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출신 변호사’, 수사권 특수 누린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12.3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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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조사 단계에서 변호사 선임 가능성 커져

‘검·경 수사권 조정’이 눈앞에 다가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내건 공약의 골자는 수사와 기소 분리를 목표로 경찰 수사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즉, 수사권을 검찰과 경찰로 나눠 독립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경찰에 새로 수사권이 부여되는 만큼 경찰 쪽에 힘이 실리게 된다.

박근혜 당선인의 사회안전특보를 맡았던 이무영 전 경찰청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1차 수사권은 경찰이 갖고, 2차 수사권은 기소 단계부터 검찰이 맡아야 한다. 검찰은 기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사건을) 검토하다가 지휘할 수도 있고, 때에 따라 수사를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 전 특보는 김대중 정부에서 경찰청장을 지냈고, 제17대 때는 무소속으로 전북 완산에서 당선되었다. 지난 18대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 합류했다. 그는 “내 평생 경찰 조직을 위해 이루지 못한 것이 딱 한 가지 있다. 수사권 조정이다. 그것 하나만을 보고 박근혜 캠프에 들어왔다”라고 강조했다. 향후 박근혜 정부가 경찰 개혁을 추진하는 데 이 전 특보의 역할이 상당할 것으로 관측되는 대목이다.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게 될 경우 법조계에도 지각 변동이 일어날 전망이다. 기존에는 피의자가 경찰 수사가 아닌 검찰 기소 단계에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게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피의자가 방어권을 위해 경찰 수사 단계에서 변호사를 선임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따라 피의자들은 검사나 판사 출신보다는 경찰 조직을 잘 알고, 경찰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경찰 출신 변호사’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찰 출신 변호사들은 때아닌 특수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경찰의 고시 출신 채용은 특채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경찰청 인사과에서 필요한 인력 수요를 조사해 채용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렇다고 매년 정기적으로 채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을 거쳐 경찰에 입문하면 일반직 공무원 5급에 해당하는 경정 계급을 준다. 일선 경찰서 과장급에 해당한다.

현재 경찰에는 사법고시 출신 간부가 약 44명 있다. 현직 최고위직은 김정석 경찰청 차장(사시 30회)이다. 김차장은 대구지방경찰청장과 청와대 치안비서관 등을 거쳤다. 치안감 중에는 김학배 경찰청 수사국장과 박상용 대전지방경찰청장이 사시 26회 동기이다.

경찰 고위직 출신도 영입 대상 

사법고시 출신 최초의 여성 경찰은 권은희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다. 그는 사시 43회로 2005년 경정 특채로 경찰에 입문한 뒤 경기 용인경찰서 수사과장과 서울 서초경찰서 수사과장을 지냈다. 지난 대선 기간 중 ‘국정원 직원 불법 선거운동 의혹’을 수사한 것도 권과장이다.

전직 사법고시 출신 중 최고위직은 강희락 전 경찰청장(구속 수감 중·사시 26회)이다. 강 전 청장은 지금까지 거쳐간 경찰청장 17명(현 김기용 청장 포함) 중 유일한 사법고시 출신이기도 하다. 강 전 청장은 퇴임 후 두 달 만에 국내 제2대 로펌인 태평양의 고문으로 영입되었으나, 함바집 비리 혐의로 구속되는 신세가 되었다.

법무법인 정인 소속의 김중확 변호사는 사시 26회 출신으로 경남지방경찰청장, 부산경찰청장을 거쳐 경찰청 수사국장을 역임했다. 그는 지난해 6월 ‘옷 로비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임혜경 부산시교육감의 변호를 맡았다. 임교육감은 처음에는 피내사자 신분이었으나 뇌물 수수 혐의로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자 곧바로 김중확 변호사를 선임했다. 김변호사가 전직 부산청장이었던 점을 염두에 두고 ‘전관예우’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는, 임교육감의 생각은 기대에 못 미쳤다. 부산경찰청은 임교육감을 뇌물 수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남경찰청장과 경기경찰청 차장을 지낸 박영진 변호사(사시 26회)는 법무법인 율현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찰 출신 변호사 중에는 경찰대에 진학한 후 사법고시에 합격한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경찰대 재학 중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은 1백25명이다. 지난해 사법고시 합격자 5백6명 중 경찰대 출신이 12명이나 되었다. 대학별 합격자 수로 따지면 여덟 번째로 많다.

하지만 경찰 출신 변호사의 수요가 많더라도 공급에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대형 로펌 등은 경찰 출신 변호사 영입을 위해 물밑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로펌들의 영입 우선순위도 전직 경찰 고위 간부 출신이다. 이들은 경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데다, 고위직에 있었던 만큼 ‘전관예우’를 노릴 수도 있다. 경찰 내외부에도 다양한 인맥을 갖추고 있어 눈독을 들일 만하다.

사법고시 출신이 아니더라도 전직 경찰청장 등을 영입한 후 고문이나 전문위원으로 위촉해 형사 사건 등에 관한 자문을 맡길 수도 있다. 어청수 전 경찰청장은 퇴임 후 법무법인 대륙아주에 고문으로 영입되어 활동하다가 청와대 경호처장에 올랐다. 경찰 조직 내에서 신망이 두터운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등도 영입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경우 소속 변호사 3백여 명 중 세 명이 경찰 출신이다. 이 중 경찰 고위직 출신은 없고, 경찰대에 들어가 사법고시에 합격해 연수원을 졸업한 후 태평양에 들어갔다. 올해 사법연수원 졸업자 중 한 명을 뽑기도 했다.

그 밖에 국내 대형 로펌들도 경찰 출신 변호사나 고위직 인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영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경우 전·현직 경찰 간부들을 놓고 로펌이 ‘영입 경쟁’을 벌일 수도 있다. 


‘사건 기생충’ 브로커 난립 비상

경찰이 수사권을 갖게 되면 ‘사건 브로커’의 난립이 우려된다. 기존에도 전직 경찰 출신들이 로펌이나 개인 변호사 사무실에 ‘고문’이나 ‘실장’ ‘부장’ 등의 직함을 가지고 사건 브로커로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게 되면 사건 브로커들은 날개를 달게 된다.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개입할 가능성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통 수사 진행 상황과 사건 처리 방향, 수사관 청탁 등의 명목으로 금품 등을 제공하며 사건에 개입해왔다.

사건 브로커들은 지역 경찰서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들이다. 때문에 경찰서 직원들과 친분이 있고, 이런 점을 이용해 사건 정보를 빼내거나 사건 수임을 중개하는 등 혼탁해질 우려가 있는 것이다.

사건 브로커들이 피의자 가족들에게 접근해 “변호사도 선임해야 하고, 경찰에서 좋게 조사받으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경찰관을 통해 손을 써야 한다”라며 금품을 요구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지난 12월28일 서울중앙지검은 사건 브로커로 나선 현직 경찰 간부인 이 아무개 경위를 구속하기도 했다. 그는 동료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알아봐주겠다며 피의자측에서 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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