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TV 토론’ 획기적으로 바꿔라
  • 박명호 |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2.12.1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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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 강조하다 보니 ‘효과성’ 떨어져

‘박근혜 떡실신’ ‘이정희 어록’. 지난 12월4일 대선 1차 TV 토론 후 인터넷 공간을 장식한 대표적 키워드이다. 1차 TV 토론에 대한 총평이 대체로 “두 여자 사이에 낀 한 남자는 존재감 찾기에 어려움을 겪었고, ‘여자 1호’를 시종일관 강하게 몰아붙인 ‘여자 3호’가 TV 토론의 승리자이다”라는 것을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번 TV 토론은 당초의 의도와는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러니 토론 후 여론조사에서도 ‘TV 토론이 잘 되지 않았다’라고 말한 응답자가 10명 중 여섯 명을 넘는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오른쪽부터)가 12월4일 MBC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첫 TV 토론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사실 TV 토론의 효용성을 둘러싸고는 양론이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유권자가 TV 토론 전부터 가지고 있던 정치적 견해를 강화시킨다는 논리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TV 토론이 유권자의 의견을 변화시킨다는 주장이 있다. 굳이 따지면 다수설은 전자이다. 즉, TV 토론은 유권자의 마음을 변화시키기보다 이미 유권자가 내린 결정과 선택을 강화시킨다는 것이 최근까지의 경험적 결과이다. 이는 유권자가 후보 간 토론에서 제공되는 정보 중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는 당연히 유권자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견해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된다. 따라서 TV 토론은 선거 결과를 바꿀 정도의 파괴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TV 토론 참가자, 유력 후보 위주로 해야

물론 TV 토론이 영향력을 발휘한 반대의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대선 TV 토론이 여기에 해당한다. 토론 뒤 김대중 후보의 지지율은 상승했고,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상대적으로 하락했다. 지난 11월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오바마-롬니의 2차 TV 토론부터 오바마 후보가 선전해 양 후보 간 지지율 격차를 회복했고, 결국 선거에서 승리했다. 두 사례 모두 TV 토론이 유권자의 정치적 결정과 선택에 유의미하게 작용한 사례에 해당한다.

TV 토론이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12월4일 대선 후보 토론은 충분한 관심을 끌만 했다. 이번 TV 토론이 주목받은 것은 유력 후보 간 첫 비교의 장(場)이었기 때문이다. TV 토론 시청률이 40% 전후까지 나온 것을 보면 이 주장이 틀린 것도 아니다.

나아가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 간 초(超)박빙 양상의 지지율 경쟁이 TV 토론을 통해 판가름 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앞서 있었던 야권 후보 단일화 토론이 ‘안철수 사퇴를 가져온 결정적 계기’였기 때문에 이번 토론에서 의외의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예정된 TV 토론을 기대하는 유권자는 별로 없을 듯하다. 굳이 관심을 가진다면 “이번 TV 토론에서는 어떤 어록(語錄)이 나올까” 정도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무엇보다 현재 우리나라의 TV 토론이 공정성과 효과성의 양대 원칙 중 지나치게 공정성을 우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성도 물론 중요한 원칙이다. 모든 후보에게 공평하게 기회가 부여되어 유권자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의 TV 토론이 기계적 공정성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유권자에게 정작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TV 토론의 역사는 ‘공정성 확장의 역사’였다. 현재 중앙선관위에서 주관하는 3회의 법정 TV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은 다음의 세 가지 중 하나만 만족시키면 된다. 그것은 △국회 내 5석 이상의 의석 보유 △직전 선거에서 3% 이상의 득표 △30일 전 지지율 조사에서 5% 이상의 지지율 등이다. 1% 전후의 지지율을 보이는 이정희 후보가 이번 TV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통합진보당이 현재 여섯 석의 의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는 10% 이상의 지지율을 보인 후보만 대선 후보 TV 토론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1997년 대선부터 본격화된 TV 토론 참가 자격의 지속적 완화가 시작된 것은 권영길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 덕분이다.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07년 대선에는 여섯 명의 대선 후보가 TV 토론에 참석했다. 2시간 토론 시간을 기계적 형평성에 따라 배분하니 각 후보에게 총 20분 내외의 발언 시간만 주어졌다. 이번 2012 대선 TV 토론에서도 세 후보는 총 토론 시간을 33%씩 차지했다. 따라서 향후 TV 토론은 우선 기계적 공정성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지지율 40% 전후를 보이는 두 후보와 잘해야 1% 전후를 보이는 후보가 같을 수는 없다. 두 가지 경우를 차별하는 것이 오히려 공정한 것이다. 백보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에 당선될 확률은 유력 두 후보 중 하나이지 않겠는가?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후보 중심의 TV 토론이 되어야 진정 우리가 토론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충분한 반론 기회 부여하는 방향으로

이를 위해 미국에서처럼 15% 이상의 지지율을 얻은 후보만 토론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사례이다. 프랑스처럼 상위 두 후보를 토론 참여자로 제한하는 것도 좋다. 당선권에서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2부 리그’ 후보들에게도 그들의 자격에 맞는 적절한 기회는 충분히 제공된다. 그들만의 토론이 있기 때문이다.

공정성과 관련해 또 주목되는 것은 발언 시간이다. 현재의 토론 방식은 ‘1분 질문에 1분30초 답변’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후보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반론과 재(再)반론의 기회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유권자가 후보 간에 명확한 차별성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누구의 문제의식이 더 적절한지, 누구의 해법이 더 현실적인지 알 수 없다. TV 토론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내외가 토론 형식의 문제, 특히 충분하지 않은 반론 기회를 지적한 것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후보 간 토론의 형식을 좀 더 자유롭게 할 필요가 있다. 토론 형식의 차원에서 보면 일문일답의 형식이 가장 최선이다. 프랑스처럼 후보자 앞에는 종이와 펜만 놓고 단문 단답식의 토론을 한다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이 경우가 대선 후보 토론의 원형에 가깝지 않을까? 대선 후보 토론은 1858년 미국 대선의 링컨-더글러스 토론이 효시이다. 이때는 ‘논리(論理)의 대결(對決)’이 핵심이었다. 대선 후보 토론에 감성이 더해진 것은 TV 때문이다. 이때부터 대선 후보 토론에서는 ‘논리와 감성, 이미지’가 중요해졌다. 한마디로 대선 후보 TV 토론은 미디어 이벤트화했고, 대선 후보는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따라서 대선 후보가 어떤 문제의식과 대안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더욱 중요해진 것은 대선 후보가 ‘대통령답다’라는 유권자의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대선 후보 간 토론도 중요하지만 정책 사안별 예비 내각 후보 간의 토론회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대선 후보 간 토론은 원칙적 방향 또는 비전 등을 중심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대선 후보의 비전과 가치는 정책 사안별 토론회에서 구체적 정책을 중심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대선 후보 TV 토론은 획기적으로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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