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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망국론’의 ‘쌩얼’을 말한다

미국에서 만난 중남미 전직 대통령들, “위기 부른 진짜 원인은 따로 있었다”

미국 애틀랜타·이규대 기자 ㅣ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2.12.11(Tue) 15: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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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냐, 분배냐.’ 경제 운영의 철학을 둘러싼 고전적 논쟁의 구도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이기도 하다. 1980년대 이후 세계 경제에서는 성장 중심의 신자유주의 기조가 꾸준히 힘을 얻었지만, 지난 2008년 이래 상황은 변했다. 미국발 금융 위기, 유럽발 재정 위기 등이 잇따라 세계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시장의 실패’가 노출된 지금, 국가 주도의 분배 쪽에 무게중심이 실린 복지 담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시장을 신봉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정부의 개입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복지 확대’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의 공통 정책 기조가 되었지만, ‘복지 망국론’ 혹은 ‘복지 포퓰리즘’ 등을 거론하며 반감을 표시하는 이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흔히 그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중남미 국가들의 사례이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이 복지 지출로 인해 성장 동력을 잃었고, 이로 인해 경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것은 과연 사실일까? 정말 중남미 국가들은 복지에 손을 댄 까닭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시사저널>은 중남미 국가에서 실제로 국정 운영을 경험한 전직 대통령들로부터 생생한 ‘증언’을 듣는 기회를 가졌다. 지난 11월28일부터 12월1일까지 미국에서 열린 ‘GPC(Global Peace Convention) 애틀랜타 2012’ 행사장 현장에서였다.

   
11월 28일 ‘GPC 애틀랜타 2012’에 참석한 중남미 전직 대통령들이 카터센터에서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 글로벌피스재단 제공

글로벌피스 재단(Global Peace Foun- dation)이 주최한 ‘GPC 애틀랜타 2012’는 세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국제 콘퍼런스였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이번 행사에서는 중남미 지역 9개 국가의 전직 대통령 10명이 참석해 총 5회에 걸친 정상회의를 가진 점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들 전직 대통령은 ‘도덕적이며 혁신적인 리더십’의 실천에 대해 논의하는 한편, 아메리카 대륙의 공동 번영을 위한 해결 과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모임을 결성했다고 선언했다.

<시사저널>은 10명의 전직 대통령 가운데 특히 두 인물에게 주목했다. 라파엘 이폴리토 메히아(Rafael Hipolito Mejia) 전 도미니카공화국 대통령, 루이스 알베르토 라칼레(Luis Alberto Lacalle)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다. 두 사람은 이번 정상회의에 참석한 인사들 중 정치적 지향 면에서 가장 거리가 먼 사이로 꼽혔기 때문이다. 메히아 전 대통령은 분배를 강조하는 중도 좌파 성향, 라칼레 전 대통령은 시장 경쟁을 강조하는 중도 우파 성향이다.

도미니카공화국과 우루과이는 집권 정부의 정치적 성향 면에서 정반대의 궤적을 그려왔다. 도미니카공화국은 2000년대 초반 메히아 전 대통령의 집권 당시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사회안전망을 대폭 확대했다. 그러나 이후 정권 교체로 들어선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차관을 도입하면서 긴축 재정을 바탕으로 한 개혁 프로그램을 이행했다. 메히아 전 대통령이 도입한 복지 프로그램은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왼쪽’으로 갔다가 급격하게 ‘오른쪽’으로 돌아선 셈이다. 우루과이의 경우는 반대였다. 우파 정권이 집권하던 1990년대 우루과이 경제는 안정적인 성장률을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 2002년 아르헨티나 국가 파산의 영향을 받아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이를 계기로 좌파 정권으로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이후 현재까지 복지 확대 및 분배 중심의 정책이 이어져오고 있다.

따라서 두 전직 대통령이 중남미의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를 수밖에 없다. 기본적인 정치 성향의 차이에다 양국의 상반되는 사회적 상황이 작용한 결과이다. 메히아 전 대통령이 사회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복지 정책을 통해 사회 안정을 가져올 수 있음을 강조했다면, 라칼레 전 대통령은 복지의 필요성을 공정한 경쟁 및 기회 균등을 보장하기 위한 정도로 한정했다(인터뷰 기사 참조).

하지만 두 사람은 복지 확대의 기조가 중남미 경제에 위기를 가져왔다는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에 의견을 함께했다. 메히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봉착했던 경제 위기가 자신의 복지 프로그램 때문이 아니라 부패 때문이었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도미니카공화국뿐만이 아니라, 정치권 및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야말로 중남미권 경제를 위기에 빠트리는 문제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복지 망국론’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인 셈이다.

