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론 끓는 한국 증시, 일본 모델 답습할까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12.1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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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달아 나오는 암울한 전망들의 신빙성은?

ⓒ 시사저널 사진자료
시장이 가라앉을 때 비관론이 나오면 충격이 더 큰 법이다. “2013~15년 한국 증시는 50%가 폭락해 코스피 지수가 1천 포인트선 아래로 내려갈 것이다. 한국 주택 가격은 43~57% 하락 조정의 여지가 있다.” 경제 전망과 투자 전략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자로 꼽히는 해리 덴트가 지난 11월 하순 국내 포럼에서 한 말이다. 10월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예측해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 대학 교수가 국내를 찾아와 ‘한국은 소비 과정에서 너무 많은 빚을 끌어다 쓰면서 자기 무덤을 팠다. 세계 경기 악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수출 지향적인 한국 경제는 둔화될 수밖에 없다’라는 요지의 강연을 했다. 미국 월가의 또 다른 비관론자인 마크 파버도 최근 ‘미국 증시가 20% 폭락하는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상황이 낯익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당시 쌍용증권 이사이던 스티브 마빈이 ‘한국 증시가 휴지가 될 것’이라는 요지의 전망을 내놓았었다. 그해 말 한국 경제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 파란에 휩싸였지만, 마빈의 명성은 정점으로 치달았고 강력한 비관론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흔히들 증시 흐름은 실물 경제를 선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대 심리로 사고, 기대 심리가 실제 영업 성적으로 증명될 쯤이면 이미 증시는 파장이라는 것이다. 요즘 증권사가 몰려 있는 여의도는 한국에서 제일 춥다. 매물로 나온 증권사가 10여 개 사에 이르고 구조조정 이야기가 횡행하고 있다. 지난 3~4월에 2000 선을 반짝 넘어갔던 코스피 지수는 1900 선도 높다고 1년 내내 횡보 중이다. 게다가 아파트 가격 하락으로 인한 가계 부채 대란, 고용 불안으로 인한 가계 수입 축소, 고령화로 인한 성장 둔화 등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대형 악재만 즐비해 외환위기 때와 버금가는 불안감이 커져만 가고 있다.

국내 상황이 이럴 때 해리 덴트의 강력한 비관론이 등장한 것이다. 상황이 안 좋을 때 등장하는 비관론은 더 힘을 얻기 마련이다. 그는 어떤 근거로 이런 주장을 펴는 것일까.

그는 인구 통계를 근거로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곤 했다. 그는 사람이 출생해서 왕성한 소비자로 경제활동에 기여하기까지는 46년이 걸린다고 보고 있다. 즉, 46세 이후에는 소비 시장에 기여하는 바가 다시 작아진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베이비부머가 등장한 1946년부터 68년까지, 베이비부머가 다시 아이를 기르기 시작한 1988~2007년까지 경제가 호황이었고 이후는 20년간 횡보장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아이를 기르는 데 들이는 양육 비용 자체가 인플레이션이고, 이 시기에는 인플레이션과 노동 인구 증가율이 양의 상관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비관론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참조해야

해리 덴트의 극단적인 주장을 다 믿어야 할까. 재미있는 점은 해리 덴트를 초청한 대신증권의 리서치센터는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을 발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윤남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 말 발표한 2012년 증시 전망에서 코스피가 1850~2300 사이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른 대형 증권사들이 코스피 지수 하단을 1500~1700으로 낮춰 잡았지만 그는 1850 선을 예측했고 이는 올해 국내 증시에서 가장 근접한 예측치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는 내년 코스피 지수가 1820~2250으로 움직이면 상저하고(上底下高)의 장이 펼쳐질 것으로 보았다. 올해와 크게 다를 게 없는 상저하고 국면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극단적인 비관론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조센터장은 “덴트는 비관론자이고 대신증권은 낙관론자이다. 주식 거래 활성화를 위해서는 낙관적인 전망을 전하는 사람이 좋지만, 우리의 주장과 반대되는 사람이라 초청한 것이다. 글로벌 경제에는 분명 위협 요인이 있다. 덴트는 과거에 전망을 맞춘 실적도 있고, 그의 비판을 참조해야 할 부분이 있다. 나는 단기적으로 닥터 둠 류의 전망을 믿지 않는다. 다만 장기적인 전망을 할 때 참조한다. 한국이 늙어가고 있다는 지적은 맞다. 하지만 40~50대가 자산 투자 시장에서 제일 큰손이다. 덴트가 잘 맞힌 것은 10~20년 싸이클이다. 그것을 자꾸 1~2년짜리 전망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현재 미국 경제가 살아나고 있기 때문에 내년 하반기에 글로벌 경제가 살아날 것이다. 유럽의 경기 둔화 폭 역시 감소될 것이다. 지금 시장은 낙관론과 비관론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다. 다만 장기적인 예측은 비관론이 우세하다”라고 말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의 ‘비관론 강세’에 대해 “글로벌 경제가 불투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책만 옳은 방향으로 간다면 아주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증권사나 연구소의 전망이 대부분 경기의 모멘텀에만 주목하니까 잘될 때는 더 잘된다고 보고, 안 될 때는 더 안 된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누구도 경제 예측을 완벽하게 하지는 못한다. 상승장을 주목하는 진영이나 하락장을 주목하는 진영의 논리를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국내 경기는 글로벌 요인보다는 부동산이나 가계 대출, 실업 문제, 양극화 등에 달려 있다. 성장에 일자리 창출만큼 좋은 것이 없지만 고용의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여의도 덮친 매물 홍수 

겨울을 맞은 여의도가 더욱 썰렁한 이유 중 하나는 중소형 증권사들이 대거 매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이트레이드증권이나 리딩투자증권, 아이엠투자증권 등 매물로 나온 중소형 증권사는 물론 현대증권이나 동양증권 등 재벌로 분류되는 그룹의 계열사도 심심찮게 매각설에 시달리고 있다.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2, 3세로 경영권이 이전된 재벌 그룹이 핵분열을 하면서 증권사 인수 붐이 일던 시절과 영 딴판이다.

중소형 증권사들이 대거 매물로 나온 이유는 증권사 수익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거래 수수료가 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 하루 평균 거래 대금이 지난해 8월 10조원대에서 최근에는 5조원대 미만으로 뚝 떨어졌다. 거래 대금이 반 토막 났으니 수수료도 반 토막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4월29일 코스피 지수가 2200포인트를 기록했던 것에 반해 올해에는 지난 3월 최고점 2050 선을 끝으로 1800~1900선을 맥없이 오르내리며 투자자들이 증시를 떠났기 때문이다. 손님 없는 시장에 가게만 많으니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골드만삭스자산운용과 ING자산운용 등 외국계 자산운용사도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서 시장에 불안 심리를 고조시키고 있다.

증권 전문가들은 이럴 때 대형 증권사가 중소형 증권사를 인수해 자율적인 구조조정이 일어나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있다. 문제는 매물로 나온 증권사를 사겠다는 곳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증권사 등을 인수해 자산 불리기에 나섰던 금융지주사도 관망세로 돌아선 실정이고, 지난 몇 년간 급격하게 지점망을 늘렸던 몇몇 금융 그룹 계열 증권사들은 고정 비용과 시장 불황으로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지금 여의도는 진짜 한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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