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도미노처럼 번지는 이 시대의 암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12.1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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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不安)이 이 사회에 만연하다. 10대는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안해한다. 20대는 취업, 30대는 결혼, 40대는 노후, 50대는 고립, 60대 이상은 건강에 대해 불안을 느끼며 산다. 각 세대의 불안은 다른 세대에 영향을 미친다. 암이 몸에서 각 장기로 퍼지듯이, 불안도 연쇄적으로 이 사회에 번지는 셈이다. <시사저널>은 예술가·경제학자·정신학자·사회학자·심리학자 등의 도움을 받아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불안을 다각도로 진단해보았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화랑에서 흥미로운 전시회가 열렸다. 책 한 권이 책상 모서리에 반쯤 걸쳐 가까스로 균형을 잡은 채 세워져 있다. 그 책 위에 동그란 양파가 있고, 또 그 위에 숟가락이 놓여 있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처럼 위태로운 모습의 사진이다. 발걸음을 조금 옮기면 또 다른 작품이 나타난다. 사각형 기둥 위에 고무줄을 실타래처럼 말아서 만든 공 모양이 있는데, 기둥 모서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바람만 불어도 곧 밑으로 떨어질 듯하다. 이 전시회의 주제는 ‘불안’이다. 김시연 조소작가는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들을 위태롭게 표현했다. 즉, 우리 삶의 불안을 나타내려고 했다. 녹차가 가득 찬 컵이 책상 모서리에 걸쳐 있는 작품이 있다. 균형을 잡고 있어서 컵 속의 녹차는 잔잔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형을 잃고 책상 아래로 쏟아져버린다. 우리 삶이 그토록 불안하다. 성공에도 여러 형태가 있을 터인데, 우리는 모두 한 가지 형태, 즉 경제적 성공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성공을 이루지 못하는 데서 불안을 느끼며 산다”라고 설명했다.

예술가는 이 시대의 불안이 ‘다양성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았다. 각자 저마다의 성공을 추구하면,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서 크게 불안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큰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성공의 모델로 삼는 사람이 많다. 남들만큼의 부(富)를 쌓지 못해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다.

과거에도 불안 심리는 우리 사회에 존재했다. 그러나 현시대의 불안은 연쇄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젊은 층은 실업과 결혼을 고민하고, 이들의 부모들은 돈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에 퇴직을 걱정하는 위기에 봉착한다. 앞날이 불투명하므로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런 불안이 청년-중년-장년-노년에 걸쳐 도미노처럼 일어난다.

신광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한 세대나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불안이 아니다. 국가가 제도적으로 해소해주어야 한다. 삶의 안정을 보장하는 복지가 필요한 것이다. 고용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고용에는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이 있다. 미국과 유럽의 공공 고용 비율은 15~30%에 이른다.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낮은 7.2%이다. 미국 수준(15~16%)으로 올리려면 중기적으로 100만명을 고용해야 한다. 단순히 공무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공공 서비스를 늘려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아이를 돌봐주는 공공 서비스가 안착되면 여성도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스웨덴과 덴마크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비율이 높은 배경이다. 경제활동을 하면 세금을 낸다. 이 세금은 다시 공공 서비스를 위해 사용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 이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

민간 공용 부문에서는 퇴직 연령과 비정규직이 문제이다. 유럽처럼 60~65세로 퇴직 연령을 늦출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기업은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젊은 인력만 선호한다. 네덜란드와 덴마크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이 같다. 기업의 업무가 많고 적음에 따라 노동 시간을 늘리거나 줄이며 탄력적으로 시간을 활용한다. 노동 시간이 줄어들어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에게는 정부가 복지 차원에서 실업수당을 지급함으로써 삶을 보장해준다. 복지를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복지는 경제 성장에 이바지하는 생산 활동의 밑거름이다. 현대 국가는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서비스 국가이다. 과거처럼 권력만 있는 국가는 후진국이다”라고 설명했다.

사회학자 “불안, 세대 간에 악순환된다”

사회학자가 보는 불안은 세대 간에 영향을 주면서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실제로 기자는 10대부터 60대까지 각 세대가 어떤 불안을 품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10대는 또래에 속하지 못하는 것에 심한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은 이제 막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세대이다. 같은 나이의 친구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존재를 인식한다. 또래에 속하지 못하면 불안을 느끼는 이유이다. 여자아이들은 ‘은근한 따돌림(은따)’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남자아이들은 또래에서 파워게임(힘겨루기)을 하는 과정에서 불안해한다. 청소년정신학자가 본 10대의 불안은 어른들의 흑백 논리에 기인한다. 옳고 그름의 잣대로 아이들을 재단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라는 것이다.

