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빈털터리’, 부인은 ‘부동산 재력가’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2.12.3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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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영 전 회장의 부인, 35억 고급 빌라 매각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이 있다. 그런 것 같다. ‘망한 재벌’이 ‘깡통’을 찼다는 소식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재벌의 권좌에서만 물러났을 뿐 ‘곳간’은 여전히 꽉 차 있다는 것이다. 상당한 재산을 이미 빼돌렸거나 은닉했기 때문일까?

몰락한 재벌들의 이런 행태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도드라진다.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역시 이 범주에 속한다. 최 전 회장은 1999년 2월, 2억6천여 만 달러를 해외로 밀반출하고 계열사를 이용해 1조2천억원을 불법 대출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하지만 구속된 지 8개월 만인 같은 해 10월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2005년 1월에 다시 법정 구속되었다. 법원은 2006년 7월, 최 전 회장에게 징역 5년에 추징금 1천5백74억원을 확정 판결했고, 같은 해 9월 그는 건강 악화로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8·15 광복절 특사로 형 집행이 면제되었다.

서울 한남동 15-14·12번지에 있는 고급 빌라 ‘코번하우스.’ ⓒ 시사저널 임준선·최준필
행안부 “최순영, 36억 체납 개인 부문 ‘2위’”

‘법적으로’ 최 전 회장은 ‘빈털터리’이다. 최 전 회장은 주변에 “집과 가재도구까지 모두 경매 처분되어 현재는 빈털터리이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마다 공개되는 전국 고액 체납자 명단에도 최 전 회장은 상위권에 올랐다. 지난해 12월9일, 행정안전부는 체납 발생일로부터 2년이 넘도록 3천만원 이상 지방세를 내지 않은 전국 시·도의 고액·상습 체납자 1만1천5백29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전국 체납액 1위는, 법인의 경우 경기도에 1백29억원을 체납한 GS건설(경기도 용인시 시행사)이 불명예스럽게 올랐다. 개인의 경우에는, 서울시에 58억원을 안 낸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이 가장 많았다. 2위는 35억8천5백만원을 체납한 최 전 회장이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고액·상습 체납에 대해서는 출국금지 요청, 재산 조사, 체납 처분, 차량번호판 영치, 사업 제한 등으로 제재를 강화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해마다 고액 체납자 명단에 오르자, 최 전 회장은 2009년 3월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도 추징금 체납액을 내고 싶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회사를 되찾으면 국가에 내야 할 추징금을 반드시 낼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최 전 회장의 신동아그룹에 대한 강한 미련과 재기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최 전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는 상당한 재력을 갖추고 있다. <시사저널>은 2008년 1월, 이형자씨가 ‘한국판 베버리힐스’로 불리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있는 15-14·12번지 부동산의 실소유주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우선 15-14번지(면적 8백13㎡, 2백46평)의 소유권 이전 현황부터 들여다보자. 이 땅은 이씨가 1985년 취득했다가, 2001년 7월 용산세무서에 압류당했다. 그리고 2002년 5월 말 압류 조치가 해제되면서, 같은 해 9월1일 ㄴ건설에 매각되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은 9월10일 이씨가 이 땅에 대해 ‘소유권이전청구권 가등기’를 신청하면서 ‘권리자’가 되었다. 통상 소유권이전청구권 가등기는 차명으로 부동산을 매입했거나, 채권 등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 실소유자임을 공증하기 위해 신청한다. 다시 말해, ‘권리자’인 이씨가 언제든지 자신을 ‘소유자’로 등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2006년 9월, 소유자가 ㄴ건설로 다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5-14번지에는 이형자씨 명의의 지상 1층(69㎡, 21평) 주택과 지하 1층(2백50㎡, 76평) 주차장이 있었으나, 이미 오래전에 철거되었다. 그럼에도 어찌된 영문인지 등기부등본에는 이 주택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

15-12번지에도 최 전 회장의 애환이 녹아 있다. 최 전 회장은 이 땅을 1984년 6월 매입했다. 이후 신동아그룹이 몰락하면서 1999년 3월 용산세무서에 압류되었고, 2001년 8월까지 영등포세무서와 반포세무서 등에 의해 압류당했다. 그러다가 2002년 1월, 법원 공매를 통해 최 아무개씨에게 소유권이 넘어갔고, 또다시 2003년 6월 ㄴ건설로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15-14·12번지 두 필지는 한데 묶여 있으며, 이곳에는 2002년 10월께부터 2005년 말까지 고급 빌라가 지어졌다. 빌라의 연 건평은 5천97㎡(1천5백45평) 규모이다. 지하 4층·지상 3층짜리 빌라로, 건축주는 ㄴ건설이었다.

그렇다면 이씨와 ㄴ건설은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ㄴ건설의 자본금은 3억원으로, 2002년 8월 설립되었다. 이 고급 빌라를 짓기 두 달 전에 세워진 회사였다.

지난 2000년 1월, 외환 밀반출 혐의를 받은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이 서울고법에서 항소심 4차 공판을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순영측, “이형자씨 소유 아니다” 해명

그런데 15-14·12번지 두 필지가 최 전 회장 부부와 깊이 관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최 전 회장 부부와 ㄴ건설이 ‘특수 관계’가 아니냐”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이씨측 관계자는 “이형자씨 소유의 땅이 아니다”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고급 빌라와 이씨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ㄴ건설의 한 간부는 기자에게 “(15-14번지 토지를) 2002년 9월 이형자씨로부터 35억원에 부지를 매입하기로 계약했다. 계약금으로 5천만원을 지급했다”라고 밝혔다. 이와 달리 ㄴ건설은 15-14번지와 붙어 있는 12번지의 소유자였던 최 아무개씨와도 35억원 정도에 부지를 매입하기로 했고, 계약금으로는 7억7천여 만원을 지급했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점이 찍힌다. ㄴ건설이 최씨와 달리 이씨에게는 왜 ‘고작’ 5천만원만 계약금으로 주었는지가 그것이다. 이에 대해 ㄴ건설 간부는 “2002년 8월 ㄴ건설이 설립될 당시 대표이사였던 이 아무개씨가 신동아건설 출신이어서 (이형자씨가) 편의를 봐준 것이다”라고 말했다. ㄴ건설과 최 전 회장측이 ‘특수 관계’임을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씨는 또한 15-14·12번지에 있는 고급 빌라 ‘코번하우스’ 3층을 자기 명의로 소유하기도 했다. 2006년 1월, ㄴ건설로부터 35억원에 매입했다가 2011년 6월 서울 중구 남산동에 위치한 ㄱ산업에 매각했다. 전 신동아그룹 관계자는 “화가 출신인 이씨는 돈을 버는 사업을 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래저래 이씨가 이 빌라를 매입했던 자금의 출처가 의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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