝 전술은 미국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그런데 그의 아들조차도 같은 방식으로 도전하자 오바마 정부는 난감해하는 분위기이다. 아직 김정은의 의도나 방향이 확실치 않은 상황이지만 집권 1기 4년 내내 써온 ‘전략적 인내’를 고수해야 할지, 아니면 집권 2기에 맞춰 좀 더 강한 채찍을 들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일단 미국 국무부만 걱정을 하며 경고장을 보내고 있을 뿐 국방부나 백악관은 북한의 미사일에 관련한 언급을 최대한 피하는 듯한 인상이다. 미국 정부 체계로 볼 때 국무부가 주로 언급할 때는 외교적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만약 국방부가 움직인다면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징표이다.

북한이 로켓 발사 계획을 공표하자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은 성명을 발표하고 미사일 발사를 도발 행위로 규정하며 “발사하지 마라”라고 요구했다. 퇴임하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역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러시아의 합동회의에서 “동맹국들과 러시아가 북한이 계획을 취소하도록 압박해달라”라고 요구했다.

2012년 핵안보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3월25일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방문해 망원경으로 북측을 보고 있다. ⓒ AP 연합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주변국들이 모두 정권 교체기를 맞고 있는 시기에 김정은 정권이 로켓을 발사하면 대응 수위를 정하는 데 고심하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지금까지 핵이나 미사일 카드로 위협을 해왔던 시기를 분석한 결과 ‘한반도 주변국이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에 이런 위협이 많았다’라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정권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북한이 주변국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럴 경우 새롭게 시작하는 오바마 행정부는 주변국과의 조율도 새판에서 할 수 있다. 이전과 같은 솜방망이 대응을 하기도 멋쩍고 그렇다고 좀 더 강한 채찍을 휘두르는 것도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오바마의 우선순위는 ‘중동’

스나이더 연구원의 분석은 이렇다. 지난 4월 실패한 로켓 발사에 대해서 북한을 ‘강력히 규탄하는(strongly condemn)’ 안전보장이사회 ‘의장 성명’을 채택했는데도 이미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셈이라 그때보다 더 강력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안보리에서 추가 제재를 모색하자니 중국 등의 반대에 부딪힐 게 뻔하기 때문에 주변 상황이 여의치 않다. 특히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초강경 대응은 피해야 하는 처지라 마땅한 채찍을 선택하는 데 애를 먹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미국 등 국제 사회의 대응 방식과 수위를 결정짓는 잣대는 미사일 발사의 성공 여부이다. 지난 4월에 이어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대응 수위가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번처럼 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을 채택한 정도에서 그칠 수 있다.

하지만 성공할 경우라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는 탄도미사일, 특히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기술을 시험하려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워싱턴 정가는 그동안 북한의 최장거리 대포동 미사일 능력과 핵탄두 개발 및 탑재 가능성에 대해 우려해왔기 때문에 성공할 경우 오바마 행정부는 좀 더 센 채찍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여기에 미국의 딜레마가 있다. 스콧 스나이더와 저명한 물리학자인 데이비드 라이트 등 미국 내 안보 전문가들은 두 갈래로 분석하고 있다.

하나는 북한의 최장거리 미사일 능력과 핵탄두 개발이 아직까지 위험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강경하게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북한의 최장거리 미사일 기술로는 미국 본토를 타격하기 어렵다고 본다. 현재로는 북한의 최장거리 미사일이 약 1t의 탄두를 싣고 8천km를 비행할 수 있는데 그래봐야 하와이, 잘해야 알래스카까지가 사정권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은 북한이 핵심인 미사일 탑재용 핵탄두를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핵탄두는 이번 장거리 로켓에 탑재하고 있는 인공위성보다 10배 정도 더 무겁다. 심지어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김정은 비서가 대화에 소극적인 군부 강경파를 고려하기 위해서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면서 일시적으로 대미 정책을 흔드는 것이다. 곧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가능성도 있다”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다음으로 오바마 정부가 져야 할 미국의 안보 부담이 문제이다. 만약 한반도에서 긴장이 높아져 미국의 안보 부담이 가중되는 것은 오바마 정부가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집권 2기를 시작하면서 한반도보다 더 다급한 외교·안보 난제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 사태에도 본격 개입해야 하고 새해 봄에는 이란의 핵무장을 막기 위한 수를 내야 한다.

혹여나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하려 할 경우 외교적 결단을 묵인할 것인지 측면 지원할 것인지 결단해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에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으로 중동 아랍 정책도 재점검해야 한다. 아시아 중시 정책을 천명했지만 지금은 중동에 발목이 잡힌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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