천근아 세브란스병원 청소년정신과 교수는 “10대는 불안을 감추는 특징이 있다. 늘 웃음을 짓기 때문에 어른들은 눈치를 채지 못하기 일쑤이다. 10년 전만 해도 자해가 정신질환이 있는 아이들의 특별한 행동이었다면, 지금은 일반 아이들도 불안 때문에 허벅지 등에 자해를 한다. 그만큼 아이들이 세졌지만 어른들은 잘 모른다. 폭력 학생이 있다고 하자. 어른은 그 폭력 학생을 격리시켜 사건을 마무리하기에 바쁘다. 가정과 사회가 너그러워져야 한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다른 아이를 때리는 학생의 대다수는 겁이 많은 자신에 대한 불안 때문에 선제공격을 한다. 이런 내용을 알면 그 학생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폭력 자체를 용서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믿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매년 이맘때면 고등학교 3학년생들은 대학 수학능력 시험을 치른다. 이들은 시험에 대한 불안을 느낀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힐 것에 대한 불안이다. 그 불안은 대학 졸업을 앞둔 20대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20대 실업자가 날마다 늘고 있다는 뉴스는 새롭지도 않다. 유명 대학에 외국 유학까지 다녀와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 취업하면 희망찬 미래를 바라볼 수 있을까. 30대는 학교 울타리 넘어 거친 세상에 내던져진 세대이다. 발가벗은 채로 현실을 직면해야 하는 불안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느껴진다. 20대의 실업 불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현실적이다.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조금 다행이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으면 결혼 자체가 불안일 수밖에 없다. 몇 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해도 결혼 자금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아예 결혼을 뒤로 미루거나 포기하고 혼자 사는 싱글족이 사회적 관심거리로 대두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결혼해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혼은 가정을 꾸리는 현실이다. 가정을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아이가 생기면 돈이 들어가는 구멍이 더 커진다. 최성함씨(35)는 “1년 전에 아이를 낳아 기쁘다. 하지만 돈이 말도 못하게 든다. 내 월급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 아내도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각종 대출금 이자, 세금, 생활비를 떼면 아이를 위해 사용할 돈조차 모자란다. 투잡(겹벌이)을 해야 할 판이다. 일해서 빚을 갚는 신세여서 미래가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경제학자 “개인 불안은 경제적 요인과 밀접”

과거 40대는 직장에서 안정된 위치를 차지한 부류였다. 회사에서 인정받았고, 집도 사고 차도 장만해서 인생의 황금기를 누렸다. 그러나 현재의 40대는 그 집과 차에 눌려 산다. 하우스 푸어(house poor; 집을 보유하고 있지만 무리한 대출에 따른 이자 부담 때문에 빈곤하게 사는 사람)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이다. 이 세대는 자녀와의 갈등, 갱년기 등으로 고민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교육을 위해 아내와 자녀를 외국으로 보내고 혼자 생활하는 ‘기러기 아빠’로 사는 사람도 흔하다. 노후를 대비할 여력이 없다. 인생의 중후함을 갖출 시기에 이들은 불안을 안고 산다. 경제학자는 경제적 불안이 개인이나 사회와 무관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 교수는 “개인적 불안, 사회적 불안, 경제 분야의 불안 심리가 어떻게 구분되는지 잘 모르겠다. 개인적 불안의 상당 부분이 경제적인 것에 기인한다. 향후 개인적 불안을 가중할 만한 경제적 요소로 저성장 기조를 꼽고 싶다. 실업이나 폐업 등의 문제는 모두 저성장 기조에서 심화되는 것이다. 결국 저성장 기조 속에서는 개인이나 사회가 희망을 찾기 어렵다. 저성장 기조를 유발할 요인은 다양하겠지만, 저출산과 고령화, 과도한 정부 개입 등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한다”라고 현시대의 경제적 불안 심리를 진단했다.

50대는 ‘고립 불안’에 휩싸인 세대이다. 고립 불안은 혼자 되었을 때 느끼는 불안이다. 한국인은 고립 불안을 잘 느끼는 민족이라고 한다. 늘 ‘우리’나 ‘조직’이라는 말로 소속감을 강조하는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50대는 직장을 떠나야 하는 세대여서 자칫 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강하게 느낀다. 또 사회적 지위가 있었던 사람은 조직을 떠나면서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불안까지 떠안는다. 자신의 가치나 중요성을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폐인 취급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이런 탓에 50대는 이민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는 불안을 회피하는 행위일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아니다. 이민을 해도 그 나라 민족으로부터 고립 불안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정신학자 “생활에 지장을 주는 불안 경계”

60대는 자녀를 다 키워냈으니 한숨 돌릴 시기이지만, 건강이라는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성인병이나 암과 같은 심각한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60대를 넘어서면 잔병이 생긴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며 건강에 신경을 쓰면 그럭저럭 살 만하다. 그럼에도 건강에 대한 불안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지인들이 하나 둘 유명을 달리하면 자신도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불안은 정상적인 심리 반응이다. 이 말은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는 말과 통한다. 다만, 심각하면 치료를 받아 그 정도를 정상 수위로 낮출 수 있다. 불안이 병으로 발전하면 재발이 잘 되고 만성적으로 생긴다. 우울증을 동반하면 심각해진다. 불안을 줄이기 위해 술에 의존하지만, 알코올 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김윤기 서울북부병원 정신과장은 “여러 세대가 다 같이 겪고 있는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는 최근 유행하는 ‘힐링’을 접목할 필요가 있다. 적당한 휴식과 여행, 운동, 취미생활 등으로 불안을 조절하고 관리하면 불안한 감정을 덜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카페인이 많은 커피를 삼가고, 술과 담배를 멀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불안증이 오래가면 우울증을 동반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배려가 필요하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거나 위축되는 정도가 심하면 정신건강학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는 것이 큰 화를 예방하는 길이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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