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국가는 강한 군대를 가져야 한다”
  • 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2.12.2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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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민당, ‘자위대의 국방군화·집단적 자위권’ 개헌 움직임

일본 정치의 큰 흐름이 바뀌고 있다. 2009년 일본 국민은 54년 만에 자민당 시대를 종식시키고 권력을 민주당에게 넘겨주었다. 하지만 불과 3년 3개월 만인 지난 12월16일에는 권력의 향배를 다시 자민당에게, 그것도 압승이라는 형태로 가져다주었다.

아베 신조 총재가 이끄는 자민당의 승리는 어느 정도 예상되었지만 전체 4백80석 중 2백94석이라는 압도적인 결과를 예측한 곳은 없었다. 공명당의 31석을 합하면 참의원에서 부결시킨 법안을 중의원에서 다시 가결시킬 수 있는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게 되었다. 선거 직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중국 항공기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공 진입 사건은 자민당의 텃밭인 보수표를 결집시키며 선거의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12월26일 총리에 임명되는 아베 총재는 선거 이후 구성될 내각을 ‘위기 관리 내각’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정권의 최우선 과제를 ‘경기 대책’에 두었다. 일본 경제의 장기 불황을 타개해야 하는 과제 풀이도 시작했다. 동일본 대지진 피해 복구도 시급한 과제로 상정했다.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자민당의 대표적인 우익 정치인 아베 신조 총재가 12월17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기자를 지명하고 있다. 12월26일 그는 일본 총리에 오른다. ⓒ AFP연합

경기 대책의 큰 틀은 ‘디플레이션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이를 위해 시중에 돈을 푸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자민당의 선언대로라면 과거 ‘자민당식 사업’이라고 불리던 공공 사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생길지도 모를 인플레이션은 다소 감안하겠다는 입장이다. 상한선은 물가 상승률 2% 정도이다. 12월18일 경제단체연합회(재계 이익단체) 집행부와 만난 자리에서도 “반드시 엔저(低)를 추진해 주가를 높이겠다”라고 약속했다. 양적 완화로 경기를 회복시키고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아베의 생각이 현실화하려면 일본은행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 총재는 자민당의 일방통행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그렇다고 압도적 지지를 등에 업고 이제 막 출범한 정부를 무조건 반대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일본은행은 12월20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어 금융기관으로부터 국채 등 자산을 매입할 수 있는 자산 매입 기금을 91조 엔에서 1백1조엔으로 10조엔 늘린다고 발표했다. 이미 지난 9월에 10조 엔, 10월에도 11조 엔을 증액했던 일본은행의 이번 조치는 이례적인 일로 결국 아베의 요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날 도쿄 증시의 닛케이 지수는 전날보다 2.4% 오른 1만1백60포인트로 마감했는데 돈을 풀어 디플레이션을 탈출시키겠다는 아베의 정책이 걸음마를 하기도 전에 주식시장이 먼저 움직였다.

군국화 위해 헌법 개정 요건을 약화하려 해

양적 완화 정책은 경제 정책이지만 동시에 정치 행위이다. 자민당은 돈을 풀어 공공 사업을 지원해 민주당 정부 아래에서 붕괴된 지지 기반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자민당은 과거 오랫동안 지방에 사회 인프라를 건설하거나 공공 사업을 지원해 탄탄한 지지 기반을 구축해왔다. 또, 중국에 빼앗긴 G2의 자리를 되찾아 경제대국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도 양적 완화 의도에 포함된다. 소니·샤프 등 일본의 간판 기업들이 경쟁력을 상실하며 안겨준 좌절감을 극복하려는 의도도 있다.

일본은행 시라카오 마사아키 총재의 모습. 최근 10조 엔 규모의 양적 완화 조치를 결정했다. ⓒ AP연합

대표적 우익 정치가인 아베는 이번 선거에서 ‘강한 일본’을 캠페인 전면에 내세웠다. 그런 그의 최우선 관심사 중 하나는 헌법 개정이다.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각각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 비율을 2분의 1로 바꾸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통과 장벽을 먼저 낮춰놓고 이후 다른 헌법 개정을 쉽게 하겠다는 의도이다.

헌법 개정을 통해 아베가 이루고자 하는 대표적인 정책은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바꾸는 것이다. 또 동맹국이 위협받았을 때 군대를 파견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을 명문화하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아베의 생각은 단순 명료하다. ‘강한 국가는 강한 군대를 가져야 한다’는 논리이다. 도우미도 있다. 이번 선거에서 제3 세력으로 급부상한 ‘일본유신회’이다. 이시하라 신타로 일본유신회 대표는 아베의 생각에 적극적인 지지를 약속하며 헌법 개정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헌법 개정은 아베 총재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본의 우익들이 거들고 나섰다. 대표적으로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와 같은 거물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정계를 떠난 상태이지만 여전히 일본 정치의 대부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측면 지원과 중의원 선거의 압승으로 그 어느 때보다 헌법 개정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상태이다. 이런 흐름이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먹혔다. 자민당이 압승하고 일본유신회가 정당 조직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54석을 얻은 것이 그 반증이다.

