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란, 무료한 일상에서 기지개 켜다가 은하수 천장의 별들과 부딪힌 흔적들…”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2.12.2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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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만난 사람│반칠환 시인

이번 겨울을 맞아 ‘광화문 글판’에 한 시인의 시가 실렸다. ‘새해 첫 기적’이라는 반칠환 시인의 시이다. 반시인의 것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글판의 글을 읊조리며 의미를 떠올려볼 것이다. 반시인의 시집 <웃음의 힘>에서 찾아낸 그 시의 전문은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 날 한 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이다.

‘속도의 시대에, 속도를 따라잡으며, 속도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반시인의 믿음이 그대로 녹아 있는 시이다. 한 문학평론가는 ‘만물 평등 사상’이 깃들어 있는 시라고 설명했다. 무생물인 바위까지 그 사상에 포함된다니 글판에서의 감동이 시 전문에서 증폭될 수도 있겠다.

ⓒ photomind studio 홍승진
반시인은 직관이 담긴 자신의 짧은 시편들을 ‘어이쿠 시’라 이름 붙였다. 그는 “시란, 무료한 일상에서 기지개를 켜다가 은하수 천장의 별들과 부딪힌 흔적들이다”라며, 반복적 일상에서 발견하는 찰나의 깨달음을 시로 옮겼다. 그는 맥주 안주로 나온 메뚜기 볶음을 먹으며 “이 중에도 필경 위대한 메뚜기가 한 마리쯤 있으리라. 위대한 메뚜기라도 특별한 맛은 없다”(<위대한 메뚜기> 중)라고 말하거나, “세계관은 세계가 다 들어가는 관이니, 무서울 것 하나 없다”(<세계관> 중)라고 말한다.

반시인의 시 <노랑제비꽃>은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 그는 ‘노랑 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제비꽃 화분이다’라고 읊었다.

반시인은 최근 <전쟁광 보호 구역>(지혜 펴냄)을 새로 펴냈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현대 문명의 광물성을 생명의 근원인 식물성으로 되돌려놓는 일’을 시도했다. ‘눈물의 국경일’이 있다면 좋겠다는 시인은 “세상 모든 생명들이 한 날 한 시 일제히 울어버리는 국경일 하나 갖고 싶다. 뎅뎅… 종소리 울리면 토끼를 잡아채던 범도 구슬 같은 눈물 뚝뚝 흘리고, 가슴 철렁하던 토끼도 범의 앞가슴을 두드리며 울고, 포탄을 쏘던 병사의 눈물에 화약이 젖고, 겁먹은 난민도 맘 놓고 울어버리고, 부자는 돈 세다 울고 빈자는 밥 먹다 울고, 가로수들도 잔잔히 이파리 뒤채며 눈물 떨구는, 세상 생명들 다시 노여워지려면 꼭 일 년이 걸리는 그런 슬픈 국경일 하나 갖고 싶다”라고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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