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부 요원 “가자”에 사형장 가는 줄 안 DJ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2.12.3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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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기자 40여 년 - 현장 르포

‘공항 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황씨. 1970년 한 일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40여 년 동안 공항을 출입하면서 쏟아냈던 ‘한국 공항 르포’를 정리해 책으로 엮었다. 그중 ‘김대중씨의 망명 당일, 그 소란스럽고 쓸쓸한 아침의 풍경’이 눈길을 끈다. 이씨는 “그날 김대중씨도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훗날 중앙정보부 요원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김씨는 자신의 출국을 모른 채 사형장에 가는 줄로만 알았다. 중앙정보부 요원이 입원실에 있던 김씨에게 다가가 ‘나갑시다’라고 말하자, 김씨는 자신을 사형시키려는 것인 줄 알고 무척 당황하며, ‘가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물론 중앙정보부 요원은 ‘사형장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해외로 출국하는 것이다’라고 말해주었지만, 그 말이 자신을 속이는 것으로 생각했다. 결국 자신의 출국을 취재하기 위해 병원에 와 있던 많은 외신기자를 보고서야 비로소 안심을 하며 따라나섰다”라고 전했다.

이씨는 공항이 키운 기자였다. ‘새마을 비리 주범 전경환씨 일본 출국 사건’ 보도로 기자협회 특종상을 수상했으며, ‘미화 34만 달러가 든 007 가방’을 특종 보도해 한국일보 백상기자상 등을 수상했다. 오랜 기간 공항을 출입해 공항에 관한 한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 있으며, 드러나지 않은 공항의 이면사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이 책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공항에 대한 이야기와 또한 공항에서 만날 수 있는 한국 현대사의 이면을 알려주겠다는 취지로 엮었다고 한다.

공항은 지금이야 누구나 오갈 수 있는 곳이 되었지만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특별한 사람들이 특별한 목적으로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다. 그만큼 공항은 비밀스럽기도 했으며, 또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탄생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씨는 “2005~07년 사이 북한 비행기가 일주일에 두 번씩 한국으로 날아왔다”라며, ‘대북 노선 연도별·공항별 실적(2000~09년)’을 분석해 전하기도 했다. 이씨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 고려항공의 비행기가 국내에 자주 취항했음이 드러났다. 특히 2005년 이후 고려항공의 출발·도착 횟수를 살펴보면, 많을 때는 1년에 90여 회 가까이 왔던 것이다. 적으면 일주일에 1회, 많을 때는 일주일에 2회까지 왔다는 이야기이다.

심지어 지방인 김해·제주·양양 공항에도 취항했으며, 이러한 고려항공 비행기의 정기적인 취항은 언론에서조차 미처 관심을 갖지 못한 부분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들어선 2008년 이후에는 고려항공의 운행 편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2008년 28회에 불과해 이전에 비해 50% 이상 격감했고, 2009년 2회를 끝으로 현재는 0회를 기록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씨는 지난 12월7일 김포국제공항 청사에서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 그날 이씨는 “공항에는 평생 열정을 쏟으며 일하고 떠나신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의 노하우가 묻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은퇴한 공항의 산증인들이 역할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고, 공항의 역사를 기록하고 모아놓을 수 있는 자료 수집관이 생겼으면 좋겠다”라고 바랐다.

정치 비사뿐 아니라 가십 기사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제2장 ‘시크릿 포트’ 편에서는 ‘공항 귀빈실, 특권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싸움’ ‘스튜어디스에 얽힌 히든 스토리’ ‘밀수범과 세관원의 대결’ ‘출입국사무소에서 벌어지는 천태만상’ ‘맛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재미있기도 한 기내식 이야기’ ‘인천공항 지하 88㎞의 거대 공간’ 등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공항 건물이 더 넓어 보일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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