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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사기꾼에게 잘 속는 이유 있다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는 전측뇌섬엽 반응 저하 때문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ㅣ | 승인 2012.12.31(Mon) 16:2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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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김세중
나이가 들수록 신체가 노화되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나이와 노화는 정비례 관계이다.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고, 그래서 ‘불로장생(不老長生)’ 또한 모든 이의 희망이다. 하지만 숫자적 나이와 반비례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지혜이다.

지혜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자란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지혜가 생긴다(Wisdom comes with age)’라는 서양 속담이나 ‘옛 어른들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라는 우리나라의 금언이 생긴 것이 아니겠는가. 아마 살면서 대부분 노인들이 젊은이들보다 훨씬 지혜롭다는 느낌을 한두 번쯤은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혜가 쌓이고 살아온 만큼 축적된 경험을 통해 사람 보는 눈이 더 정확해져 남에게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 이 노인들이 오히려 사기꾼에게 더 잘 당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흥미를 끌고 있다. 만병통치약이라는 말에 솔깃해 비싼 가짜 약을 덜컥 사거나, 모든 일에 원만한 해결 방안을 내놓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고집이 더 세져서 자기의 주장만을 내세울 때가 많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는 노년층일수록 사람의 성격을 빨리 간파한다는 것이었다. 상대가 정직한 사람인지 여부를 젊은이들보다 쉽게 파악한다는 것. 또 주변 사람과의 정서적 관계를 깊게 하고 인생을 맛보려 하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고, 사람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능력도 젊은이들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만일 여고생이 가출해 결혼하려는 경우가 있다면, 부모보다는 할머니와 상담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었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었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의 몰리 왝스터 박사는 나이가 60세를 넘어도 새로운 신경세포가 계속 생겨나고, 추상적 사고나 문제 해결 등에 관여하는 뇌인 전두엽 부분을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5?10년 전보다 훨씬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견해를 갖게 된다는 놀라운 결과를 내놓았고, 따라서 젊은이들보다 훨씬 뛰어난 ‘사회적 지혜’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50대 이후부터 사기당하기 쉽다

그런데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UCLA) 셸리 테일러 교수팀은 이렇게 지혜로운 노인들일지라도 거짓말과 진실을 구분하는 뇌 영역의 기능이 갈수록 떨어져 사기를 잘 당한다고 밝혔다. 뇌 가운데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전측뇌섬엽(anterior insula)’ 부위의 기능이 젊은 사람보다 떨어져 사람 보는 눈이 흐려지면서 신용할 수 없는 얼굴을 판별해내거나 거짓말을 가려내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먼저 연구팀은 55~84세의 성인 1백19명(평균 68세)과 젊은이 24명(평균 23세)을 대상으로 얼굴 사진 30장을 보여주는 실험을 했다. 어떤 얼굴이 더 진실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이는지 평가하도록 한 실험이다. 얼굴 사진은 의도적으로 믿음직스럽게 또는 믿음직스럽지 않게 표정을 조작했고, ‘믿음직한’ ‘그저 그런’ ‘불량스러운’의 3종류 문항을 만들어 사진을 본 뒤 그중에서 고르게 했다.

그 결과 평균 나이 68세인 그룹은 평균 나이 23세인 그룹에 비해 불량스러운 얼굴 부분에서만 큰 차이를 보였다. 노인 그룹은 ‘믿음직한’ 얼굴과 중립적인 ‘그저 그런’ 얼굴은 젊은 그룹과 마찬가지로 잘 구분해냈다. 하지만 ‘불량스러운’ 얼굴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고 평범한 얼굴로 인식해 더욱 믿음직하며 다가갈 만하다고 판단했다.

연구팀은 “불량스러운 얼굴에는 쉽게 알아차릴 만한 단서가 나타나 있는데도 나이 든 층은 이를 간과했다”라고 설명했다. 신뢰할 수 없는 불량스러운 얼굴은 표정 전체에 나타난다. 먼저 웃음이 진실하지 못해 마음에 없는 억지 미소를 띠거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는 것이 테일러 교수의 설명이다. 속셈을 감추려는 웃음은 입만 웃고, 진실한 웃음은 눈이 가늘어지면서 빛나고 뺨의 근육이 올라간다.

연구팀은 또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얼굴 사진을 보는 실험 참가자들의 뇌를 촬영했다. 참가자로는 55~80세의 성인 23명(평균 66세)과 젊은이 21명(평균 33세)을 선택했다. 이들의 뇌 사진을 분석한 결과 젊은 그룹은 믿음직스럽지 않게 생긴 얼굴을 보는 동안 전측뇌섬엽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신뢰할 수 없는 ‘불량스러운’ 얼굴을 볼 때 특히 더 활발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인 그룹에서는 ‘불량스러운’ 얼굴을 볼 때 전측뇌섬엽이 아주 미약하게 반응했다.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는 전측뇌섬엽의 반응이 젊은 층과 비교해 상당히 떨어진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공짜 선물 제공하는 설명회에는 가지 마라

테일러 교수는, 뇌에서는 ‘조심하라, 여기에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경고 신호를 보내도 노인들은 이런 위험을 감지하는 뇌 부분이 반응하지 못해 쉽게 사기에 휘말린다고 주장한다. ‘경보체계’가 노후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따라서 나이 든 사람은 공짜 점심을 주는 투자설명회에 참석하지 말고, 만병통치약이라고 선전하는 길거리표 세일즈맨들과 상종하지 않는 것이 사기를 당하지 않는 지름길이라고 충고한다. 특히 투자 경험이 풍부한 55세의 남성은 사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사람의 재정적 판단 능력이 50대 초·중반부터 쇠퇴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인간의 거의 모든 기능은 40?45세를 정점으로 꺾인다. 늙는 것은 육체적 기능이 떨어지는 것과 더불어 기억력·인지 능력을 포함한 정신적 기능이 감소되는 것을 말한다. 시력과 청력이 떨어지고 때로 정서장애가 올 수도 있다. 만성 질환의 위험도 커진다. 외모적으로는 머리털이 빠지고 흰머리가 나고 피부는 탄력을 잃어 주름이 생긴다. 노화를 연구하는 과학자와 의학자들도 이런 과정이 왜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노화의 과정은 우리 몸속의 장기·조직·세포가 여러 조건 아래 지극히 복잡한 방법으로 관여하며 일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를 먹을수록 기억력과 뇌의 정보 처리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일은 더디고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에 용량이 꽉 차 있으면 가동 속도가 느려지고 명령에 반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사람 역시 나이가 들수록 머릿속에 온갖 복잡한 경험과 사례들이 다 입력되어 있는데, 그런 것들을 한번 윤전시키려면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리고 반응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꽃이 피는 것이 본성이라면 지는 것도 본성이다. 그렇더라도 무심코 보내는 하루하루의 생활은 노화를 앞당기는 위험 요인이 될지 모른다. 살아가는 동안 노화를 늦추는 운동이나 적절한 식이요법, 호르몬 대체요법을 통해 노화를 방지하는 것이 좀 더 건강하게 노년 생활을 즐기는 비결이 되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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