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박테리아가 우리 엄마 죽였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12.1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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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암 진단받고 사망한 환자 유족 주장…병원측은 “사실 아니다”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지난 11월14일 사망한 고 박영자씨의 병원 입원 당시 모습. 배에 복수가 차고 온몸이 부어오르는 등 상당히 고통스런 모습이다. ⓒ 고 박영자씨 유족 제공
11월14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 한 명이 숨졌다. 병원측은 ‘폐렴 및 상부위장관 출혈’로 사망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여기에 반발한다. 병원에서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되었고, 이로 인해 사망했다는 주장이다. 한 사람의 죽음을 놓고 병원측과 유족측의 입장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유족들은 기자에게 방대한 자료를 증거로 내놓았다. 우선 고인이 병원에 입원한 후 사망하기까지 약 40일간의 과정을 병상일지를 쓰듯 꼼꼼하게 기록했다. 의료진과 나눈 대화는 녹취록에 담거나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도대체 이 병원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숨진 환자는 고 박영자씨(66)이다. 박씨는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종합병원에서 오랫동안 수간호사로 일하는 등 평생 ‘나이팅게일’로 살아왔다. 박씨에게 불운이 닥친 것은 10월5일이다. 이날 평상시처럼 혈압을 재보았더니 수치가 다른 때보다 높게 나왔다. 박씨의 평상시 혈압은 정상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날은 1백98mmHg까지 올라갔다. 박씨는 딸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찾아가 응급실에 입원했다.

처음에는 혈압을 측정하거나 CT를 촬영하는 등 혈압 위주로 검사했다. 그러다 내분비내과 병동으로 옮겨졌다. 병원에 입원한 지 3일째 되는 날 박씨 가족은 의료진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박씨가 단순히 혈압이 높은 것이 아니라, ‘다발성 골수종’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나왔다. 의료진은 “신장의 칼슘 수치가 높아지면서 신체의 모든 수치가 함께 상승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병은 일종의 혈액암이다. 암세포가 뼈를 공격해 뼈와 척추를 녹여 부러뜨리고, 골수를 침범해 백혈구·적혈구·혈소판 수치를 낮춰 빈혈, 감염을 일으킨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발급한 의무기록 사본. ⓒ 고 박영자씨 유족 제공
입원한 지 40일 만에 사망

박씨는 다시 내분비과에서 혈액내과로 병동을 옮겼다. 주치의는 “다발성 수종은 진행성 암으로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에게 많이 발생한다. 치료만 잘 하면 4~6년은 생존이 가능하다”라고 전했다. ‘암’이라는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은 가족들에게 그나마 안심이 되는 말이었다.

주치의는 “병이 다른 곳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6주 주기로 화학요법 치료를 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치료제로 ‘벨케이드’를 적극 추천했고, 유족들은 주치의가 추천하는 치료제를 무시할 수 없어 동의했다.

그런데 10월20일쯤부터 박씨의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먼저 설사가 시작되었다. 레지던트는 “장염 증세 같다”라고 말했고, 가족들은 치료약의 부작용으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박씨의 설사 증세가 점점 더 심해졌다. 여기에다 배에 가스가 차고, 더부룩하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심지어 구토 증세까지 보였다.

몸 상태는 더 나빠졌다. 병이 호전되기는커녕 배에 복수가 들어차며 점점 더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의료진은 “장의 꽈리가 꼬인 것 같다. 신장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병은 혈액암인데, 신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에 가족들은 의아해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박씨 가족은 “갑자기 닥치는 상황들에 혼란스럽고 불안했다”고 말한다.

박씨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사람의 형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배는 남산만 하게 부풀었고, 얼굴도 축구공처럼 부었다. 눈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여기에다 오한에 고열까지 심해졌다. 폐부종과 장기 부전 증세가 의심되었다.

