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운동에 ‘새 정치’는 없었다
  • 김재태 편집위원·부국장 (purundal@yahoo.co.kr)
  • 승인 2012.12.1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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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 벽보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습니다. 유심히 보니 특이한 조합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공교롭게도 홀수 기호는 모두 여성, 짝수 기호는 모두 남성입니다. 여성 후보가 한 명 더 많습니다. 남자들 사진으로 채워졌던 이전의 선거들과 비교해보면 이것도 또 다른 변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벽보를 바라보고 있자니 얼마 전에 있었던 두 차례의 대선 후보 TV 토론회 모습도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예전에 비해 횟수도 터무니없이 줄어든 만큼 내용이라도 알찼어야 했는데, 남은 기억은 그다지 산뜻하지 못합니다. 토론회라기보다 인터뷰에 가까웠다는 느낌만 강합니다. 이렇게 밋밋한 토론회를, 그것도 고작 세 번만 시청하고 투표장에 나가야 했던 유권자들은 무척 난감했을 것입니다. 미국의 인지과학자들이 TV 토론이 가장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으로 제시한 ‘후보자 중 한 사람이 베일에 가려진 경우’ ‘정당 일체감을 지닌 시민이 감소하는(무당파·부동층이 늘어나는) 경우’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는 경우’라는 세 가지 조건을 거의 완벽히 갖추었음에도 TV 토론이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습니다. 선거가 끝난 후라도 TV 토론 방식은 반드시 개선되어야만 합니다. 선거 광고는 또 어떻습니까. 다들 공들여 만들었을 텐데, ‘김대중의 춤’ ‘노무현의 눈물’처럼 감성으로 다가가고 메시지로 파고드는, 그래서 오랫동안 회자될 수 있는 ‘걸작’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두 초박빙의 승부라는 선거 구도를 무색하게 만든 풍경들입니다.

밋밋하고 진부한 것은 또 있습니다.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지켜보면 그들이 정녕 정치를 바꾸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이 맞나 싶습니다. 국민들이 이끌어내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를 통해 폭발시켰던 ‘새 정치’라는 화두와도 멀어 보입니다. 유세 장면만 보면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서로 경쟁하듯 군중을 불러모아 세를 과시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물론 과거와 같이 군중을 동원하는 구태를 보이지는 않았으리라고 믿고 싶지만, 그 속내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막판에는 SNS 여론 조작이라는 불법 선거운동 의혹까지 보태져 눈살을 더욱 찌푸리게 했습니다. 곳곳에 옛것의 흔적들이 넘쳐났습니다.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면 선거운동부터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거리 유세보다는 국민의 생각을 듣고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더 많이 갖는 것이 유익합니다. 미국 대선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타운홀 미팅도 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말하기보다 듣기에 능숙해야 합니다. 들을 말보다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은 사람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국민 앞에서는 귀가 좀 얇아져도 좋습니다.

새 대통령 당선과 함께 길고 긴 레이스는 막을 내리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남겨진 숙제는 꼭 챙겨 들어야 합니다. 다음 대선을 위해 이번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합니다. ‘새 정치’는 어느 날 갑자기 혁명처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워져가는 여러 과정이 모여 완성됩니다. 입보다 귀를 더 많이 열 때 새 정치도 비로소 활짝 열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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