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권 탄압의 비밀 아지트 ‘흑감옥’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기고가 ()
  • 승인 2012.12.1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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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인들 강제로 구금하고 반항하면 폭력 행사

ⓒ 일러스트 정찬동
지난 4월28일, 허난(河南) 성 창거(長葛) 시에 사는 진훙주안 씨는 마을 주민 3명과 함께 기차를 타고 베이징에 도착했다. 국가 신방국(信訪局)을 찾아 지방 정부가 자행하는 불법 철거 행위에 관한 민원을 제기하기 위해서였다. 신방국 민원실에서 신분증을 꺼내 방문 절차를 밟던 이들에게 경찰이 들이닥쳤다. 진 씨 일행은 강제로 차량에 태워져 베이징 남부 주징좡(久敬庄)으로 끌려갔다. 같은 날 밤 이들은 공무원 신분증을 단 남자들에게 인계되었다. 도착한 곳은 차오양(朝陽) 구 솽허(雙合) 촌의 한 주택단지였다.

집 안에 들어서자 10명의 남자가 진 씨 일행을 둘러쌌고, 신분증과 휴대전화를 빼앗았다. 격렬히 반항했던 진 씨는 심하게 구타당했다. 이틀 동안 감금되었던 이들은 4월30일 새벽 승합차에 태워져 고향으로 돌려보내졌다. 분통한 심정을 견디지 못한 진 씨는 5월2일 다시 베이징으로 올라갔다. 전후 사정을 왕스잉(王四營) 향 파출소에 신고한 뒤 이틀 동안 탐문한 끝에 자신들이 감금당했던 집을 찾아냈다. 진 씨 일행의 노력 덕분에 불법 억류 중이던 민원인 10명이 풀려났고, 감금 시설을 운영하던 13명이 구속되었다.

민원 막기 위해 온갖 불법 행위 자행

11월28일 차오양 구 법원은 진 씨 일행을 비롯해 허난 성 창거 시에서 올라온 민원인들을 불법 감금한 혐의를 받고 있는 10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중국 법원이 민원인을 불법 구금하는 시설, 일명 ‘흑(黑)감옥’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관련자를 처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콩 언론의 첫 보도 후 12월2일 중국 언론도 관련 소식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베이징 고급법원 당국은 즉각 “아직 심리가 진행 중이라 선고 판결은 나오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중국 당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흑감옥’이 대표적인 인권 침해 사례로 꼽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수도인 베이징과 각 지방에 신방국을 두고 있다. 신방국은 고충처리위원회와 비슷한 정부 부처이다. 오래전부터 중국에서는 지방 관청이나 공기업이 부당한 행정 조치나 사업을 진행할 경우 주민이 직접 신방국을 찾아가 탄원하도록 했다. 민원인은 거주지 신방국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베이징의 국가 신방국을 찾을 수 있다.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매년 약 10만명의 민원인이 베이징을 찾고 있다.

겉으로 보면 신문고처럼 훌륭한 제도이지만, 운영은 그다지 투명하지 못하다. 무엇보다 지방 정부나 공기업 관리들이 민원인이 신방국에 청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불법 행위를 자행한다. 이를 위해 신방국 공무원이나 경비를 매수해 민원인을 강제로 빼돌리는 일이 발생한다. 영문도 모른 채 납치된 민원인은 베이징 외곽의 호텔 방이나 주택에 감금된다. 짧게는 이틀에서 길게는 40일까지 구금된 채 갖은 고초를 당한다.

진 씨 일행을 억류했던 흑감옥도 그중 하나이다. 중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올 초 창거 시는 솽허촌의 주택 2동을 월세 6천 위안(약 1백3만원)에 임대해 10대에서 40대의 건장한 남성 13명을 상주 운영요원으로 고용했다. 이들은 국가 신방국이나 최고인민법원 민원실에서 창거 시 출신 민원인이 발견되면 매수한 경비원의 도움을 받아 민원인을 흑감옥으로 끌고갔다. 보통 2~6일간 민원인을 구금하면서 온갖 모욕을 가하는데, 그 과정에서 반항하면 가차 없이 폭력을 행사했다.

실제로 흑감옥에 구금되었던 피해자들은 ‘매번 구타당하고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했다’라고 증언했다. 진훙주안 씨도 “이틀 동안 끊임없이 구타당한 데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한숨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끌려온 민원인들은 난방이 들어오지 않는 방에 갇혀 침대도 없는 맨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다. 식사로는 만두와 채소, 물만 먹을 수 있었다.

“반체제 인사는 정신병원에 감금”

흑감옥의 존재가 처음 알려진 때는 2008년이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흑감옥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서방과 중국 언론이 르포를 통해 그 실상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중국 정부도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 체제가 들어서면서 전향적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달 1천여 명의 구금자를 석방한 데 이어, ‘법의 날’인 지난 12월4일 저녁에도 주징좡 일대에 수용되었던 수백 명을 풀어주었다.

흑감옥의 실체를 처음 폭로했던 인권 변호사 쉬즈융(許志永)은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중앙 정부가 철저히 단속했다면 흑감옥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민원인들이 호소하려는 여러 문제가 중국 정치 시스템과 관련 있는 것인데, 제대로 된 정치 개혁이 없으면 이런 문제가 계속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중국에서는 정치·사회 체제의 개혁을 부르짖는 지식인에 대한 탄압이 더욱 혹독하다. 지방 정부가 일반 민원인을 사설 감옥에 구금한다면, 중앙 정부는 반체제 인사를 또 다른 흑감옥인 정신병원에 집어넣는다.

지난 12월7일 공안 당국에 끌려간 왕페이젠(王培劍) 지량(計量) 대학 교수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왕 교수는 최근 수업 시간에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시위 진압 방식과 인권 탄압을 비판하면서 공산당 일당 독재는 종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 당국은 곧바로 왕 교수가 수업 중에 민감한 정치 문제를 거론한 것은 정신이상이나 정서 불안 때문이라며 강의를 중단시켰다. 12월11일 홍콩 인권단체인 ‘중국인권옹호자들(CHRD)’은 체포된 왕 교수가 저장(浙江) 성 항저우(杭州) 제7 인민병원에 수용되었다고 주장했다. CHRD는 또 최근 수년 동안 지식인과 민원인이 정치적인 이유로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사례가 많다고 덧붙였다.

인권단체 ‘공맹(公盟)’의 창립자 중 한 명인 쉬즈융 변호사도 현재 소재가 불투명하다. 쉬 변호사는 지난달 중순 시진핑에게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공개 서한을 발표한 뒤, 같은 달 24일 공안 당국에 연행되었다. 중국 정부가 반체제 지식인에 대한 탄압에 초강수를 두는 이유는,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체제 안정이 필수라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지식인, 일반인 할 것 없이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특히 빈부 격차가 갈수록 커지면서 사회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데, 이는 급증하는 집단 시위를 통해서 잘 드러난다.

중국에서는 2005년 9만6천여 건, 참가자 8백20만명을 마지막으로 시위 통계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칭화(淸華) 대학 쑨리핑(孫立平) 교수는 2010년에 18만건의 집단 시위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타이완 정치대학 왕신셴(王信賢) 교수는 중국 언론 보도를 취합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1천1백17건의 집단 시위 중 1천명 이상 참가한 사례가 35.6%, 1만명 이상 참가한 사건은 4.9%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사회 각계에서 분출하는 권리 보호 움직임 속에 중국 정부가 들이는 안정 유지 비용도 엄청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2009년에 이미 국방비 규모를 넘어섰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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