박씨가 병원에 입원한 지 26일째 되는 날 혈액내과 레지던트가 신장 투석을 하기 위해 ‘대퇴부 대동맥으로 카테터를 삽입해야 한다’며 수술 동의서를 가지고 왔다. 가족들은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박씨는 얼마 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의료진은 박씨의 상태에 대해 “투석을 해야 살 수 있다”며 ‘24시간 투석’을 권했고, 가족들은 여기에 동의했다. 중환자실에 들어온 지 3일 후에는 다시  격리실로 병실을 옮겼다. 응급실을 시작으로 내분비과-혈액내과-중환자실-격리실까지 무려 4번이나 병실을 옮긴 것이다.

이런 사이 박씨의 생명은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11월4일에는 아예 의식을 잃었다. 의료진은 호흡을 위해 목에 관을 투입했다. 다음 날에는 세브란스 전 병동에 침구 대책이 발령되었다. 며칠 후에는 박씨의 등과 엉덩이에 난 욕창에서 슈퍼박테리아인 VRE(반코마이신 내성 장구균)가 검출되었다. 그리고 박씨는 병원 문턱에 들어선 지 40여 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발급한  의무기록사본(미생물 누적 결과)을 보면 박씨의 몸에서는 총 세 가지의 슈퍼박테리아가 검출되었다. 장 괴사나 장 천공을 일으키는 CD균(클로 스트리듐 디피실리), 폐렴을 일으키는 ‘카바페넘 항생제 내성 폐렴균 그리고 VRE(반코마이신 내성 장구균)이다. VRE는 신우암 치료를 위해 세브란스에 입원했다가 사망한 고 박주아씨 몸에서 검출된 것과 동일하다.

유족들은 고인의 사망 원인을 ‘슈퍼박테리아 감염’이라고 믿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 병원에 오기 전에는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고, 고인의 몸에서 검출된 슈퍼박테리아가 병원 내에서 감염되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전문가들의 의견과 각종 관련 논문도 제시하고 있다. 또 치료 시기가 늦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도 말한다.

고인의 사위인 이 아무개씨는 “장모님이 처음 설사와 복부 팽창 등 슈퍼박테리아 감염 증세가 완연했을 때 병원에서 적절한 처방과 치료를 했다면 살았을 수도 있다. 병원에서 슈퍼박테리아에 대한 검사 시기와 적절한 치료가 늦어서 사망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세브란스측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유족측의 주장을 일축한다. 또 고인이 사망하기 전에 환자의 대변에서 VRE가 검출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킨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고도 했다. 환자는 중환자실 입실 이전 일반 병실에 입원해 있을 때부터 장염(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장염) 증세를 보였으며, 이것이 악화되는 경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병원 “면역력 저하로 감염되었을 가능성 커”

병원 관계자는 “다발성 골수증은 치료 과정에서 면역력이 낮아져 감염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고인의 경우도 면역력 저하로 인한 감염이 사망의 원인이 되었다. 슈퍼박테리아는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아니다. 우리가 치료하는 과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전했다.

병원측은 또 고인이 병원에서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세브란스병원만의 일은 아니며 전국 어느 병원에서나 감염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유족들은 고인의 죽음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병원 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유족측은 “고인은 병원에서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되었다. 그만큼 병원의 환경이 좋지 않다는 것을 반영한다. 이제라도 병원에서 슈퍼박테리아와 같은 세균에 감염되는 환자가 없도록 철저를 기해야 한다. 그것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한 해 동안 전국 병원에서 일어나는 슈퍼박테리아 발생 건수가 수만 건에 달한다는 자료도 나왔다. 항생제 사용이 그만큼 많은 데 원인이 있다. 또 박테리아 감염 경로도 의료 장비, 집기, 의사 가운, 환자복 등 다양하다. 병원의 위생이 철저하게 지켜지지 않는 원인이기도 한 것이다. 지금 대형 병원의 환자들은 ‘슈퍼박테리아’에 무차별로 노출되어 있다. 언제 누가 공격당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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