물론 자민당의 앞날이 장미빛 미래인 것만은 아니다. 압승은 했지만 주요 정책을 처리하는 과정이 쉽지 않은 구조이다. 중의원은 자민당이 다수이지만 참의원은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헌법 개정의 경우는 연립 파트너가 정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헌법 개정 요건을 규정하는 헌법 96조를 먼저 개정해야 하는데, 연립정권의 파트너인 공명당은 헌법 개정과 자위대의 국방군화, 집단적 자위권 정책에 대해 모두 자민당과는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비록 일본유신회는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지만, 모두의당은 자민당과 속도 조절을 하는 모양새이다. 모두의당이 비록 소수 정당이지만 참의원에서 11석을 가지고 있어서 자민당이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

현재 참의원의 경우 과반을 확보하고 있는 정당이 없기 때문에 자민당은 일본유신회, 공명당, 모두의당 등과 정책 연대를 해야 한다. 와타나베 모두의당 대표는 “헌법 개정에는 찬성하지만, 연립 운운하는데 그런 일은 절대 없다. 정책적 연대 차원에서만 협력하겠다. 그리고 지금은 헌법 개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무원 제도를 개혁하는 데 주력해야 할 때이다”라고 말하며 자민당과 온도 차를 보였다.

중의원에서 기분 좋게 승리했지만 아베는 이내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중의원 선거 결과가 중요했으나 이제는 과거일 뿐이다. 만약 2013년 7월에 열리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할 경우 자신의 공약을 제대로 실현할 수 없게 된다. 중의원 선거가 끝나자마자 승리의 주역인 이시바 시게루 간사장을 연임시킨 것도 2013년 참의원 선거까지 승리의 분위기를 가지고 가겠다는 의도에서다.

자민당은 일단 경기 대책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우경화 정책을 끌고 갈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들에게 “중의원 선거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참의원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려면 헌법 개정, 자위대의 국방군화, 집단적 자위권 등의 어젠다를 지속적으로 부각시켜 여론을 환기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9월25일 블라디보스톡 인근 해상에서 러시아 해군과 해적 퇴치 합동훈련을 하고 있는 일본 자위대의 모습. ⓒ ITAR-TASS연합

일본 국민들, ‘강한 국가론’에 기대 높아

한·일 관계 역시 참의원 선거가 열리는 7월까지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정권은 종군위안부 강제 연행을 사죄한 ‘고노 담화’와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를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게다가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시기가 문제일 뿐 항상 불씨로 남아 있다. 아베는 선거 기간 중 “총리 시절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못한 것은 통한의 극치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무엇보다 한·일 관계를 민감하게 만들 문제는 결국 독도이다. 민주당의 경우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SD)에 제소하려고 했었다. 아베가 독도를 어떻게 다룰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이다. 자민당이 이번에 압승을 거둔 이유 중 하나가 민주당의 영토 분쟁 대처 방법에 대해 여론이 실망했기 때문이었다. 선거 이후 일본 언론에서는 민주당이 센카쿠 열도와 독도 등 영토 문제를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영토 문제에 대해서 아베 정부가 강경한 입장을 보일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크다. 아베는 2013년 2월22일로 예정된 시마네 현의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국가 행사로 승격시키겠다고 공약하면서 갈등의 스타트를 끊었다.

다만 모리 전 총리 등 자민당 내 지한파가 많이 있다는 점, 그리고 아베가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현재 동북아 정세를 감안해 한국과 일본은 지역의 평화와 안보를 확보하고 긴밀한 협력이 불가피한 이웃 국가 관계이다”라고 말했고,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국가 행사로 승격시키는 것을 취소한 것으로 볼 때, 한·일 관계의 경색 국면이 풀릴 여지도 있다.

최근 일본 국민들의 의식 변화도 주목해야 할 점이다. 지난해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 참사가 발생한 뒤 일부에서는 ‘일본을 강하게 재건하자’라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2012년 들어 중국에서 일본 기업들이 수난을 당하고 일본인 상가가 약탈당하는 모습이 일본 전역에 중계되고 중국 선박이 센카쿠 열도에 무력을 사용하며 접근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평화에 익숙한 일본 국민들이 ‘안전 보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이른바 ‘강한 국가론’의 등장이다. 주변 국가와의 갈등 관계를 염려하는 신중론은 강경론에 묻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일본 사회이다.

외교·안보의 경우 2013년 1월이면 아베가 어느 쪽으로 키를 잡을지 엿볼 수 있게 된다. 1월에 미국을 방문하는 아베에게 미국이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가 관심 포인트이다. 아베의 선택 그리고 주변국과 높아지는 긴장 관계를 조율하려는 미국의 입장이 그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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