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문화 인물] 김기덕, 한국 영화계 출구 찾았다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2.12.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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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한 김기덕 감독

올해 ‘큰 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은 ‘불편해하는 시선’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졌을까. 2012년 김감독은 대중 앞으로 불쑥 다가왔다. 상업영화를 들고 왔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영화 <피에타>를 개봉하면서 예전과 많이 다른 모습을 보였다. 지난 9월을 전후해 그는 이런저런 방송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그 와중에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함으로써 대중에게 외국 영화제에서 한국을 빛낸 인물로 확실히 각인시켰다. 영화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고 훌쩍 자리를 뜨던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사람들 가까이로 다가섰다. 사람들은 그의 변화에 마음을 열었고, 그를 ‘불편해하던’ 시선을 거두었다. 적어도 59만명(<피에타> 국내 최종 관객 수)이 그렇게 응답했다. 

올해 <시사저널>은 문화 분야 올해의 인물로 김기덕 감독을 선정했다. 단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는 점보다는 그가 문화 전반에 강렬한 각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한 대학 영화과 교수는 “혼자 힘으로 주류 영화에 저항하는 감독”이라며 치켜세웠다. 스스로를 ‘열등감을 먹고 자라난 괴물’이라고 말하는 김감독은 영화 <피에타>가 주목받을 때조차 주류 영화가 싹쓸이하는 한국의 영화 산업에 대해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지난 9월8일 열린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 상패를 들어보이고 있다. ⓒ DPA연합
“한국 영화계, 입구만 있고 출구가 없다”

통계로 보나 영화들의 면면을 보나 2012년 한 해 동안 한국 영화계에 르네상스가 찾아왔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여름 <도둑들>은 기존 흥행 1위 <괴물>의 기록을 훔치는 데 성공했다. 추석을 전후해 인기를 모은 <광해, 왕이 된 남자>까지 1천만 관객을 넘어섰다. 한 해에 ‘1천만 관객 영화’를 두 편이나 탄생시켰다는 새로운 역사를 쓴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12년 한국 영화 누적 관객 수가 1억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영화계에도 심각한 양극화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 그늘에서 김기덕 감독 또한 ‘발악하며’ 영화를 찍고 배급에 나섰던 속내를 드러냈다. 12월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제2회 아름다운예술인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감독은 “한 해 100여 편의 저예산 독립영화가 만들어진다. 그 영화들은 도전적이고 한국 사회의 모순이나 아픔과 고통을 이야기하는 영화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영화들이 극장에 걸리는 경우 해외 영화제 수상을 하거나 나처럼 이렇게 발악을 해야 겨우 몇 관 걸리는 것이 현실이다. 100여 편 중 10%도 개봉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한국 영화계에는, 입구는 있는데 출구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라고 말했다.

김감독은 복합상영관의 독과점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구를 ‘아름다운 예술인’의 입장이 되어서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김감독은 이전에도 “파리의 멀티플렉스에는 13개관에 13개 영화가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멀티플렉스는 관객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고자 만들어진 것이 아니냐. 그런데 한국에서는 흥행 영화, 유명 배우의 영화가 3~4관을 차지하고 있다. 동료들의 쿼터를 뺏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상업영화와 저예산 영화가 상생할 수 있는, 균형을 잡아주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김감독은 관객과 적극 소통하려 애썼고, 국내외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 그의 성공을, 그리고 그의 새 영화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시선’을 바꾸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예전에 김감독은 다분히 신경질적인 모습으로 비쳤다. 그는 그의 영화가 흥행에 실패할 때 시장을 탓했고, 영화제를 탓했고, 한국 관객의 수준을 들먹였다. 고운 시선을 보내는 평론가도 많지 않았다. 한 평론가는 “김기덕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비판받아 마땅했다. 그렇게 본다. 외국에서 유명한 상을 받으니까 전 국민이 봐줘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들이 나오는데,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잔혹한 범죄 묘사, 강간 이런 것들이 나오기 때문에 전 국민이 봐줘야 될 영화는 아니라고 본다. 또 이 영화가 국내 영화인들에게 어떤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그가 시상식이나 방송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모습이나 발언을 보면 이런 비판을 무색하게 한다. 이전과 딴판인 것인지 사람들이 잘 몰랐던 것인지, 그와 공감하는 지점이 넓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또 한 번 주목받았다. 그 자신이 ‘주목할 만한 시선’이 된 것이다. KBS <수요기획> ‘리얼 김기덕’ 편에서 김감독은 방송 제작진을 걱정하며 “내 영화를 보면 많은 사람이 불쾌해하고 불편해하는 부분도 많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니까 어떤 위험 부담을 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불편해하던’ 관객들 시선 많이 바뀐 듯