우파 성향의 라칼레 전 대통령 또한 복지 정책 자체가 문제라고 보지는 않았다. 그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보장하기 위한 복지 프로그램의 필요성은 인정하되, 잘못 설계된 제도로 인해 비효율과 낭비가 발생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복지 서비스에 투입된 재정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정교한 정책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좌우가 합의한 복지 정책 핵심은 ‘교육’

이들은 무엇보다 복지 문제가 극단적인 이념 갈등 양상으로 번지는 것을 경계했다. 메히아 전 대통령은 “나는 좌파 성향이지만 자본주의 이념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근본주의적으로 가면 항상 문제가 생긴다. 성장 또한 중요한 과제이다. 삼성·현대·LG 등 세계적인 대기업을 배출할 만큼 유례없는 성장을 일군 한국의 사례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라칼레 대통령 또한 좌파의 세계관에 대해 ‘서로 보완해나가야 할 대상’으로 말하는 등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두 사람은 ‘교육 복지’의 필요성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이념이야 어떠하든, 국가 지원이 바탕이 된 양질의 교육 서비스가 국가를 번영하게 하는 가장 기초적인 원칙이라는 데 합의를 이룬 것이다. 메히아 전 대통령은 “특히 제도적 평등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타이완·한국·독일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참고해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에 적용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라칼레 전 대통령도 교육 복지를 두고 효과적인 ‘투자’라고 규정하는 등 메히아 전 대통령과 같은 견해를 보였다. 

 

“위기는 복지가 아니라 부패 때문”
- 라파엘 이폴리토 메히아(Rafael Hipólito Mejía) 전 도미니카공화국 대통령

   
ⓒ 글로벌피스재단 제공

2000~04 도미니카공화국 대통령 역임
- 증세 통한 사회안전망 구축 추진
- 치안,건강,교육,주거 서비스 지원 및 소규모 자영업 육성
2012 도미니카혁명당(PRD) 대선 후보

재임 당시 중도 좌파 성향의 정책을 시행했다고 알려져 있다. 어떤 것이었나?
증세를 바탕으로 빈곤층에 사회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건강·의식주 등에 많은 투자를 했다.

세금을 늘리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반발은 없었나?
증세에는 반드시 국민들의 반발이 따르게 된다.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재정을 집행하기 직전까지 조세 저항이 매우 컸다. 이에 대해서는 정부가 국민을 대상으로 설명하는 단계가 있었다. 세금이 사회안전망 확충에 쓰인다는 점을 충분히 설득한 후에는 반발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왜 후임 정부는 관련 정책을 이어가지 않았나?
이념적으로나 가치상으로나 나와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부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증세의 폭은 오히려 후임 정부에서 훨씬 컸다. 나는 10%만 올렸는데, 이들은 90%가량을 올렸다. 그러면서도 사회안
전망을 확충하지 않고, 세금을 행정 관료들을 배불리는 데 쓰면서 방만한 재정 운영을 했다.

이른바 ‘과잉 복지’가 중남미 국가의 경제 위기를 초래하고 성장을 가로막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세계의 상황을 보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경제가 상당히 안정적이다. 오히려 서구의 선진국들이 흔들리고 있지 않나?

하지만 재임 당시에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은 바 있었다. 그 원인은 무엇이었나?
당시의 위기는 복지 정책 때문이 아니었다. 주요 상업은행의 임직원들이 거액의 돈을 횡령했기 때문이었다. 경제 위기의 원인은 부패에 있었던 것이다. 이후 민간 영역의 청렴도는 크게 나아졌다. 하지만 정치인 및 행정 직원들의 부패는 도미니카공화국을 비롯한 중남미 지역에서 여전히 큰 문제로 남아 있다.

 

“정부의 재정 운용 실패가 중남미 발전 가로막아”
- 루이스 알베르토 라칼레(Luis Alberto Lacalle) 전 우루과이 대통령

   
ⓒ 글로벌피스재단 제공

1990~95 우루과이 대통령 역임
- 국영기업 민영화 추진
- 남미 4개국 자유무역시장 메르코수르(Mercosur) 설립
2009 국민(PN)당 대선 후보

현재 중남미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는 무엇이라고 보나?
정부가 무능해 재정 운용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많다는 점이 문제이다. 현재 좌파 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우루과이도 마찬가지다.

우루과이의 경우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나?
좌파 정부 집권 이후 공무원 수가 2만5천여 명이나 늘었다. 건강 및 의료 분야에서도 필요 이상의 지출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사회보험 제도를 잘못 설계해 재정을 크게 낭비하고 있다. 각 기업 노조원들 사이에 ‘개인이 필요한 것 이상을 벌어 축적하면 안 된다’라는 옛 마르크스 주의식 사고가 남아 있는 것도 문제이다.

바람직한 재정 운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국가 재정이 사용될 때 낭비되는 것이 있는 반면, 효과적인 ‘투자’가 되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사회 하층민을 위한 교육 분야에 재정을 투입하는 복지는 ‘투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루과이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별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 낭비하는 부분이 많다.

중도 우파 성향의 정치인으로서 당신이 지닌, 복지에 대한 철학이 궁금하다.
나는 개인이 (경쟁을 바탕으로) 수직 방향으로 상승할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을 믿는다. 복지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의 상층부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정도가 바람직하다.

중도 좌파 성향의 메히아 대통령과는 서로 의견이 충돌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서로의 입장이 완전히 대립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뿐이다.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생각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서로 보완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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