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고, 헤쳐 모이고… 야권 ‘빅뱅’ 온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2.12.2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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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눈’ 안철수와 손학규 잇따른 외유 눈길 대선 패배한 민주당, 전대 앞두고 친노-비노 내분 격화

“‘안철수 신당’은 예정된 수순이다. 안철수 전 후보는 본인의 정치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까지 포함한 다양한 세력의 합류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대선을 보름여 앞둔 12월 초, 문재인 민주당 후보 캠프에서 중책을 맡고 있던 한 중진 의원이 사석에서 한 말이다. 안 전 후보의 선거 지원이 절실하던 당시 그는 양측의 시각차가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크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공개적인 의견 조율은 물론이며 비공개적인 물밑 대화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안 전 후보와 한 울타리 안에서 정치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그는 안 전 후보가 민주당에 합류하기보다는 독자적인 정당 창당을 선택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정계 재편 드라마의 막이 올랐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배하면서 야권의 정치 지형이 재편될 전망이다. 현재의 민주당으로는 거대 여당인 새누리당을 상대하기에 역부족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야권 내에서는 ‘새판을 짜야 한다’라는 주장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목되는 부분은 안 전 후보가 맡게 될 배역이다. 대선 과정에서 조연으로 물러났던 그가 주연 자리를 꿰찰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안 전 후보가 주인공을 맡게 될 경우 민주당 중심이던 기존의 드라마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도 주목되는 대목 중 하나이다.

18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 지난 12월19일 오후 안철수 전 후보가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가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친노에 대선 패배 책임 물어야”

물론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했더라도 정계 재편은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문후보는 선거 과정에서 중도 보수 진영까지 아우르는 이른바 ‘국민 정당’ 구상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대선 승리를 전제로 한 정계 재편과 대선 패배의 후폭풍으로 인한 정계 재편은 차이가 크다. 어떤 세력이 주도권을 쥐느냐부터 달라질 수 있다.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문후보를 구심점으로 한 현재의 민주당이 세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계 재편을 주도해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대선에서 패배한 만큼 민주당 중심의 정계 재편은 힘을 얻기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문후보는 드라마의 주연 자리를 어쩔 수 없이 내려놓아야 할 처지이다.

민주당은 지금 사분오열의 위기에 놓여 있다. 대선 국면에서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친노(親盧)’ 대 ‘비노(非盧)’의 내분이 재점화하면서 정면충돌이 예고되고 있다. 당내 분위기는 말 그대로 폭풍전야이다. 그동안 ‘친노 패권주의’를 비난해온 비노 진영은 “선전을 펼쳤다고 해도 패배는 패배일 뿐이다. 친노 진영에 대선 패배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대선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당장 문제 제기는 없더라도 친노 진영을 겨냥한 비노 진영의 책임 추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

친노-비노 간 격돌은 새 지도부 구성을 놓고 정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는 2013년 2월25일 이전에는 어떤 식으로든 지도부 구성을 완료해야 한다. 정상적인 절차대로라면 늦어도 2013년 2월 초에는 전당대회(전대)를 열어야만 제1 야당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비노 진영은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론을 앞세워 전대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당 주류로 올라선 후 몸집을 키워온 친노 진영도 순순히 물러서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친노 진영이 응집력에서는 비노 진영에 앞선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안철수 역할론’이 부각되고 있다. 비노 진영이 세력을 결집시킬 구심점으로서 안 전 후보의 역할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맞설 야권의 간판으로 국민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정치인은 안 전 후보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안 전 후보가 민주당의 당권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희박하다. 그는 대선 당일 선거 결과도 보지 않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당분간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야권의 정계 재편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국민의 열망에 부합한다는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 그동안 보여준 안철수식 정치 스타일이다.

그렇다고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정치권에서는 안 전 후보의 미국 체류 기간이 한두 달 정도일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흔히 유력 정치인이 해외에 머무를 경우 현지 대학의 연구원 신분을 갖는데, 그러면 보통 6개월 이상 한국을 떠나 있어야 한다. 안 전 후보는 그런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안 전 후보 캠프에서 일했던 한 야권 인사는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명분 있는 역할이 주어지면 언제든 결단을 내릴 것으로 본다”라고 밝혔다.

문재인 후보가 지난 12월15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안철수 전 후보와 함께 유세를 하고 있다. ⓒ 문재인 제공

안철수와 손학규 연대설도 나와

안 전 후보의 최종 선택지는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내부적으로는 이미 결론이 난 사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결국 대선 이전부터 거론되었던 안철수 신당의 깃발이 올라갈 것이라는 설명이다. 시기적으로는 민주당의 전당대회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에서부터 불붙기 시작할 권력 재편 움직임에 정면으로 맞서는 한편, 4월 재·보선을 통해 정치적 위상을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 영향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김능구 이윈컴 대표는 “안 전 후보의 경우 대선 과정에서 독자적인 세력 기반 위에서 정치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런 만큼 독자 신당의 길을 선택할 것으로 본다. 무리하게 민주당을 깨려고 하지는 않겠지만, 정계 재편의 주도권은 잡아나가려고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안철수 신당의 세력이 커질 수 있다”라고 예상했다.

비노 진영이 대거 안 전 후보에게 합류하면서 민주당이 분당 사태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민주당은 지금도 분열 과정에 있다. 비노 세력이 안 전 후보와 손을 잡으면서 결국 민주당 내에는 친노 세력만 남게 될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안 전 후보의 신당 창당 움직임이 2013년 2월 정계 재편의 ‘빅뱅’으로 폭발하게 되는 셈이다. 안 전 후보가 민주당 내에서 친노 진영의 대척점에 서 있는 손학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문후보와 대선 후보 경선에서 맞섰다가 패배한 후 ‘칩거’에 들어갔던 손 전 대표는 선거 지원에 나서기 하루 전인 지난 11월26일 안 전 후보와 비공개로 단독 회동을 가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주목을 받았다.

“안철수 신당 창당 능력 의문”

손 전 대표도 2013년 1월 중순 해외로 나간다. 독일 사민당의 싱크탱크인 에버트 재단 후원으로 6개월 동안 자유 베를린 대학에서 협동조합 등에 대해 연구할 예정이다. 손 전 대표는 지난 2007년 대선에서 패배한 당을 수습하기 위해 당 대표를 맡았었다. 그의 독일행은 이번에는 그때처럼 ‘독배’를 마시지는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한편으로는 안 전 후보와 해외 체류 기간이 겹치면서, 두 유력 정치인이 야권의 진로를 놓고 보조를 맞춘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파급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의 한 비노 인사는 “손 전 대표가 움직이면 다른 쪽도 함께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당이 또 격랑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12월20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문재인 캠프 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안 전 후보가 신당 창당에 나서더라도 그 영향력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안 전 후보의 정책 개발을 도왔던 한 인사는 “신당의 주체 세력이 명확하지 않다. 안 전 후보가 정당을 창당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더군다나 민주당의 공백을 메울 만한 정당을 이끌고 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민주당 주류인 친노 세력이 와해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총선이 아닌 재·보선만으로 창당에 동력이 붙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적지 않다.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의 한 측근은 “2014년 지방선거 전까지는 정치 수요가 크지 않다. 그리고 지난 대선에서 안 전 후보의 한계도 드러난 것 아닌가. 안철수 신당에 합류할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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