아름다운예술인상 시상식에서도 그는 “내 영화는 가만히 보면 굉장히 독하고 고통스럽고 슬프고 아픈 영화인데, 왜 내게 아름다운예술인상을 주는지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 심사위원들께서 독하고 고통스럽고 아프고 슬프기는 하지만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희망하는 그런 주제를 발견해주신 것 같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노광우 영화 칼럼니스트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는 사회적 약자들의 세계가 담겨 있다. 최근작 <피에타>도 주인공인 사채업자 강도라는 인물을 통해 현실을 담아낸다. 그리고 여전히 폭력이 등장한다. <피에타>
에 등장하는 폭력은 물질주의와 제도가 개인에게 휘두르는 제도적 폭력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라고 평가했다.

김감독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 듯한 곳이 또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출품할 한국 영화 공모에서 대작 상업영화들을 제치고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를 선정했다. 


“미래를 기다리지 말고, 현재를 놓치지 말자” 
김기덕 감독의 2012년 ‘어록’과 주목할 만한  관객들의 ‘시선’

영화 <피에타> 개봉을 10여 일 남겨둔 2012년 8월23일 김기덕 감독은 관객에게 바짝 다가섰다. tvN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에 출연한 그는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하고 싶었고, 그동안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방송에서 MC 백지연씨는 “보도되었던 강하고 독한 말들과는 이미지가 전혀 다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김독은 “영화도 너무 부드러워질까 걱정이다. 그래도 여전히 내면은 소용돌이치고 있다”라고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방송에서 김감독은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미래를 기다리지 말고, 현재를 놓치지 말자! 이것이 나에게 가장 큰 어떤 태도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기덕 어록’ 탄생의 시작이었다. 시청자들은 김감독의 인생 역정에 감동하고, 부드럽고 유쾌한 모습에 반하기까지 했다. 트위터에서는 “참 솔직하시고, 예전의 오해에 관한 이야기들, 좋구나~”(@j261023), “눈빛이 부드러워지셨네요.”(@spot_writer) 등 그동안 김감독에 대해 가졌던 편견을 버리게 되었다는 내용이 줄을 이었다.

예전의 김기덕 감독을 바라보는 시선을 말해주는 글도 눈에 띈다. 한 블로거는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않은, 영화를 전공하지도 않고, 청계천에서 막부로 살아온 사람이 영화는 무슨 영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팽배해 있기 때문에 그를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며, 그로 인해 그는 이단아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세계적인 무대에서는 이렇게 크게 활동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단 하나, 세계 무대에는 편견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참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해외여행 길에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에게 기념촬영을 부탁하고 사인을 받기도 한다.

‘김기덕 감독의 어록’에서는 후배 영화인들을 위한 걱정과 배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한 축하연에서 “(배급상의 독과점) 문제가 지속된다면 제2의 봉준호·홍상수·박찬욱은 나오지 않는다. 창작의 넓은 영역을 영화인들에게 주시길 바란다. 영화 산업은 단기 사업이 아니라 거대한 사업이다. 오락이기도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제2의 학교이기도 하다. 투자자와 제작자에게 돈 놓고 돈 먹기가 아니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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